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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Dec 09. 2021

그들의 사랑은 눈길에 막혀 너무 늦어버린 구급차

러브레터 (1995) directed by 이와이 슌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을 때면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누구냐 넌’이라고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전신 거울에 담긴 나를 보고 ‘you talkin’ to me?’라고 낮게 말하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떠올라 남몰래 흉내 내본 적도 있다. 영화 속 상징적인 대사와 장면은 마치 운동 기억 같다.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도 일상 속 닮은 순간을 마주하면 자연히 떠오른다. 대단한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눈 덮인 풍경을 보고 ‘오겡끼데스까’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을 테다. [러브레터]는 그런 영화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며 나이가 들어도, 이 세상에 ‘눈’이라는 게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매년마다 떠오를 영화다. 떠오를 수밖에 없는 영화다. [러브레터]가 이토록 진한 감상을 남기는 이유는 단연 영화의 주제가 ‘향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는 두 지점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하나는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러브레터]는 한 번에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만약 이츠키와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를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관객은 이를 ‘두 명의 인물이 나오는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1인 2역이라는 생경한 수를 둠으로써 ‘한 명의 인물이 나오는 두 개의 이야기’라는 일종의 착시를 느끼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이츠키의 서사와 히로코의 서사는 잘 엮여있지만 동시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전진한다. 히로코는 사랑을 떠나보내고, 이츠키에게는 사랑이 찾아온다. 반대 방향인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그 사랑의 대상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사랑의 과정이 꽤나 늦었다는 점이다. 히로코는 연인이 죽은 지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를 마음에서 떠나보낸다. 이츠키는 성인이 되어서야 중학생 시절 첫사랑은 인식한다. 제 때 이루고 맺지 못한 감정은 영화 속 등장하는 구급차와 같다. 이츠키가 고열로 쓰러진 순간, 구급차는 눈길에 막혀 제시간에 올 수 없다. 이는 구급차의 부재보다도 훨씬 안타깝다. [러브레터]는 가능성에서 그치고 마는 우리 삶 속 수많은 확률들의 무심함이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삶의 중성 앞에 먹먹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한 발 뒤늦은 인물들의 사랑은 그들이 쓰는 편지와도 닮아있다. 편지는 발화의 시점과 도달의 시점이 현격히 차이 난다. 오늘 글을 써도 그 글을 읽어야 할 사람은 며칠이 지나야 그 글을 읽을 수 있다. 편지가 전달되는 중에도 글을 쓴 사람의 상황과 마음은 편지글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한 발 늦는 매체를 통해 히로코와 이츠키는 소통한다. [러브레터] 속 편지의 형식은 다양하다. 설원에서 외치는 안부 인사는 3년간 부치지 못한 히로코의 편지다. 도서 대출 카드 뒷면에 그려진 그림은 10여 년 만에 도착한 죽은 이츠키(카시와바라 타카시)의 편지다. 한 발 늦은 두 인물의 사랑은 도달까지 걸린 시간만큼이나 중첩되어 관객에게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마지막 죽은 이츠키의 편지가 이츠키에게 도착하는 순간, 이츠키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카드를 넣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입고 있는 카디건에는 주머니가 없다. 마음을 담을 주머니를 마련하는 일도 제 때 해내기란 너무 어렵다. 평생의 시간이 주어진 대도 우리는 사랑 앞에 무방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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