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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마라톤 &

by TV피플


무한도전을 지난 10년간 봐 온 애청자로서 지금 그들의 행보에 있어서 한 편으론 박수를 한 편으론 애정 어린 걱정을 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형태이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으로 자리잡은 각종 수식어와 개별 멤버의 각종 풍문과 사건들. 그리고 또한 새로운 포멧으로 다시금 크리에이티브한 면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MBC 주말 버라이어티. 10년을 압축하는 장황한 설명은 각종 매체에서 많이 다루어 왔으므로 그보다는 지금의 무도의 포지션, 앞으로의 무도를 캐릭터적 측면으로 아주 간략하게 짚어 보고자 한다.

일단, 지금은 아이돌 멤버 광희가 새로운 멤버로 영입되어 활발히 활동 주에 있다. 10년간의 팬덤이 만들어낸 상대적으로 보다 엄격한 잣대로 인해, 보다 철저하게 대중의 외면을 받은 길과 노홍철에 대한 부산물적 기획으로 식스맨을 모집한다는 프로그램 속의 에피소드. 그 결과물로서 광희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공황장애와 극도의 방송적 피로감을 호소한 정형돈의 일시적 하차로 무도는 다섯 명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컨셉이 전혀 잡히지도 않았던 초반,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굳이 컨셉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어설픈 무모한 도전은 말을 거꾸로 주고 받으며 박 깨뜨리기 벌칙이 양념처럼 녹아든 ‘거꾸로 말해요 아하(AHA)!’를 계기로 개별적으로 살아 숨쉬는 캐릭터적 예능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다양한 캐릭터가 모든 가능성과 컨셉을 쉴 세 없이 빨아들이며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포멧과 다양한 형태의 에피스드를 때론 짧게, 때론 긴 호흡으로 주고 받으며 프로그램의 장기적 안착에 성공한다. 캐릭터가 자리 잡았기에, 그러한 캐릭터의 변모와 예능적 감칠맛이 살아있는 다양한 에피소드의 선정만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면, 무한도전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 된다. 즉, 캐릭터별 흐름의 분석이 무한도전에선 꼭 필요한 디딤돌이라 하겠다.

무한도전 내의 컨셉과 에피소드의 시작을 주도하며,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가는 유재석.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흠잡을 곳 없는 진행과 피식 웃게 만드는 조촐한 애드립을 발판으로 하여 게스트에 대한 정확한 장단점 파악이 그의 장점이지만, <놀러와>, <해피투게더> 등을 통해 드러난 예능적 진행에 대한 일종의 의도하지 않은 피로감 및 예측가능성은 유재석으로 하여금 또 다른 딜레마를 스스로 만들게끔 한다. 예능을 통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기대치는 안정감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흐름과 컨셉 전반을 아우르는 소소한 재미가 기본일 테니, 단순한 무한도전적 프레임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MC로서의 주춧돌에서 다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1인자를 노리는 2인자를 넘어 점오의 캐릭터로 오랫동안 주책바가지 악역을 자처한 박명수 역시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위치를 점하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냉소적 독설과 애드립 역시, 이제 여러 번 반복 승차를 통해 지루해진 롤러코스터처럼 일종의 피로감을 자아낸다. 박명수만이 할 수 있는 애드립은 무릎을 탁 칠만한 낄낄거림을 동반하지만, 다른 예능에서도 그의 독설적 애드립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만큼 여러가지 포지션에 있어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보이는 점오의 캐릭터에 거는 대중적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과 로열티만으로 박명수가 티비 채널을 붙잡기엔 그는 더 이상 젊지도 어리지도 않다.

