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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Sep 28. 2020

[하나 그리고 둘] (Yi Yi)

directed by 에드워드 양, 2000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말은 널리 알려졌으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우리 각자 인생에게 받는 성의 없는 대우와 박한 비중을 생각하면 주인공이란 말은 가당찮다. 진짜 주인공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내 인생까지 들이닥쳐서 주인공 노릇을 하는 저 잘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주인공이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남모를 초라한 문제를 두고 앓기, 그리고 어느 날 낫기. 이런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결코 누구도 좋아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세기말 대만을 배경으로 타이베이의 어느 가정을 조명한다. 영화의 첫 장면인 결혼식을 신호탄으로 각 인물들은 새로운 상황으로 출발하고, 그 안에서 말 못 할 사정 하나씩을 떠안는다. 30년 전 첫사랑과 재회하는 아빠, 뇌졸중으로 의식불명에 빠진 외할머니, 외도 상대와 급작스런 결혼을 한 이모부, 절친의 남자 친구를 좋아하는 누나... 흥미롭게도 이 인물들은 같이 사는 한 가족이지만 서로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며 영화 내내 문제와 문제가 서로 얽히지도 않는다. 다들 남모르게 고뇌하고 방황하는 동안 이 집의 막내아들 ‘양양’만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진실의 절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며 가족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러닝 타임 총 3시간가량의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사건들은 독특하지만 그 사건들은 인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영화는 이 모든 게 일상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이런 무던한 톤과 매너에 감독은 이 집의 막내아들, ‘양양’의 대사와 행동으로 메시지를 부여한다. 양양은 사람들은 자신의 앞모습만 볼뿐, 뒷모습은 볼 수 없으니 ‘진실의 절반’만 아는 셈이라고 직접 언급한다. 직후 그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아빠에게 받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고 다닌다. 이 말을 들은 아빠는 속이 꽤나 찔렸을 법하다. 아빠뿐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당장 겪고 있는 문제, 바로 ‘진실의 절반’은 감춘 채, 반쪽의 모습만 서로서로 보여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가족들은 각자만의 특별한 이야기로 서사를 이루지만 이 이야기들은 서로에게 철저하게 감춰져 있다. 예를 들어, 아빠가 첫사랑과 재회했다는 사실을 나머지 가족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첫째가 겪는 절친과 절친의 남자 친구 간의 삼각관계도 다른 가족들에게는 노출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대한 예리한 고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현실을 다 꿰는 양 살지만 당장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어려움도 그들이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알 길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달의 뒷면’을 간직하며 사는 우리 앞에 ‘양양’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주요한 깨우침이자 감동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감춰진 뒷면이 모든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한 인물에게 무게가 쏠리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뒤,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 한 명의 이름을 댈 수가 없다.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말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하나 그리고 둘>에 담긴 인물들 중 잘나거나 화려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영화의 서사를 이루는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완전히 감춰진 것을 감안하면, 등장인물 일체가 평범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한 인생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 주인공들은 우리처럼 때때로 실수하고, 욕심내고, 방황한다. 그들이 주인공인 이유는 그들의 고민과 선택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의 주인공인 이유도 이와 같다. 우리가 특별하거나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고민, 선택, 성공, 실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생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받은 제일의 감상은, 바로 아모르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였다. 비록 초라한 뒷면, 부끄러운 뒷면, 감당하기 버거운 뒷면을 품어 차마 어디 보여주기 힘든 인생일지라도, 그 인생은 이미 영화와 같이 가치 있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별 거 없기 때문에 더욱 사랑할 만하며, 인생을 사랑하는 이야말로 진짜 인생의 주인공임을 가르쳐 주는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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