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에 몰입을 한다. 러닝타임이 120분이라고 할 때, 두 시간 내내 일정한 몰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할 만큼 지겹기도 하고(상황 A), 어떤 때는 시간이 가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전개되는 흐름에 푹 빠지고(상황 B), 그러다가 막연해서 무슨 의미인 지 알 수 없게 되어 답답한 경우(상황 C)가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영화를 다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나도 모르게 문득 오늘 본 영화에 대한 감상과 잔상과 여운이 떠오른다. 순간적인 이미지로, 기억으로, 또 다른 생각의 실마리로, 예전에 잊고 있던 고민 거리에 대한 해답으로, 괜히 보았다는 후회로, 아무 느낌도 없는 정체감으로. 이 중 좋은 느낌과 기억(결과 1), 나쁜 잔상과 후회(결과 2), 아무 느낌도 없는 무력감(결과 3)으로 분류해 두자.
굳이 왜 이런 분류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영화를 한 편 보는 동안의 몰입 정도에 해당되는 상황 A, B, C와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을 구분한 결과 1, 2, 3은 인생의 흐름과 꽤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을 찾아 살고 싶어하고, 그 꿈이 성취되었을 때 현실적으로 꽤 새로운 안정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길 바랄 것이다. 상기의 분류를 다시 떠올려 볼 때, 영화에 즐겁게 푹 빠지는 ‘상황’ B와 영화감상 뒤에도 좋은 느낌과 생각의 실마리가 감동의 여운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결과’ 1의 조합을 누구나 꿈꾸게 될 것이다. 살면서 그러기를 꽤나 바라고 있다.
어릴 때는 목적만 쫓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만 같았다. 결과물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그것으로 누구나 중간과정은 적당히 생략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수험시절의 공부가 흔히 그런 경우다. 지금 힘들고 답답하고 이해 안 돼도, 일단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가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못했던 것을 누리는 것이 일종의 지난 날에 대한 보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한 쪽에 치우치듯 사는 것은 종합적으로 볼 때 현명하지 못하다. 머랄까, 쉽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매순간순간 행복하게 사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삶의 요소로 자리 잡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막연히 달려가는 것은 오히려 인생 전체의 조율 측면에서 볼 때는 많은 리스크를 안기도 한다. 물론 이건 어떠한 시각의 일부분을 강조해서 논점을 수면 위에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금 아까의 영화를 본 ‘상황’과 ‘결과’에 주목해 보자. 그리고 가장 인생에서 충돌하는 ‘꿈’과 ‘현실’과 맞물려 이해해 보자. 여러 분이 꿈꿔온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달려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너무 뻔한 꿈(상황 A)을 쫓고 싶은가? 너무 막연한 꿈(상황 C)을 쫓고 싶은가? 동력이 꽤 부족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자, 단어를 바꿔보자. 영화를 보는 순간 몰입하고 싶은 욕망(상황 B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영화를 다 본 후에 찾아오는 기분 좋은 여운(결과 1의 무형적 깨달음) 또한 기대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 또한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합해야 쉬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앞으로 계속 달려갈 수 있다.
꿈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어찌 보면 현실에선 ‘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것을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너무 막연한 꿈은 아무도 꾸지 않는다. 적어도 꿈 자체가 어떤 의미인 지는 몰라도, 그 꿈이 실현되었을 때 그 꿈의 정상에서 맛보는 감격이나 보이는 풍경이 나름 꽤나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늘 꿈을 꾸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전혀 듣지 않고, 책에서 접하지도 않았고, 내 머릿 속을 아무리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 꿈을 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언가 나에게 있어 꿈을 위한 몰입이 가능하고, 성취하게 만드는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에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 한 영국인 남성이 자신은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탐험가가 되고 싶어서 결국 영국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정가가 되었지만, 정상에 오르고 난 뒤에 상당히 우울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의 희열만을 생각했지, 오르고 난 뒤에 무엇이 남을 것인 지에 대해선 별로 생각하지 보지 않았다는 논지의 코멘트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멘트를 들은 한 방송인은 자신도 하고 싶은 방송 일을 하게 됐고,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점점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곤, 자신이 갖고 있던 꿈의 갯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에 공허해 졌다고 한다.
