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리왕 Nov 29. 2021

외부의 적과 맞서지 않고 내부의 상처를 보살필 때

엔칸토: 마법의 세계 (2021) directed by 자레드 부쉬 등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가 21세기 들어 20번째로 제작한 영화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는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공식처럼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특징이 부재한다. 모험이 없고, 악당이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공통분모로 갖는 특징 중 하나는 단연 ‘모험’이다. 모험이란 자고로 떠나야 시작된다. [겨울왕국]은 안나가 엘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주토피아]는 주디와 닉이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다. 그러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모험은 있어도 떠남은 없다. 모든 이야기는 오직 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화의 배경은 영화 제목과 동명의 마을인 ‘엔칸토’보다도 더 조밀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이 어려워진 이들에게 영화는 집 또한 멋진 모험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분명한 대립항이 존재했다. [겨울 왕국]에서는 한스 왕자가, [주토피아]에서는 벨웨더 부시장이 반주인공인 동시에 악을 담당한다. 비록 할머니 아부엘라가 미라벨을 박하게 대하지만 그렇다고 아부엘라를 악당이나 대립항으로 볼 수는 없다. [엔칸토]의 인물들은 일체 내부인이며 영화 속에 비아(非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마드리갈 가족이 맞서야 하는 문제는 그들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마드리갈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까시타는 외부의 침입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안에서부터 발생한 균열이 마드리갈 가족을 위협한다.


 한병철 교수가 쓴 [피로사회]는 지난 세기를 면역학적 시대라고 설명한다. 친구와 적이 뚜렷하며 외부의 낯선 것을 제거해야만 하는 시대이다. 판데믹은 인류를 다시 면역학적 시대로 되돌려놓았다. 전 세계는 국경을 봉쇄하고 타인과의 접촉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세계인의 꿈과 희망으로 책임져온 디즈니는 이 시기에 알맞게 타자와의 대립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외부인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며 오히려 우리 내부의 아픔을 돌봐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엔칸토] 속 인물들은 마찬가지로 [피로사회]가 언급한 ‘긍정성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괴로움을 겪는 인물은 한계에 가로막힌 미라벨이 아니다. 오히려 ‘마법’이라는 무한한 긍정성이 루이사와 이사벨라를 착취한다. 20세기에는 능력을 얻음으로써 자아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반면 21세기에 디즈니의 MCU는 히어로들이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진짜 영웅이 된다는 식의 서사를 거듭했다. [엔칸토] 역시 인물들은 미라벨이 마법을 얻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뻔한 서사를 비켜간다. 오히려 가족들은 마법을 상실한 덕에 진짜 가치를 발견하고 연대에 성공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들을 [엔칸토]는 수려하게 짚어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마법을 되찾는 엔딩은 동화적이지만 이율배반적이다. 긍정성의 폭력에 맞선 이야기는 결국 인물들에게 같은 긍정성을 부여하며 끝이 난다. 만약 마드리갈 가족이 마법이 없는 평범한 가족이 되는 결말이었다면 이야기는 더욱 성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요 타깃인 저연령층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으며 납득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모두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해피엔딩을 위해, 이야기는 인물들이 어렵게 얻은 가치와 깨달음을 앗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