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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Nov 24. 2021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디어 에반 핸슨 (2021) Directed by 스티븐 크보스키


 에반은 우울과 불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것조차 그에게는 힘겨운 일이다. 그는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쓴다. 성격 장애를 앓고 있는 코너는 우연히 에반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를 읽는다. 그는 편지에 여동생이 언급된 것을 보고 격분해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 버린다. 며칠 뒤, 코너는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유품으로는 ‘에반 핸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뿐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에반을 코너의 유일한 친구로 착각하고 위로와 관심을 표한다. 에반은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난생처음 사람들의 관심을 경험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에반의 거짓말은 점점 더 큰 상황을 불러일으켜 에반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타인을 향한 관심'이다. 영화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배제된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명은 에반이고 다른 한 명은 코너다. 에반은 거짓을 통해 코너와 동일시된다. 코너의 죽음으로 본인들의 무관심을 깨달은 사람들은 코너에게 주었어야 할 관심을 에반에게 쏟는다. 코너의 부모는 아들과 맺지 못했던 유대를 에반을 통해 이룬다. 그리고 코너의 꿈이었던 음악은 에반을 통해 영화 속에서 구현된다. 에반이 코너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코너와 그의 가족들은 점점 서사 속에서 소외된다. 아무도 코너가 왜 죽었는지 묻지 않는다. 코너를 통해 받았던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도 부재한다. 영화의 모든 시선이 에반에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모든 위로와 치유, 성장은 오직 에반의 몫이다. 영화의 시선은 영화 속 인물들의 시선보다도 훨씬 무심하다.


  영화는 에반이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고 같은 내용의 편지로 영화를 닫는다. 그 내용은 ‘너는 너답기만 하면 된다’는 응원의 말이다. 편지가 무색하게 영화는 에반이 계속 거짓을 말하도록 몰아간다. 거짓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는 힘이 가득한 반면, 진실을 밝히는 부분은 작고 초라하다. 진실이 밝혀지는 이유도 결국 거짓의 정황이 들통났기 때문이지 에반이 내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영화는 성장 대신 정당화에 가장 공을 들인다. 우리는 알에서 깨어나는 새를 보기 원했으나, 영화는 알에 갇힌 상태를 이해시키려는 말들로 일관한다. 결국 알은 외부의 힘에 의해 깨졌고 에반은 반은 비자발적으로 세상에 나온다. 주인공을 보호해야 한다는 영화의 이기적인 시선 때문에 결국 에반은 관객에게 비호감이 되고 만다. 영화는 주인공을 응원하는데 관객은 주인공을 미워하는 아이러니에 영화는 좌초한다.


 시선뿐만 아니라 연출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뮤지컬 영화임에도 [디어 에반 핸슨]에는 앙상블이 없다. 배우 한 사람의 개인 기량이 영화를 끌고 간다.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변주되는 넘버가 없다는 점도 뮤지컬 영화로서의 인상을 옅게 한다. 게다가 뮤지컬 시퀀스의 연출은 대체로 매력이 부족하다. 시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우 얼굴 클로즈업은 밋밋함을 넘어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코너의 가족들이 함께 ‘Requiem’을 부르는 대목의 연출은 드라마틱하지 못하며 오히려 촌스럽다는 인상을 주어 감정 전달을 방해한다.


스티븐 크보스키의 영화는 줄곧 성장하는 이들의 세계를 그려왔다. 그가 감독한 두 편의 영화, [월플라워]와 [원더]는 공통적으로 청소년들의 성장통과 세상과의 조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까닭은 준수한 연출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아픔과 성장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디어 에반 핸슨]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주인공의 성장기이지만,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영화의 시선이 되려 무심하고 이기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부디 그가 이어온 착한 영화의 계보가 여기서 끊기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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