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2021) directed by 클로이 자오
생물학은 우리가 진화해온 존재라고 말한다. 지금의 우리는 유전자 전달에 더 유리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은 결과라고 대답한다. 인류의 역사 내내 존재를 고민해온 우리에게 이런 대답이 우울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유전자 전달 기계에 불과하며 자유의지는 허상이라는 말을 달콤하게 여길 사람은 흔치 않다. 영화 속 이터널들 역시 같은 처지다. 그들은 사랑하는 행성과 종족들, 즉 지구와 인간을 수호하는 것이 그들이 이 땅에 보내진 이유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언젠가 수확해 이용해야 할 인간들이 죽지 않도록 뿌려진 농약에 불과했다. 이터널들은 고대에는 신으로 추앙받았으나 실은 반쪽자리 신이었다. 그들의 반쪽은 인간처럼 고뇌하고 분노하며 낙원을 고대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유의지도 없고 낙원도 없었다.
[이터널스]의 이터널들은 전 인류의 애통을 가로지르며 동시에 응축시킨 인물들이다. 그들은 인류의 과오와 만행을 모두 지켜본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도 속수무책으로 안타까워한다. 인간들은 고통의 순간마다 ‘신은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인간들이 이렇게 고통받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책망했다. 고통의 시간, 이터널들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그곳에서 함께 괴로워했다. 함께 고통당하고 함께 슬퍼했다. 신이 무능하거나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고, 감독은 이터널들의 입을 빌려 신이 하고 싶을 말을 전한다. 인간의 고통과 이터널들의 고통이 만나는 지점은 피조물인 관객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우리의 울부짖음이 적어도 허공에 흩어지는 뜬구름은 아니었으리라.
[이터널스]는 갈등에 있어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플롯이 유사하다. 인물들은 '데비안츠'와 싸우지만 그것들을 섬멸하는 것이 영화가 해결해야 하는 갈등은 아니다. 영화의 갈등은 이터널스 내부에 있다. [시빌 워]에서 인물들은 본인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이른바 ‘초인 등록법’을 두고 둘로 갈라졌다. 인물들은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뜻은 일치했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반면 [이터널스]가 던지는 화두는 이보다 훨씬 광범휘하다. 그들은 지구와 인류의 종말을 두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논점을 기준으로 양분된다. 한쪽은 절대자의 선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들이 섭리를 완수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쪽은 이런 비자발적이고 무분별한 희생에 반기를 든다. 본인들을 지켜주지 않는 절대자 대신 곁을 지키는 가족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큰 가치로 말한다. 또한 반기를 드는 행위 자체를 자유의지를 회복하고 존재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보기도 한다.
[이터널스]는 지금껏 봐온 MCU의 영화는 확연히 다르다. 영화 속에서 어벤저스의 인물들과 사건이 카메오처럼 언급되는 걸 제외하면 아예 별개의 세계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영화 외적으로도 MCU의 단독 영화 중 가장 무거운 영화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만큼이나 묵직한 발걸음을 영화 내내 딛는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 우리 존재는 유전자 전달 기계에 불과한가? 우리를 위해 준비된 낙원이 존재하는가? 신의 섭리는 전적으로 모두에게 선한가? 인류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더욱 정답과 멀어져 간 그 질문들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전에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MCU의 영화와는 상반된 톤이다. 오히려 비주얼과 주제 의식에 있어 DC 확장 유니버스의 ‘맨 오브 스틸’이나 ‘원더우먼’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런 비교를 이미 짐작한 듯 배트맨과 슈퍼맨을 영화 속에 직접 언급하며 [이터널스]의 세계는 엄연히 구분된 세상이라고 관객들에게 어필한다. 그러나 여전히 관객들이 기대하는 MCU의 영화와의 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제와 세계관의 무게감 때문에 이전의 흥행작들처럼 경쾌함이나 재치를 가져갈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처럼 인물의 내면이나 특정한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에도 한계에 도달한다. 다뤄야 할 인물만으로도 이미 영화는 포화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장문의 자막으로 세계관을 적어놓고 관객에게 읽도록 하는 자충수마저 둔다. 다만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도 첫 편인 ‘배트맨 비긴즈’는 한 편의 완벽한 영화가 되기보단 시리즈를 쌓아 올리는 머릿돌로서의 역할을 다한 바 있다. [이터널스] 역시 추후에 이어질 영화들에 있어 톤과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기로가 될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로부터 ‘테마파크’라는 오욕까지 입은 바 있는 MCU는 이제 시네마를 넘본다. 초대형 오락 영화는 이제 인문학, 철학, 신학을 영화 안으로 끌어온다. [이터널스]는 가늠할 수 없는 너비의 지평선을 우리에게 아주 살짝 보여준다. 다음 10년 간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