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대한 실례

by 잠시 멈춤

왜 우리는 타인에게 친절하지만 가까운 관계인 가족 혹은 친한 친구에게 유독 편하게 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그 사람은 나의 모든것을 이해할 것이란 근거없는 자신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에게는 가족보다도 가깝다고 느끼는 20년 지기 대학교 친구들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 아둥바둥 사는 서울에서 촌놈들끼리 술한잔하며 지난 시절 얘기를 나누는 것이 낙이었고 행복이었다. 우리는 매년 여름 함께 여행을 갔고, 사는 지역은 달랐지만 수시로 만나 술을 마셨다. 대학 친구들과 이렇듯 가깝고 이 나이까지 그렇게 지낼 수 있음이 특이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것이 당연했다.

모든 일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였지만 어느순간 이 관계만은 당연해졌다.


여느날처럼 우리는 서로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던 중 문제가 일어났다. 나의 옛 동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의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당연한 듯 나는 친구에게 충고와 비난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하게 웃어 넘겼을 친구는 나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한 당황이었을까?', '내 말의 반박에 대한 불쾌감이었을까?' 명확하지도 않은 감정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물론 모두 술이 많이 취해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법한 헤프닝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목에 걸린 얇은 가시처럼 그날의 미세한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왜 화를 냈을까?" "나는 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까?" 그리고 "다음날 친구들은 오히려 나에게 먼저 사과했을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익숙한 일이었던 것 처럼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흘러갔다.

나는 오랜시간 동안 그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던 걸까?


너무 편안하고 익숙한 친구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었다는 것도 큰 실례이지만, "내가 어떤 사람으로 타인들에게 익숙해져 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꼭 뭔가를 해야 의미있는 시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