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을 리딩하는 노하우의 재발견
김구라, 김성주, 전현무, 신동엽, 유재석.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스타MC 5인방을 꼽으라면,
이 다섯 명 정도가 아닌가 한다.
작년에 'MC들의 처세술'이란 제목으로 개그맨, 가수, 아나운서 출신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전문 MC의 필모그래피를 각자에 개성에 맞추어 풀어나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중 누군가는 도태되었고, 누군가는 살아 남았다.
물론 그 외에도 윤종신, 강호동, 이특, 유세윤, 이휘재, 박나래, 이수근, 양세형, 정형돈, 김용만 등 다양한 패널형 엠씨도 있다. 물론 이 중에는 단독 엠씨를 소화하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단독으로 진행해서 프로그램을 살리지 못 하거나, 오히려 더블엠씨나 패널 형태로 TV쇼를 더욱 맛깔나게 하는 기준도 포함한 리스트업임을 밝혀둔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듯이, 아나테이너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전 직업에 관계없이 탁월한 MC(진행자)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모든 이를 소개할 수도 없고, 진행자의 기본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위 중에 있다. 어쨌거나 TV 프로그램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할 때 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 몰입도란 채널을 돌리지 않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을 말한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전혀 별개로 하고, 예능프로 MC의 딜레마를 짚어보고자 한다.
딜레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역으로 예전과 달리 MC의 포지셔닝이 다양해 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크게 나누어, 스타급 단독 MC, 더블 및 패널형 MC, 일반 패널의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각자의 포지션에 따른 이러한 분류를 뒤로 하고, 패널까지도 진행자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요즘 예능의 흐름 속에서 프로그램을 살리는 리딩 노하우가 무엇일 지 몇 가지만 알아보자.
먼저 공감능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탁월한 단독 MC로는 유재석을 꼽을 수 있다. 무한도전, 동상이몽, 런닝맨, 패밀리가 떴다 등을 통해서 드러낸 공감능력은 전반적인 출연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유재석의 뛰어난 점은 실내 진행의 스튜디오형 프로 뿐 아니라, 무한도전, 런닝맨 등의 야외실전형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출연자가 나오든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적절한 포지션을 부여해주며, 오합지졸인 패널을 하나로 묶어주게끔 주위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한 편, 패널 MC로서의 공감능력은 윤종신이 가장 탁월하다고 본다. 속사정 쌀롱, 비법, 라디오스타 등을 통해서 드러난 그의 자질은 아마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양한 청취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렴했던 것이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라디오스타에서는 특유의 깐죽거림으로 출연자를 당황하게 할 때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멘트도 출연자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하는 출연자의 멘트 뒤에 반응하는 윤종신의 추가 멘트를 보면 알 수 있다. 끊임없이 공감하고, 다른 예를 들어 상대의 말을 꽤 일리있고 유니크한 고백으로 만들어준다.
두 번째로 윽박지르기식 진행과
프로그램 장악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조화를 놓치는 진행자는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강호동은 여러 모로 변화가 가장 큰 시점에 존재한다. 스스로도 그러한 고민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1박2일의 독보적 캐릭터를 내려 놓고, 도를 넘지 않은 호랑이식 캐릭터는 프로그램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는 '신서유기 3'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시즌제성 동 프로그램 중에 금번 방영되는 3탄이 가장 역동적인 재미를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냐하면 강호동은 신서유기에서 진행을 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하나로서 도를 넘지 않고 몰입한다. 잘 짜여진 호랑이식 포지션 정도면 충분하다.
이외에도 '한 끼 줍쇼'의 시청자 방문형 더블엠씨 진행과, '한식대첩4'의 막내둥이 같은 힘빼기식 진행은 스스로 스타 MC를 버리고 장기 레이스에 돌입을 선언하는 것만 같다. 이는 적절히 유효해 보인다. 다만 스타MC로서의 설득력은 이제 오래된 짐과 같이 내려 놓아도 좋을 듯 하다.
세 번째로 프로그램의 컨셉을
잘 살릴 줄 알아야 한다.