꿈의 동력이란 사람을 앞으로 건강하게 달리게 한다. 물론 그 꿈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조화로운 결과물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전제 하의 명제이다. 하지만 아까 얘기한 영화감상의 행위와 같이 너무 막연하거나 뻔한 꿈은 앞으로 달리지 못하게 한다. 그 자리에 주저 않기 쉽상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이다. 아니, 뻔하거나 막연하지 않은 꿈을 꾼다는 것도 어려운데, 이제는 꿈을 성취한 뒤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적어도 30대 이후는 그러한 삶이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 원하는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원하는 지위나 경제적 부를 갖게 됐다.
자, 피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일단 꿈을 이루었다고 해보자. 꿈의 개수가 각자 줄어들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충분한 것인가? 어느 순간 동력을 잃어버리고 허무해진 자신을 30대 들어 한 두 번 이상은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고서 잘 살아간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 못한 채, 다시금 멈추어 나도 모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우린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 자체로 완벽한 성취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꿈을 성취해도 그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을 지언정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길게 이어져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살아 있고, 무언가 멀리 멀리 이어져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원하던 꿈이 성취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환경과 노력과 능력과 여러 가지 상황이 적절한 콜라보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 혹은 모든 게 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어떤 남자는 결과적으로 다른 일을 하며, 개인적인 취미로 축구를 하고 있다. 그 꿈은 직업이 되지 않고, 취미가 되었다.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부분이 되었다. 그리곤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어떤 흐름이 되면 더 행복해 지는 지는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꿈을 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뻔한 지 막연한 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막연한 꿈을 누군가는 뻔하다고 느낀다. 뻔하다고 여겼던 꿈은 실제로 해보면 꽤 만만치 않고 막연한 흐름이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일관되지 않다. 120분을 단 1초도 쉬지 않고 몰입하게 되는 영화는 아마 이 세상에 없다고 본다.
영화는 재미 없으면 몰입하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지만, 인생은 재미가 없어도 몰입하다 보면 재미가 생기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일상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이란 꽤 어려운 주제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인 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꿈을 꾸지 않는 것은 방 한 구석에 평생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꿈은 긴 인생에 있어 엔진과 같은 동력이 된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뻔하거나 막연한 꿈을 쫓으면 오랫동안 달리기가 어렵다. 몰입을 최적화 시키는 꿈을 쫓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선 지금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아직까지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은 아무 의미 없다는 치기 어린 생각은 그만 바꾸어도 좋은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꿈을 이루는 과정은 결국 현실의 무수한 반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여유롭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꿈은 그 순간엔 좋은 결과물을 낼 지 모르지만, 인생 전체로 볼 때 영속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평생 결승선만 보는 경주마처럼 밑도 끝도 없이 내달리다 허무해 질 것이다.
꿈이 성취된 다음엔 반드 시 그 뒤에 무엇을 향해 달려갈 것인 지 생각해 보자. 정상을 오르게 됐을 때, 산을 내려 올 것인가,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계획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산이 아닌 바다로 갈 것인가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가장 좋은 꿈이란 세상 어디에도 명확한 정의가 없지만, 꿈의 가장 중요한 속성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막연하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으면서도, 무언가 그것을 성취하면 정말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이 뛸 지,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더 쾌적해 질 지 ‘궁금하다는 것’에 있다. 궁금하지 않은 꿈은 의미가 없다.
모두가 물리학자가 될 수 없다. 양자역학 따윈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돈을 벌어서 큰 집과 좋은 차를 사는 것의 성취감이 궁금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돈 버는 것에 치우친 직업을 가질 수 없다. 남이 바라볼 때 그럴 듯한 직급과 연봉에만 집착하는 쓸쓸한 중년이 되기엔 우린 아직 젊다.
무의식적으로 주말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르는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인생을 향한 축소판이 기분 좋게 숨어 있다. 난 무엇이 궁금한가? 그래서 난 어떠한 꿈을 꿀 것인가? 그 꿈의 정상에는 무엇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한 생각의 흐름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지 역으로 떠올려 보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꿈을 꿀 수 있고, 꿈이 성취 여부에 관계 없이, 허무하지 않게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인생은 뻔하지도,,, 막연하지도 않다.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인생은 꽤나 공평하다.
인생을 나답게 즐기고 싶은가?
아니, 적어도 꿈이란 것을 꾸고 싶은가?
그러면 일단 내일을 궁금해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