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그 보잘것없음에 대하여.

by TV피플


희(喜). 노(怒). 애(哀). 락(楽).




그 기본적인 감정의 집합체가 의미를 갖는 건, 아마도 우리가 하룻동안 표출하는 감정의 중심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말이어서 인지도 모른다. 동등한 위치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이 네 가지 감정 중에 단 하나의 감정은 나에게 늘 별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불편하다. 바로 노(怒)의 감정이다.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 심리적 상태. 그게 왜 나의 마음에 작용하면 나는 왜 늘 불편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이 나에겐 늘 심리적 숙제였다.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이지만,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즐거운 감정 또한 정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어떤 선을 넘어선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한 번 더 웃으면 그만이였다.



원론적으로 다시 얘기해 보자. ‘화가 나 있다’는 감정은 내가 지향하거나 꿈꾸거나 안착하고 싶은 심리적 기대치에서 벗어난 마음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누군가가 내 뜻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 불편한 마음의 감정이 과해지면, 화가 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부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은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올 확률이 기껏해야 절반에 불과하며, 모두가 나에게 원하던 반응을 늘 해 주진 않기 때문이다.

‘환경’과 ‘결과’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무형의 것이니 너무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것을 잠시 접어 두자면, 우린 타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 다른 노선을 취한다고 해서 화를 낼 이유에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싫으니, 화를 내며 그 불편한 마음의 공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곤 그 화를 풀기 위해 또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심한 언행을 일삼으며, 기분이 풀릴 때까지 누군가에게 궤변을 쏟아 내거나, 스스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악순환, 그 고리의 끝은 어디일까?



핵심으로 좀 더 다가가자. ‘화’는 불편함의 감정이고, 그 불편함은 내가 원하던 안정적인 마음의 공간, 꽈리를 틀고 싶은 심리적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마음의 이지러짐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표출해도 불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곤, 화를 낸 뒤의 후회의 감정, 무언가 허전하고 씁쓸한 감정,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떨떠름한 마음의 공백은 쉽게 채워 지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 곳에 있다. 그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스스로 화를 내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감정이지 않은가? 내 마음이 아니란 식의 사고는 또 다른 심리적 도피를 만들어 내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난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그건 내 마음이 아니다. 그럼 남은 생각의 흐름은 무엇이겠는가. 그건 타인의 마음이다. 내 스스로 내 마음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쫓아갔기 때문에 당연히 불편하고 안정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은 갈 곳을 잃고 ‘화’란 형태로 감정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아주 일을 열심히 했고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 나에게 딴지를 건다.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너는 이래서 잘못했다, 그래서 난 네가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러니 너는 이걸 고쳐야지 안 그러면 또 다른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충고를 했다고 치자. 그랬을 때,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부족하기 일쑤인 일개 인간에 불과하니 화가 난다. 당연하다. 우리는 늘 완전하지 않기에 화가 난다고 해서 너무 억울할 것은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당연한 반응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으로 화의 감정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남에게 화를 내고 후회한다. 스스로 감정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 불편한 화의 감정은 내 마음이 아니란 얘기를 다시금 곱씹어 보길 권한다. 즉, 남이 나에게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 또한, 그 타인이 스스로의 마음의 공간과 나의 행동의 불일치를 느꼈기 때문에 화가 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 반박은커녕, 그 타인의 감정을 아무 생각 없이 쫓아 나서다 보니, 내 마음이 방황하고 불편하다. 그게 바로 화의 감정을 갖게 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화’를 꾹 참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웃으면서 응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불편함의 감정을 갖기 전에, 내 스스로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을 조용히 제 3의 시각으로 조용히 관찰하자는 말이다. ‘화’가 난 마음의 서성거림은 결국 제 자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제자리를 찾아온 마음이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 그때서야 우리는 어떠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바라보고, 필요하면 해결책이나 다음 방향을 고민해 볼 수 있다. 순간순간의 삶의 방향을 가장 합리적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고민하면서 산뜻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결국,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자기다움’이 많이 확보되면서도 이기적이지 않은 길을 터벅터벅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지나고 난 뒤 바라보아도 꽤 아름다운 토요일 오후 4시 32분의 햇살처럼 따사롭고 포근하지 않겠는가.


부끄럽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을 난 잘 지키지 못하고 산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하고 치기 어리다. 떨떠름한 과일을 씹듯 난 여전히 생채기 어린 마음으로 상처를 받고, 화를 못 참을 때가 많다. 마음의 밭을 떠난 뒤에, 애써 다시 돌아오는 심리적 과정은 꽤 괴롭고 지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전해진 나로 하루하루를 산다기 보단, 좀 더 나답게 사는 방식을 최대한 많이 실천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군가 보기 좋게 인정하는 작업의 결과물, 업무 성과, 부나 명예가 아니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사이에 나에게 자리 잡은 마음의 흐름, 그 심리적 플로우를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정하에, 결국 중요하게 남는 것은 심리적 행복감이다. 모든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결과물, 환경, 고군분투하는 매일매일은 결국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행복한데 그 핵심이 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아주 마이너한 낙엽과 같은 심리적 굴레, 감정의 실타래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이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인생이란 내가 규정하는 의미와 방향성이 하루하루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있어 좌우된다. 그리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흐름에 있어, 마음의 흐름이 정말로 중요해 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흐름을 내가 통제하면 통제할수록 나만의 것이 된다. 누구의 구속과 억압도 받지 않은 채, 나의 삶을 살게 된다. 얼마나 멋진 일 인가.



그러한 ‘MY WAY’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타인의 마음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오고, 누군가가 나를 비방해도 절대 화라는 감정 앞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런 인생의 해답도 주지 않는 그 ‘보잘것없는, 하찮은 감정의 뫼비우스의 띠에 절대 말려들지 않는다.’ 그 시작은 타인의 감정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으려 하면 오히려 잘 되지 않는다. 그보단 타인의 감정을 따라가지 않고, 객관적으로 지금의 나의 마음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가는 데 집중한다. 나만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일종의 ‘MIND POSITIONING’을 유연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그건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구와의 만남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모두 적용될 수 있다. 화가 나는 순간 나는 일단, 흔들린 것이다. 내 마음의 안정적 공간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영문도 모를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당황하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절대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음의 동선을 조용히 따라가되, 그 감정이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가며 화를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전목마를 타듯 즐거운 풍경을 감상하듯, 유연하게 지나치는 마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의 노력은 반드시 나에게 또 다른 행복을 안겨 준다. 절대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매번 화를 내는 사람이 화를 내고, 그 사람 스스로는 상황이 그래서 화를 냈다는 착각에 평생을 산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마음의 공간’을 축소해 버리거나 떠나게 되면 결국 아무리 작은 상황에서라도 화나게 되어 있는 거라고’…

사람마다 심장 박동수가 다르듯, 마음의 보폭도 다르다. 그리고 우린 단 하나만 기억하며 살아도 충분하다.

‘내 마음의 보폭을 늘 유지하며, 절대 다른 사람의 감정의 발에 걸려 넘어지진 않을 것.’

즉, 화나지 않는 희(喜). 애(哀). 락(楽).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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