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그레브grève는 애초 모래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파업'을 가리키는 단어로 많이 쓰이고 있지요. 센 강변에 있는 파리시청 앞은 예전에 모래사장이었고, 시청 광장Place de l’Hôtel-de-Ville의 원래 이름도 모래사장 광장Place de Grève이었대요. 프랑스혁명 이후 수많은 봉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때 노동자들은 이 모래사장에 앉아 농성을 했고, 차츰 이 단어는 '(동맹) 파업'의 뜻으로 확장했다는군요(정수복, <파리의 장소들> 146쪽).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편안에 반대하는 총파업Grève 51일째. 미술관도 영화관도 문을 닫거나 운영시간을 줄였습니다. 집에 갇히게 되면서… 책 읽는 시간이 강제로 늘었지요. 댄 주래프스키가 쓴 <음식의 언어>를 읽고 있어요. 값비싼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주방장chef"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chef’s choice) 저렴한 식당에서는 "당신you"이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군요(your way). 값싼 곳에서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비해 비싼 곳에선 메뉴나 맛의 선택권이 사라진다는 말이죠(51~52쪽).
작가는 프랑스어 앙트레entrée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 과정도 설명합니다. 식사를 시작하는entrée de table 첫 번째 코스를 지칭했던 1651년의 앙트레는 수프 다음, 로스트 전에 먹는 뜨거운 육류 코스였어요(58쪽). 그러다 1930년대에 단어의 의미가 변하며 달걀이나 해산물로 요리한 가벼운 코스를 뜻하게 되었네요(69쪽). 현대 미국의 앙트레entress는 현대 프랑스의 플라plat로, 식사의 (주로 육류인) 메인 코스를 뜻합니다. 그러니 "프랑스어와 미국식 영어 모두 그 단어 본래 의미의 면모를 일부분씩 간직"(70쪽)하는 셈이죠.
grève와 entrée는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문법 필자들이 어떤 언어 변화를 두고 투덜거리는 것은 언제나 그 변화가 벌써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난 다음"(69쪽)이죠. 저는 언어의 섞임과 스밈을 사랑하게 됐어요. 아시아 억양이 깊게 박힌, 불순한 프랑스어를 쓰는 처지에서 피어난 사랑. 작가는 앙트레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말합니다. "현대 고급문화의 잡식동물은 (…) 근사한 프랑스 단어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 어디 가면 최고의 생선 소스를 구할 수 있는지도 아는 그런 능력"(71쪽)을 지니고 있다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언어 이전에 세상이 있으며 세상이 바뀌면 우리가 알았던 언어도 변한다 여겨요.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98쪽)된다 믿어요. 열네 살 소녀가 되어 파리를 걸어요. 모든 것이 섞이고 스미고 있는 도시로 들어온 소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나요. <벌새>의 은희처럼 저도, 이 세계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