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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Dec 26. 2021

무너진 땅에서 무너진 마음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 directed by 하마구치 류스케

연극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극작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부부이자 최고의 동료다. 출장을 떠났다가 일정이 바뀌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집을 나선다. 이후에도 둘은 변함없이 서로를 대하지만 가후쿠는 오토에게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오토는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2년 뒤 가후쿠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연극제에 연출 담당으로 초청받는다. 연극제에서는 과묵한 운전기사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섭외해준다. 두 사람은 오토가 생전 녹음해둔 연극 대사 테이프를 함께 들으며 매일 차에 오른다.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며 서로가 지닌 깊은 아픔들을 마주한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가후쿠는 병원에서 녹내장이라는 진단과 함께 안약을 처방받는다. 그는 오토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들으며 차 안에서 안약을 넣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배우들은 진짜 눈물을 흘리기 어려울 때 안약을 사용한다. 가후쿠는 진짜 아픔을 두고 가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가후쿠의 문제는 아내의 외도가 아니다. 아내의 외도에 대해 차마 상처받지도, 아내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회피가 그의 진짜 문제다. 그의 문제는 내면화되지 못한 채 가짜 눈물을 타고 흐른다. 이 장면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가후쿠라는 인물의 앓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가장 감정적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응어리는  안에서 외우는 대사로 표현된다. 그는 체호프의 연극인 `바냐 아저씨` 대사를 완벽하게 숙달하고 있다. 그러나  대사들은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안에서만 되풀이된다. 오토() 이름처럼 소리로만 남았으며 혼자 모는 차에서 응어리를 들어줄 사람은 없다. 미사키의 등장은 청자의 등장이다. 응어리를 들어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초반에  사람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혼자만 듣던 대사를 읊는 것으로, 그리고 침묵을 공유하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하며 서로 유대감을 쌓아간다.


`드라이브 마이 `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대표작인 `체리 향기` 흡사하다. 삶의 희망을 상실한 인물이 모는 자동차라는 점에서, 그리고 운전자와 동승자와의 관계를 통해 영화가 전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엔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함을 느낄  있다. 그러나 `체리 향기`에서 삶의 의지가 존재의 발견에 있다면 `드라이브 마이 `에서 삶의 의지는 부재의 수용이다. `체리 향기` 우리 삶에 존재하는 체리를 발견하고 맛보라고 말한다. 반면 `드라이브 마이 ` 우리의 체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담담히 전한다.


영화의 주요한 무대는 바로 히로시마다. 모두가 알고 있듯 히로시마는 태평양 전쟁  원자폭탄으로 인해 초토화되었던 도시다. 그러나 현재는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 거듭났다. 히로시마는 여전히 파괴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미사키는 가후쿠를 평화의 공원이 보이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원폭으로 파괴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히로시마의 재건은 파괴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보존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가후쿠와 미사키의 재건은 그들의 폐허를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은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향한다. 미사키의 반파된 집을 보며  사람은 그들의 무너져내린 마음, 무너져내린 가정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사람은 실패를 인정하면 정말 실패할까 , 상처를 인정하면 정말 상처를 받을까  오랜 시간 외면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와 상처를 인정한 순간에 가후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다. `살아가야 .` 그때 비로소 가후쿠는 안약이 아닌 진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안에서만 읊었던 연극의 대사들은  밖으로 나와 진짜 무대 위에서 발화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세상에서 운전대를 잡은 미사키의 모습이다. 팬데믹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보는 미디어에서는 마스크  사람들을 찾아볼  없다. 우리는  상황이 여전히 믿기 힘들며 받아들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자는 팬데믹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지어본 경험도 전혀 없다. 그러나 `드라이브 마이 ` 만들어진 세계임에도 2021년의 현실을 고증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영화도  뼈아픈 세계를 인정하고 수용하자. 세상이 무너진  같은 오늘날에도 계속 살아가자.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자. 마스크를  미사키의 얼굴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있는 원폭 돔과 같다. `드라이브 마이 ` 언젠가 과거가  오늘의 아픔을 전시한다. 분명하게 목격하고 수용하고 보존한다. 그리고 살아가도록 한다. 이렇게 영화는 한번 더 1초에 24번의 진실로서 역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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