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신양의 코멘트, 그리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란 주제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인생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구분이란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며, 결국 그 모든 하루하루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하루가 시작되고, 일상이 시작되며, 삶이 변화하고, 나다워진다는 주제로 수십 가지 문장을 써 내려가며 하나씩 의미를 짚어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문할 수도 있다. 어떻게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시험에 낙방하고, 원하던 보고서 기안이 거절당하고, 승진을 하지 못하고, 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성공이 되는 뻔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끝까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나 역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생각해 보면서 어떤 식의 화두가 적당할까라는 생각을 가만히 떠올려 보던 와중, 예전에 tvN에서 방영하던 ‘스타특강쇼’란 프로그램에서 2012년 초에 배우 박신양이 담담하게 얘기하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꽤 유효한 연결고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좋은 일을 억지로 담담해할 필요도, 나쁜 일을 굳이 좋은 일처럼 포장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떠한 생의 순간에도 내가 경험하는 일에 대한 나의 자세를 결정할 수 있다. 그 자세가 결국 나를 더 받아들이고, 내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긍정하며, 나다움을 유지하며 사는 가장 적절한 자세란 걸 깨닫는 순간, 어떤 인생의 파도 속에서도 나만의 흐름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박신양의 첫 번째 코멘트를 살펴 보자.
#1. “절박한 생각을 해야 될 시점이 온 거죠. 근데 스스로한테 이러한 대답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굶어 죽은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연기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달려 들었는데 굶어 죽은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한테 위안을 찾았습니다. “괜찮아. 하고 싶은 거 해. 어디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걸 한 번 해봐”라고 스스로한테 허락을 하고 용납을 한 것 같아요.”
일단 세상에 단촐한 몸뚱아리 갖고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나다운 것이다. 나다우려면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과감하게 해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여러 상황이 있다.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만나는 모든 표현과 언어와 일상에 대해 한 번 생각한 것을 시도해 보고, 언급해 보는 자세는 정말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나다운 베짱과 확신 속에 강화되고, 즐거운 인생에 대한 첫 번째 접근 방식이 된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2. 한 러시아 철학자의 시가 있었는데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말이였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러한 애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의 인생은 행복하고 힘들지 않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있었죠. 힘들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게 됐어요. 힘들 때와 힘들 지 않을 때가 얼만큼씩 있지? 거의 50%인 것 같구요. 좀 더 생각해 보면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힘든 시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나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요. 힘든 시간을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알게 되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배우 박신양도 힘든 건 힘들 수 밖에 없다고, 나쁜 일은 결국 나쁜 일로 느껴지게 된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단,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즉 외면하면서 나쁜 일을 온 몸으로 거부하느냐, 아니면 인생이 나쁜 일 투성인 건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니, 그 시간을 수용하고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늘 사소한 일에 아둥바둥 한다. 그건 나다움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힘든 시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아둥바둥 하지 않고 담백한 미소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두 번째 자세가 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그의 코멘트를 들여다 보자.
#3. 흐트러지는 거에 대해서 좋아하는 거나 선호하는 거나, 그런 것만이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는 게 인간적인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인간은 모든 걸 한계를 가지고 태어났잖아요. 그 한계에 도전해 보는 게 인간적인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나는 인간적이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번 다해보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 보고 싶어요. 끝까지.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날이 오겠죠. 그 때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괜찮았어. 즐거웠어. 아주 괜찮은 여행의 인생이었어.” 난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이 세 번째 얘기는 아이러니하게, 위의 첫 번째, 두 번째 삶의 방식을 나답게 지켜나갈 때 가능한 방식이다. 하고 싶은 걸 시도해 보고, 힘든 시간을 담담해 온몸으로 끌어 안고 난 뒤에야 그 인생의 한계에 도전해 보며, 나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중요하게 바라보는 돈과 명예, 좋은 집과 멋진 세단, 주변의 시선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은 더더욱 위와 같은 얘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러한 세 가지 삶의 자세는 힘든 순간에 나답게 말을 하고, 행동하고, 담담히 하루를 수용하는 자세가 될 때 느껴지는 희열, 그리고 꽤 해볼만하다라고 그 일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에겐 평생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늘 외적인 조건만을 강조하고, ‘결국 인생은 그런거야’라며 늘 인생의 주변을 맴돌며, 남 탓을 한다. 남 탓을 평생하며 100년도 채 안 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위대하진 않아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세상에 드러내며 한 발 한 발 가슴 뛰는 인생을 살 것인가.
20%의 나와 80%의 후회,
80%가 남의 시선과 의견으로 채워져 그러한 성공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냥 살아 가면 된다.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각자 사는 방식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100%에 가까운 나,,,
무엇을 선택할 지는,,
바로 지금 당신의 오늘 하루에 대한 자세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