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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심리학 TV

로그아웃 신드롬

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by TV피플


얼마전 KBS2에서 파일럿 프로그램 '신드롬맨'이 방송되는 것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수, 배우 등 여러 분야의 연예인이 자신의 일상생활을 관찰카메라로 소개하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심리적 특이성을 심리학 전문가 닥터 짱가의 분석을 통해 구조적으로 마음 상태를 풀어나간다. 일단 닐슨코리아 기준 3.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정규편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예전에 2014년 말부터 2015년초까지 JTBC에서 방영된 '속사정 쌀롱'과도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라 개인적으로 꽤나 반갑다. 당시, 윤종신, 진중권 등 다양한 패널이 나와 심리학 용어를 곁들여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적절한 매칭과 담화로 어느 정도 매니아층을 형성했었다. 물론 나도 그 매니아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을 통해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떠한 자신을 표방하는 지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


그것을 직접 TV에 사연을 보내기도 어렵고, 친구에게 상담 받아도 뚜렷한 분석보다는 적당한 위로와 부딪히는 술잔이 전부이고, 어려운 마음을 정신과에 가서 상담하기에도 아직 사회적 컨센서스가 부족한 것만 같아 스스로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근데 뚜렷한 설명이 없다보니 계속 마음이 소진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일상이 무료하고 권태기 같은 삶을 스스로 절감하지만 돌파구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태엽감는 새', '댄스댄스댄스'처럼 우물에 들어가거나 벽을 통과하거나 계속해서 춤을 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마음에 최대한 접근해 보려다
다시 일상의 쳇바퀴 속으로 회귀하는 것이
우리네 흔한 일상이다.



어쨌건 다시 화두의 중심으로 돌아와보자. 그 '신드롬맨'이란 프로에서 가수 정용화가 일상을 공개했다. 한강이 보이는 탁트인 전망의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은 흔한 톱스타의 일상의 재생 반복같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정용화는 여러 모로 소진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로그아웃 신드롬에 빠진 것 같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이는 어찌보면 '번아웃' 증후군과 꽤나 닮아 있다.

미국의 심리학전문가 프로이덴버거가 명명한 현상으로 약물중독자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며 인터뷰하던 전문가들의 일종의 심리적 에너지 고갈의 상태를 말한다. 증후군이든 신드롬이든 어차피 같은 의미이고, 우리네 마음에 자리 잡은 심리적 '공통'현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언가 한가지에 너무 열심히 몰두하다가 무기력증, 대인기피증, 사회거부와 같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번아웃의 상태. 과연 우리는 예외일까?



많은 사람을 늘상 상대해야 하는 연예인이란 직업. 우리 또한 연예인은 아니지만 다양한 업무와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한 일상의 성공이 늘 보장된다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우린 늘 다양한 좌절을 경험하며 산다.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지 않은 채로 입시경쟁, 취업경쟁에 시달려 사회에 나와 보니, 남는 건 사람들의 시선과 자본주의의 어설픈 맥락 뿐이다. 나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 소홀한 채로 사회에 뛰어들어 보니, 나도 없고, 당신도 없다.




인터넷으로 점철된 상태에서 어떤 정보를 검색하고 습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지 난감하고, 직장에서 부과되는 업무도 맥락없이 성과위주, 야근중심의 방향성 없는 리더쉽의 조직 속에 많은 일을 해도 성취동기는 갈 길을 잃었다. 좋은 집을 사고,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우린 또 다른 세대 물림을 하고 있다. 각종 메신저와 SNS 속에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어느 새 인간관계가 다양해 지다보니 누굴 실제로 만나고 대화해야 할지.. 그 상대를 고르는 것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가수 정용화는 고백한다.


쉴 때 사람을 만나면 그것조차 일의 연장처럼 느껴진다고.



꽤나 핵심을 짚은 멘트다. 개인여가와 일과 인간관계에서 끊임없는 심리적 방전을 요구 받고 있으니, 특정 사이트를 로그아웃 하듯이 나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한 선택. 세상 속에서 나를 찾고 싶었으나, 결국 그것이 무리인 것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절감하며, 그 오프라인 세상 또한 웹 사이트의 하나로 취급하고 스스로를 로그아웃 시켜 머리는 무기력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담하기엔 우린 너무 어른이 되어 버렸고, 주변에도 전문적인 상담가가 없다. 가끔 읽어보는 책 속에 해답이 나오는 듯도 하지만,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잘 알려주는 책이 없다. 운동과 휴식을 적절히 확보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라고 하지만, 그게 실제로 반복된 사이클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듯 쉬운 일이냐는 말이다.



그래도 우린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 한다.


아니, 사회에 대한 복귀를 넘어 우리 스스로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실 나도 그 방법에 대해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를 지키고 싶어서, 나만의 정체성을 산뜻하게 그려내고 싶어서 집필을 시작했다. 물론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나 어느 정도 스스로를 인지 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쳐 나간 것만 같다. 하지만 일상의 번아웃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여행에 다녀오고, 무언가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몰입상태를 찾아가는 것은 적절한 탈출구가 되지만 다시 일상에 돌아오면 스트레스와 심리적 무력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일상을 로그인과 로그아웃의 형태로 분리하지 않고, 모든 일상을 아무런 심리적 거리낌 없이 정면으로 통과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또렷히 한 발자욱씩 걸어가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여전히 많은 심리학책, 자기계발서가 난무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인생의 시간은 한 정되어 있고(생을 마감하는 시간 조차 우린 모르지만 이미 정해져 있고), 번아웃에서 벗어나, 로그아웃 없이도 일상을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남은 일생을 최대한 나답게 채워나가는 것. 꿈을 발견하는 것. 그것을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누군가의 질책도 마음의 동요를 잃으키지 않는 나다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다워지는 것. 그리고 모두들 나에게 다양한 말을 쏟아내지만 스스로 가장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방법을 몰라 누군가에게 질책하며 헤매고 있다는 것. 그리고 행복해 지는 방법은 돈을 모으며 불안감을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시대에 태어났건, 무슨 일상을 보내건 변함없이 나란 사람의 존재감을 주어진 일상에서 확인하고 심리적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있다는 것.



개인 문명은 분명 내 안에 숨쉬고 있다는 것.


꼭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나를 발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분명 우리 안에 그 해답이 있다.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일상을 심리적 동요 없이 끊임없이 밟아 가는 것을 통해서만 말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모두에게 다르고, 각자만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 그 마인드셋을 소중히 하는 것. 그 한없이 찬란한 개인문명의 가치를 획득하고 살아가 보자.



우리는,

939년을 살아도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아니라,

100년 남짓 살아도 잠깐 쓸쓸했을지언정 남은 수십년은

한없이 찬란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쓸쓸함이 아닌 찬란함으로 바꿔보는 노력.

분명 지금 이 순간의 일상에 그 답이 숨어 있다.

내가 아는 나의 답...


그 찬란함을 스스로 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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