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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m Jan 23. 2020

사소한 것들 Little things

그들은 퐁피두센터에 출근하다시피 들렀습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회고전이 시작된 작년 11월 25일부터 에단 호크는 나흘 동안, 링클레이터는 엿새 동안, 매일 파리의 관객들을 만났죠. 링클레이터가 직접 고른 회고전 상영작들은, 인기작이라 하더라도 취소표가 종종 나와 충분히 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이 현상은 파리라는 도시 전체가 '영화의 전당'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당장 저부터도 링클레이터의 마스터클래스가 예정된 11월 30일 퐁피두로 갈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같은 시간 씨네마떼끄에서 지아장커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있었거든요. 지 감독님은 부산에서 종종 뵈었으니, 라는 어설픈 합리화로 백인 남성 감독을 만나러 갔습니다. 저의 한계겠지요. 대신 씨네마떼끄에서 열리기 시작한 지아장커 회고전을 최대한 많이 보자고 다짐했네요.


⁣마스터클래스는 퐁피두센터 지하 1층의 작은 강당에서 진행됐습니다. 진행자는 감독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질문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청중들에게 짧게 보여줬어요. 91년작 <슬래커>, 01년작 <웨이킹 라이프>, 04년작 <비포 선셋>, 12년작 <버니>, 14년작 <보이후드>가 차례로 나왔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사이에서 성공적인 줄타기를 했다는 진행자의 평가에 그는 "의도하고 그리된 건 아니에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잖아요"라며 쑥스러워하더군요. 그 계획의 파탄… 제가 가져가고 싶네요. 감독이 나고 자란 텍사스 지역에 대한 질문에도 그는 답했습니다. "물론 텍사스 고유의 문화가 끼친 영향이 있겠죠. 하지만 그 이전에 저는 영화중독film-obsessed person이었어요. 영화는 보편적인universal 예술입니다."


사흘째 보는 링클레이터 감독은 무척 개구졌습니다. 농담과 다양한 제스처로 청중들을 즐겁게 만들었어요. 작품에 대한 재밌는 얘기도 들려줬죠. <비포 선라이즈>가 실제 감독의 체험(1989년 10월. 영화와 달리 연락처도 주고받고 이후에도 만났대요!)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사실. <보이후드>를 찍으며 사만다 역을 맡은 자신의 딸(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때문에 속을 썩인 일화. 어릴 때 즐겁게 촬영에 임하던 딸이 사춘기를 통과하며 침울한 얼굴로 "아빠, 내 캐릭터를 그냥 죽여주세요"라고 말했다는군요. "딸이 지금 파리에 같이 오긴 했어요. 회고전 전시장도 들어갔는데… 자기 사진들이 전시돼 있는 걸 보자마자 돌아 나오더라고요."


"사소한 것들little things." 1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된 마스터클래스에서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그의 육성입니다.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후드>를 설명하며 그는 거대한 사건 없이, 사소한 것들로 그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 말했어요. "메이슨이 강제로 이발하게 되는 장면처럼요. 어른들은 '이발, 그게 뭐 어때서?'라고 말할지 몰라요. 하지만 아이의 눈에 그건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을 채운 것도 그런 "사소한 것들"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조용히 <비포 선셋>을 떠올렸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이 아름다운 셀린느의 대사를.


"난 어릴 때 늘 지각했었어. 등굣길에 엄마가 내 뒤를 밟아 봤더니, 나무에서 떨어진 밤톨도 들여다 보고 개미랑 낙엽 따위를 구경하고 있더래. 사소한 것들… 사람을 만나도 난 그런 사소하고 작은 일에 감동받고 못 잊어. Maybe I’m crazy, but… when I was a little girl, my mom told me that I was always late to school. One day she followed me to see why. I was looking at chestnuts falling from the trees, rolling on the sidewalk, or… ants crossing the road, the way a leaf casts a shadow on a tree trunk… Little things. I think it’s the same with people. I see in them little details, so specific to each of them, that move me, and that I miss, and… will always m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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