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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심리학 TV

허지웅의 포지셔닝

엔터테이너 vs 방송인 vs 글 쓰는 사람

by TV피플


개인적으로 글 잘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화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적절한 일상적 단어를 힘있게 배치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에두르지 않고 적절한 비유로 사유하는 듯한 글이 좋다. 누가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머릿 속의 단상에 대해, 아주 명쾌한 실태래 풀기 명수와 같이, '이건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얘기야. 난 이러한 비유를 예로 들어,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와도 같은 식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허지웅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난 어쨌건 그의 글이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글루스, 텀블러의 글부터 작년까지 집필한 한겨레 칼럼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씨네21'에 연재한 '허지웅의 경사기도권'에서 '지금 모래를 퍼내고 계십니까.'란 화두로 '모래의 여자'란 일본 영화에 대한 담론을 풀어낸 글이 있다. 개인적으로 꽤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솔직히 그가 명지대 경영학과를 나온 것과 집필능력은 관계가 없다. 필름 2.0 공채, GQ KOREA, 프리미어의 입사경력도 '그의 글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에 있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글은 읽는 사람의 취향에 부합한 형태로 마음을 움직이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은 내 마음을 움직인다. 왜냐하면 난 '메타포(일종의 암시)'가 촌스럽지 않은 형태로 잘 베어있는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누가 뭐래도 오늘의 나는 이렇게 생각해'란 형태의 단단한 뚝심이 마음에 든다.




그의 글은 기본적으로
'결핍'의 심정에서 출발한다.


내가 허지웅과 직접 얘기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건,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선 애착의 심정이 뒤엉켜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는 SBS '미운 우리새끼'에서 다스베이더를 왜 좋아하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확인해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결혼 뒤 이혼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본이 되는 부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된 자신이 꽤나 혐오스러웠다고 tvN '택시'에서 담담히 얘기했다.



나와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의 개인사에 대해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다양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그 '결핍'의 심정이 그를 더욱 독립적이고 뚜렷한 시각을 가진 집필가로서의 면모를 형성하는데 꽤나 영향을 미친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결핍'이, 다소 치우친 컴플렉스, 타인에 대한
자기 방어, 인생을 쿨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기본 자세,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안간힘들을
다양한 글 속에 풀어내게끔 하고 있다.



그 타인에 대해 냉소적이고 자아비판적이면서도 쿨한 인생관이 내적으로 자신을 추스리게 했고, 많은 영화와 책을 섭렵하게 했다고 보여진다.



나약해지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꿈 꿨고,
한 편으론 자기다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노력했는 지도 모른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얄팍하게 풀어내는 것도, 인상 깊었던 글귀를 모두 소개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나는 그의 앞으로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주목해 보고자 한다.



1979년생. 2009년부터 6권의 책을 내고, 다양한 잡지와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종종 보이는 인터뷰 글들과, 일부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간 허지웅.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과 함께 주변인과의 공감을 꽤 시도한 '속사정 쌀롱'.



공중파까지 섭렵하며, 동상이몽, 미운 우리새끼 등의 방송 영역에도 자리매김 한 허지웅, 다양한 라디오 프로에서의 코너 게스트. 킬미힐미에서 드러난 까메오 연기. 이젠, 대선 '국민면접' 심사위원에 이르기까지.



평론가이어서 자기세계를 구축한 듯 하면서도 날카롭고 번지르한 외면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꽤나 많은 곳에 발을 들여 놓은 듯 하다. 실제로 그를 본 건, 수년 전 '미생'의 작가 윤태호의 북 콘서트에서 인터뷰어로서였다. 아직 방송 시작되기 수십분 전, 그는 차가운 날씨의 홍대 거리 한 켠에서 담배를 피며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어쨌건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글 쓰는 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을 넓혀 가는 허지웅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잡지, 신문을 를 필두로 한 미디어 칼럼'이라는 점이다. 적당한 호흡으로 한 주제에 대해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재주, 그 명쾌한 필력이 가장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다시금 상기하며, '칼럼니스트로서의 행보'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방송에서 여러 패널로서 활동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느 정도 얼굴을 알리고, 자신의 개성을 브라운관 속에서 드러내면 그 자체가 나중에 또 다른 형태의 '칼럼 독자 응집력'으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그런 면에서 우리 브런치 작가들은 취약하다. 아무리 브런치 작가로서 수상을 하고 출판을 해도 그러한 활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응집시킬 지 잘 알 수 없고, '브런치'란 한정된 미디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브런치 상을 수상하고 책을 출판한다 한들 기념비적 자기 만족'에 머무르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주제는 또 시간을 두고 나눠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허지웅 담론으로 돌아오자.


다만, 엇그제 대선 예비후보들의 인터뷰에 있어서만큼은 칼럼에서 보이는 만큼의 기분 좋은 날카로움과 흐름을 관통하는 질문과 반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 좀 관대한 마음으로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계심을 푸는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이제 내년이면 마흔이고, 여러 모로 인생의 균형잡힌 시각 속에 더 멋진 칼럼을 쓰는데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글 쓰는 스스로의 응집적 자기집중의 그러한 자세를 벗어나, 이젠 대중도 그를 꽤나 잘 알고, 글 쓰는 생명력 또한 꽤나 많은 독자가 느꼈으니, 더욱 다양한 활동으로서가 아닌,,,



'다양한 주제로서의 칼럼니스트'가
가장 적절한 '인생 수트'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장편소설 작가로 자평하지만, 에세이, 번역, 단편소설 등으로 다양한 글쓰는 공간을 만들어가며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리는 마라톤식 인생을 스스로 실천하는 것과도 맥락이 유사하다.



또한, 이전부터 있어온 다양한 논란들, 예를 들어 '국제시장', '변호인' 비판과 종편출연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란에 대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길 기대해 본다.


의견과 필력을 드러내되, 애매한 성향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스스로가 꽤나 영민해야 한다. 쿨하거나 날카로운 모습만으로는 쉽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다. '속사정쌀롱'에서 보여준 유쾌함으로, 그렇게 하나씩 칼럼을 써나가듯, 인생을 사뿐히 걸어가길 응원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너무 매몰차게 대하기 보다는, '그래서 나는 어떤가'라는 식이라도 스스로의 담론을 정리해나가는 것에 집중하는 혜안이 삶 속에 꽤나 필요하다.


허지웅은 분명 스스로 엔터네이터가 되려고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거니와 꽤나 이름이 알려진 지금에서 또한 여전히 스스로를 글쟁이라고 소개할 사람이다. 다만, 다양한 활동에 있어 글을 쓰는 맥락을 잃지 않기를 독자로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여러 활동의 끝에 가장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건, '메타포 가득하고 유쾌한 칼럼'이길 담담히 바란다.




허지웅은 글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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