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um Jan 24. 2020

기꺼이, 나쁜 쪽에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게 입혀 놓은 삶의 스타일을 벗겨 낼 수 있어야 한다. 갑옷이 벗겨진 살갗은 죽음에 더 노출될 것이지만, 옥죄는 갑옷 바깥에서라면 우리는 죽음만큼이나 삶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은 억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이자 미지의 가능성으로서 긍정해야 한다."(63쪽)


⁣"그러므로 우리는 치유를 거부할 것이고 기꺼이 나쁜 쪽에 설 것이고 사회와 언어와 상식의 외피를 벗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삶이라는 낫지 않는 병을 긍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약하고 유약하고 예민한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로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려는 이 긍정과 능동의 힘을 통해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어의 무능과 폭압에 저항하면서 나 자신을 위한 언어, 내가 살 옷과 외피를 발굴하고 나의 삶을 보존할 형식을 찾아야 한다."(92쪽)


"처음부터 이 세계의 자명성을 믿지 않은 이들, 아주 예민하고 성찰적이었던 이들, 우리가 예술가나 시인 혹은 이방인이나 청년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아예 그 사회적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설사 그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그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볼 줄 안다. 그들은 이 사회가 우리를 물건이나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이미 항상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언제든 이 이름에서 떨어져 나가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이미 물건이라는 것을 간파한다. 즉, 자신의 사회적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고 있다."(155쪽)


⁣읽기를 마친 책을 여기에 정리하는 나름의 형식이 있답니다. 가장 와 닿는 한 문단을 그대로 옮긴 후, 나머지 문장들은 쪽수를 표시해주며 제 생각과 함께 녹이고 있어요. 양효실의 작품 <불구의 삶, 사랑의 말>에 대해 말하려 하는 저는 그 형식을 버립니다. 어떠한 스타일도 감당할 수 없는 책이 때로는 존재하지요.


저자는 고백합니다. 이 책은 "극단적"이라고. 그러니 저도 고백할게요. 당신의 극단성을 사랑한다고. 저 또한 자살을 삶의 회피가 아닌, 인생을 온전히 껴안는 선택으로 지지한다고. 세상이 이름 지은 역할을 맡으려 열정에 넘쳤던 저의 20대보다 지금이,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앞으로도 아무 일도 하기 싫은 현재가 훨씬 '나 자신'에 가깝다고. 언젠가부터 제게 다른 옷을 입히려는 자들로부터,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고.


⁣'안개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공장으로 가는'(기형도, <안개>) 길에서 이탈해 극장에서 혼자 <작가 미상>이라는 영화를 봤다고. 독일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실존 화가를 다룬 영화 속 주인공은 이름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고. 피카소의 추상화를 "퇴폐 예술"로 규정하는 나치를 넘어, "예술은 인민 대중의 삶에 도움을 줘야만 한다"는 사회주의 동독을 넘어,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고. "ich, ich, ich." 모든 이름을, 모든 껍데기를 벗어내며 나, 나, 나를 찾는 영화를 보며 온몸이 떨렸다고. 몸을 떨며 생각했다고. 가짜로 살고 싶지 않다고. 쓰레기로 살아도 나 자신으로, 진짜로 살 거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