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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11. 2021

때로는 칭찬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

칭찬의 역효과에 대하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몸무게 3톤이 넘는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멋진 쇼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은 고래에 대한 조련사의 긍정적인 반응과 칭찬이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유명한 책 제목인데, 그러나 때로는 과한 칭찬이 오히려 심적 부담을 주어 행위자에게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몸소 체험한 일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촉발된 과분한 칭찬들의 출처를 설명하자면, 우리 회사는 '폴넷'이라는 인트라넷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부서나 경찰청, 경찰서마다 추진업무 성과나 일정 등을 게시하여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 관내 파출소 리모델링 소식이나 우리서 신임순경의 절도범 검거 일화 소개, 직원 복지 일환으로 자체적으로 추진 중인 공감소통 프로그램 후기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계신 서장님은 평소 직원분들을 마주칠 때면 항상 웃으며 먼저 인사도 건네시고 서내 불만의 소리를 대표하는 직장협의회와 간담회도 적극적으로 주최하실 정도로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본인이 직원들의 사소한 애로사항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직원들 또한 경찰서에서 추진하는 일들에 동참하시길 바라신 듯, 홍보부서에서 올리는 게시글에 직원들이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는(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어찌 됐건 본문의 내용을 봐야 하니까) 말씀을 하셨고 이후 나는 틈날 때마다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오면 정성을 다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관서장관심 있어하시는 일이다 보니 홍보담당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다양한 패러디와 포토샵 기술 등을 활용해 양질의 콘텐츠를 게시했고 당연히 내용이 너무 좋아서 쓸 얘기도 많았다. 그중에 내 댓글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다른 직원들 한 두줄 쓰실 때 서너 줄 더 쓰면서 본문과 연관된 나의 경험을 추가해서 적거나 분위기에 맞는 글귀를(물론 출처를 밝혀) 공유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직원분들이 나의 댓글을 베스트 댓글이라며 추켜세워주시고, 직협회장님 추천으로 장려장도 받고 뜻밖에 큰 칭찬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동안은 선배님들이 태워주시는 칭찬 비행기에 올라 들뜬 기분으로 지내다 '이제는 게시글이 올라오면 박경장 댓글부터 일부러 찾아본다', '작가 출신이 틀림없다'는 식의 과찬이 이어지자 칭찬의 말이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 내리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칭찬 비행기를 타고서 나는 괴로워했다. 고래처럼 화려한 개인기로 열정적인 쇼를 하며 춤을 춰도 모자랄 판에 복에 겨워 멀미를 하다니.


그때쯤 우연히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다 '칭찬의 역효과'를 다룬 다큐멘터리 리뷰 글을 보게 되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아이에게 똑똑하다, 최고다, 잘한다라는 칭찬을 했을 때 오히려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칭찬해주고 일정한 시간 안에 단어들을 외우게 한 뒤, 통화를 하는 척하며 선생님이 단어들이 적힌 종이를 엎어 놓고 밖으로 나가버리자 무려 실험 참가자의 90퍼센트에 달하는 아이들이 칠판에 외운 단어를 적다가 불안함에 휩싸여 탁자에 놓인 선생님의 답안지를 몰래 뒤집어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이 모습이 너무나 공감되어 마치 내가 답안지를 훔쳐본 듯한 죄책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신뢰관계에 기반한 칭찬은 분명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한다. 그러나 맹목적인 칭찬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더불어 행위자 입장에서도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부분을 부각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가 멋진 댓글을 써서 칭찬을 받았다'는 생각은 '계속 좋은 댓글을 써내지 못하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 거야'라는 결론에 이르러 나를 스스로 옥죄게 되었지만 대신에 '내가 열심히 댓글을 쓴 노력을 직원분들이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다'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나의 칭찬법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아이가 수행한 결과물들(비뚤빼뚤 그린 그림, 어설프게 쌓아 올린 블록, 끝음절만 따라 부르는 동요나 율동)을 보고 나 역시 우리 딸 최고다, 잘한다, 똑똑하네 라고 칭찬했었고 이후에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회피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이가 수줍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어쩌면 그때 우리 딸도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본의 아니게 아이를 위한답시고 외려 부담을 지운 것은 아니었을까.


'칭찬'의 사전적인 의미는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칭찬도 일종의 '평가'였기 때문에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것.

진정으로 고래도 사람도 즐겁게 할 응원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닌,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시도했던 그 노력 자체로, 아니 존재만으로도 당신은 제게 너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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