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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m Feb 13. 2020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쓴다면

"장애를 수용하여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긍정하는 일은 결국 중증 정신적 장애인 일부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작업이 아닌가? 나는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공동 저자'가 될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같이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들이 경험한 공생을 위한 갈등과 협력, 때때로 찾아오는 경이로운 순간들, 장애인을 한 사람의 자녀로, 또래로 온전히 받아들인 시간은 그 자체로 고유할 뿐 아니라,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개별자로서의 이야기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드러내 줄 것이다."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었습니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같이" 한 적은 없어요. 2년 넘게 같이 일한 적은 있네요. 마지막 직장이 약간 느리게 움직이는 카페였어요. 정신장애인을 고용하는 카페에서 지점을 돌아가며 매니저로 일했는데, 모든 지점마다 매니저 혼자만 비장애인이었지요.


⁣⁣⁣당시에 매일 보고했던 업무일지를 다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은 통장을 스치우는 월급 액수를 노려보며 '특이사항 없음'으로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날에는… 업무일지에 이야기를 썼답니다. 동료가 듣는 환청- 그만의 '주관적 진실'에 대해서, 저랑 오지게 싸운 다른 동료에 대해서, 이따금이었지만 분명히 찾아왔던 "경이로운 순간"에 대해서.


⁣⁣⁣불만도 있었지만(이를테면 월급이랄지 월급이랄지 월급이랄지) 돌아보면 고마운 점이 많은 일터였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느리고 일하기 싫어해서, 카페 오픈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일찍 문을 닫아버리거나;; 커피머신이 고장 나면 이때다! 하며 손님들을 내보냈는데;; 단 한 번도 질책당하지 않았거든요. 이 기회를 빌어 대표님 정말 감사드리고 건강하시길… 읭?


⁣⁣⁣많은 것을 배웠어요. 또한 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지요. 앞에서 '각 지점마다 매니저만 비장애인'이었다고 썼네요. 그러니 한때는 제가 비장애인인 줄 알았군요. 저는 조금씩 제 옆에 있는 "검은 개"(윈스턴 처칠)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정신과에서 정기적으로 처방을 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죠. 2년 넘게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깨달은 교훈 중 이게 가장 중요했어요. 나도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 이렇게 "실격당한" 내가, 우리가 어떻게 존엄할 수 있는지를 김원영 작가가 말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는 무척 아름다워서, 마치 노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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