특정 예능 프로를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TV 화면에 대한 응시로 활용함과 동시에 그에 걸맞는 기대치를 뽑아내고 싶어 한다. 그러한 보상심리를 만족시키려면 진행자가 프로그램 컨셉이 가장 잘 드러나는 형태로 진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적절한 재치로 프로그램 몰입도를 높이면서도 사람들의 주위가 환기되었을 때, 적시적소의 멘트로 프로그램 진행의 룰과 컨셉을 너무 뻔하지 않게 녹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부분에서 가장 탁월한 단독 MC는 전현무라고 생각한다. 히든싱어의 성공도 어찌보면 그러한 요소를 잘 활용한 성공케이스로 볼 수 있으며, 나혼자 산다와 같은 패널형 MC, 더 나아가서는 패널에 녹아드는 형태로까지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당연히 담당 진행프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가끔의 시상식 말실수를 제외한다면 스스로 더 다듬어 가는 센스로 장기적인 MC 지위가 확보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네 번째로 프로그램에 관계 없이
자신의 색깔을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가장 천부적인 MC는 김구라와 신동엽이다. 특히 김구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여, 질문 자체가 핵심을 찌르며 주변을 아우르는 공수비 전환이 빠르다. 썰전, 라디오 스타 등에 이어 최근엔 본격연예 한밤에 이르기까지 분석형 예능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김구라가 화두를 던져 초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면, 신동엽은 상대방의 대화를 듣고 나서 자신의 흐름으로 만드는 것에 가히 천재적이다.
누가 어떤 멘트를 해도 자신의 웃음 코드에 맞게 받아치며, 어떨 때는 상대방의 의도와 관계 없이 19금 농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개구쟁이 같은 유머로 탈바꿈 시키기도 하는 등 상대방의 에너지에 자신의 에너지로 프로그램 기류를 바꾸는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TV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일종의 신뢰감이라고 해도 좋을, 믿고 보는 진행자의 유연함. 이 부분에 가장 탁월한 것은 김성주가 아닌가 한다. 복면가왕에서 노련하고도 재치있게 복면 가수의 편안함과 개인기를 만들어 낸다. 아빠 어디가?나 뭉쳐야 산다와 같은 야외 예능에 있어서도 패널인듯 하면서도 진행자의 주도권을 놓치 않는 유연함은 사람들이 김성주 프로를 아나테이너 변형의 가장 유쾌한 형태로 받아들이게끔 만들었다.
이휘재에 대해선 고심을 많이 했지만, 말 실수가 많고, 십년 넘게 다양한 프로를 진행을 해오면서도 노련함이 늘지 않는 진행자여서 겨우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자 한다. 진행자는 캐릭터와 스타일을 떠나서 무조건 게스트와 시청자를 편안하게끔 해야 한다. 그건 어느 프로에 있어서든 베이직이다. 그것을 놓치는 진행자는 실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수근 역시 최근에 다양한 프로로 자숙 이후 열 개 가까이 프로에 나오고 있지만, 뭐랄까 전체 흐름을 읽지 못하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난다. 가장 유쾌한 성공의 발판을 만든 신서유기3에서도 쉬지 않고 뱉어내는 코멘트를 보면서도 아쉬울 때가 많다. 완급조절이 필요한 MC인만큼 장기적으로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양세형은 자신이 전형적인 패널이라는 것을 자처하는 뉘앙스를 여실히 드러낸다. 가장 작은 포지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만담가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을 보일 때면 꽤나 안타깝다. 그래도 번뜩이는 재치가 있고 프로그램 속 코너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의 멘트가 많아서 PD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겠지만, 그 스스로가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꽤나 고민해 볼 부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박나래, 양세형, 이특, 유세윤, 정형돈, 김용만 등은 패널이 더욱 어울린다. 역할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패널일 때 가장 재치있게 프로그램에 기여한다고 보여진다. 특히 김용만은 자숙 이후 단독 MC의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마추어적인 분석에 그친 칼럼일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능 프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조심스럽고도 신나게 글을 써 보았다. 우린 예능 프로로 더욱 울고 웃을 수 있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카타르시스의 에너지가 최대한 증폭되기 위해선, 단독 MC, 더블 및 패널형 MC, 일반 패널의 포지셔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중파, 종편, 인터넷, 모바일로 컨텐츠 플랫폼이 더욱 다양화 되는 지금의 TV.
그리고 트랜드를 가장 급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예능의 특성.
프로그램의 PD 역시 프로그램 장악력을 높여가는 이 시점에서 MC의 포지셔닝과 방향성은 꽤나 의미있는 접근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