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꾸는 꿈. (1/3)

村上春樹の夢、 1/3

by TV피플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상실의 시대’ 신드롬을 수십년째(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잠재적으로 꽤 많다고 생각되므로) 이어가고 있으며,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에 관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풀어나가기가 어려워 계속 망설여 왔던 것 같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일괄적으로 관통하는 문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작품 해석의 노력이 여러 사람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모든 것을 섭렵하는 글을 작성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그저 무언가 써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글을 적어본다.



본격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3년경으로 생각되는데, 국내외 출간된 모든 하루키의 책을 읽고 더 읽을 책이 없어 공허한 마음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르포형식으로 정리한 ‘언더그라운드’는 소설적 지향점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 읽지 않았다.)

그의 문체 속에 드러난 사상, 라이프 스타일, 각종 풍경, 상념 등이 너무 마음에 들어, ‘가끔은 빗속을 달려’란 소설을 100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2개월만에 완성한 기억도 있다. (물론, 제본 형태로만 남아 있는 일종의 따라잡기 소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리믹스 소설’이란 형태로 일본 내에서 출간하는 움직임도 있다. (모토기 후미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REMIX’, 이누카이 쿄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REMIX 등)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노르웨이 숲’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소설이란 개인적인 의미로 치환했을 때, 얼마나 많은, 그리고 강렬한 메타포(metaphor)를 안겨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상대적으로 그 의미가 약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며, 그 보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 ‘댄스댄스댄스(1988)’, ‘태엽감는 새(1995)’, ‘해변의 카프카(2002)’로 이어지는 개인적 삶과 존재이유에 대한 통찰이 더 메타포적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인물 설정을 드러낸다. 변변치 않게 살아가지만 우연한 기회에(혹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정신적 성장을 하고 삶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삶이란 참 쉽지 않은 것이지만, 개인 스스로 지극히 한정적인 삶 속에서 의미를 재발견하고, 지속적으로 태엽을 감고 춤을 추고, 모래폭풍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어느 새 자신은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된다는 큰 맥락이 있다. 물론 이건 독자의 시선에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고, 소설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 조금은 비극적이고도 허무한 결말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 속에서 원한이 되는 누군가를 죽인다던지, 현실 세계의 막을 내리고 무의식 세계로 영원히 침잠한다던지 하는 식의 결말이 많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