브레이인 서바이벌의 대히트가 계기가 되어, 약간 모자란 동네 바보형으로 시작한 정준하는 실제로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실제 성격에 가까워 보이는 범퍼 역할의 캐릭터이다. 박명수가 호통을 쳐도 그냥 볼멘소리로 일관하고 동생인 하하에게 내쳐저도 그는 그냥 웃으며 모든 것을 받아넘기려 한다. 그러한 캐릭터가 누군가에겐 친근함을 누군가에겐 왠지 얄미운 밉상으로 보이게끔 하는 한계를 드러냈고, 그러한 한계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는 정준하는 레슬링 투혼이나 정총무로서의 노력적 반전을 통해 장기적인 캐릭터적 완성에 겨우 안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먹방의 캐릭터로, 툴툴거림을 받아주는 동네 형의 이미지로는 자체 발광하기 어려운 한계성을 갖고 있다. 최근, 마리텔, 쇼미더머니 5에 등떠넘기듯한 출연으로 또 다른 노력적 반전을 꾀하는 것은 박수를 보낼만하다. 단, 그 이후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본인이 만든 캐릭터에 저절로 무너지는 씁쓸함을 경험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귀여운 듯, 터프한 듯 자기주장이 확고한 하하는 M net VJ 시절부터 갈고 닦은 입담과 특유의 천진난만한 유들함으로 보이지 않는 기폭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 어찌보면 생존형 캐릭터로 스스로에 대한 장단점 분석을 가장 잘 하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1인자나 2인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유느님 바라기 일색인 듯하면서도 레게 등 음악적 관심분야가 예능적 컨셉으로 정해지면 어김없이 진지하게 스스로 들숨과 날숨을 자신만의 호흡으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걸리적 거리지 않고 여러 프로그램을 넘나드는 영민함이 있다. 시청자 누구도 하하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진 않는다. 그냥 매번 먹는 국수에 가끔 고춧가루나 간장양념을 솔솔 뿌려먹는 정도의 보완적 역할이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단, 무한도전이 토크쇼였다면, 그는 여지 없는 중간자적 패널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도 강하다. 그러한 수동적인 패널로서의 자신을 지금까지의 방송 경험을 잘 곱씹어서 새로운 형태로 드러내려는 다른 노선을 선택할 필요가 분명해 보인다.

광희는 아직 적응이 꽤 필요한 캐릭터이고, 대책 없이 열심인 와중에 드러난 또 다른 반전의 올곧음이랄까 진중함이랄까,, 그러한 것들이 간간이 어필되며 한창 무도에 녹아들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정형돈이 중간에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면서, 길, 노홍철을 넘어서 또 다른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하다. 단, 그러한 상황적 반사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올해 말까지라고 본다. 우리가 광희를 통해 무한도전적인 무엇을 말할 수 있냐라고 했을 때, 우린 잠시 생각에 멈추고, 그 생각 역시 꽤 소모적인 시간할애임을 깨닫는다. 젊고 패기 있고, 예능감 넘치는 아이돌 출신의 예능돌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성공과 인지도를 꿈꾸고, 노래를 그리 잘 하지도 않는, 꽤나 열심인 그가 밉진 않지만,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다면 방송연예인으로서의 수명은 절대 장기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로 출발했지만, 철저한 캐릭터적 예능 프로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개별적인 캐릭터의 합이 꽤나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합은 개별 캐릭터의 자생적 존재감과 또 다른 모멘텀이 감지 되지 않는 이상 시청자들에게 필연적인 피로감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중의 도덕적 기대치와 예능적 평가의 날카로움은 길과 노홍철 사건으로 인해 극에 달해 있다.

방송 역사상 팬덤이 가장 두터운 예능 프로의 서바이벌로 출발해 이젠 바이블과도 같은 무한도전. 향후 2-3년 안에 고정적 팬덤과 기존의 캐릭터별 충성도로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독자의 기대치가 사라질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 무한도전이 새로운 팬덤을 확보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진심으로 또 다른 장기화에 성공하길 바란다. 누군가 지치면 다른 캐릭터가 바톤을 이어 받고 수습하는 지루한 이어달리기가 아닌, 모두가 손을 마주 잡은 채 끊임없이 달리는 새로운 형태의 마라톤으로서.

물론 예능이니 당연히 재미있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그 방식 역시 무한도전적 DNA를 뿜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무한도전의 마라톤. 각 캐릭터의 고민을 통해 꽤 충실히 만들어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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