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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Dec 22. 2021

알고도 속아주고 속으면서도 믿어보는 민간요법 사랑법

페어웰 (2020) directed by 룰루 왕

 영화는 빌리의 거짓말로 시작한다. 날씨가 추우니 모자를 쓰라는 할머니의 말에 빌리는 쓰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뉴욕에서는 귀걸이도 잡아당겨서 훔쳐간다는 할머니의 말에 빌리는 귀걸이 안 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신 빌리는 코에 피어싱을 하고 있다. 가족들이 벌이는 거짓말에 동조하지 못하는 빌리조차도 이미 숱한 거짓말을 해왔다. 영화의 마지막은 할머니의 거짓말이다. 이별의 순간, 빌리와 할머니는 서로 포옹한 채로 멈춰있다. 관객은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다. 할머니는 본인이 울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우는 사람은 없는데 달래는 사람만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중요한 건 달래려는 마음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영화는 철저히 만들어진 세계다. 우리는 영화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상한다. ‘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라고 말한 장 뤽 고다르의 말은 모순 같지만 동시에 영화라는 모순을 푸는 열쇠다. 초 단위로 쪼개진 이 가상에서 우리는 진실을 느낀다. 가상의 삶을 통해 진짜 삶을 반추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가상의 감정을 내면화하고 현실의 감정을 배출한다. 중요한 건 1초당 24번의 거짓이 아니라, 그 거짓들 덕에 느끼는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페어웰]은 가족 영화이지만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 같기도 하다. 가족들이 꾸민 가짜 결혼식은 영화이고, 그 가짜에 진심으로 동참하는 할머니는 관객인 우리와 닮았다. 할머니가 결혼식의 진위 여부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에 동참하는 것으로 진실한 삶의 모습들을 배출하는 영화적 체험이 중요하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가짜 결혼식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 가짜 결혼식을 준비하며 울고 웃고, 화도 내며 삶의 풍성함을 누린다. 할머니에겐 이 가짜 결혼식이 ‘1초에 24번의 진실’인 셈이다.


 빌리는 집 안에 들어온 새를 날려 보내지 못한다. 마땅히 집에 있어서는 안 되는데도 조심스러워 손도 뻗지 못한다. 그랬던 빌리는 할머니가 알려준 기합을 외치고, 바로 다음엔 나무에 앉아있던 새 떼가 날아가는 쇼트가 이어 붙는다. 이 두 개의 이어진 시퀀스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관객은 빌리의 기합 때문에 나무의 새 떼가 날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장면은 전혀 상관없는 두 쇼트를 단순히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이어 붙였을 뿐인데 두 장면 사이에 개연성과 인과가 생긴다. [페어웰]은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할머니에게 가짜 결혼식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직한 눈속임을 제공하고 관객은 또 한 번 눈감아준다. 관객은 빌리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믿어본다. 중요한 건 1초당 24번의 거짓이 아니라, 그 거짓들 덕에 느끼는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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