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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Jun 25. 2022

'브로커'를 보다 발견한 단촐한 것들

브로커 (2022) directed by 고레에다 히로카즈

원본: 익스트림무비(https://extmovie.com/movietalk/79846029)


1.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소영(이지은 분)은 동수(강동원 분)에게 본인이 꿨던 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빗물에 지난 날의 내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꿈, 그러나 현실의 비는 소영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동수는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두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소영은 어렸을 때 너무 마음에 드는 친구의 우산을 훔쳤고, 그 우산을 '갖다 버렸어'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저에겐 어린 시절 소영의 우산이 현재의 우성이와 겹쳐 보입니다. 심지어 발음도 비슷하죠.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즉, 부부에게 아이가 '두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인 셈이죠. 그러나 소영은 우산과 아이 모두 환영 받지 못할 방법을 통해 얻습니다. 어린 시절 소영이 마음에 드는 우산을 얻었지만 쓰지 못하고 버렸던 사건이 우성이를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2. 동수도 축구를 잘한다


 보육원에 사는 해진이(임승수 분)는 손흥민 같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보육원 출신 중에는 프로 축구 선수도 있죠. 보육원장과의 술자리에서 동수는 자신의 후배를 소개하며 '내가 포워드, 얘가 미드필더'라고 말합니다. 그날밤, 술에 취한 동수와 후배는 부둣가에서 병을 세워놓고 캔을 발로 차서 맞추는 놀이를 합니다. 후배는 한번도 성공을 못하는데, 동수는 2번 연속으로 성공하고 '4대1'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모두 모으면 동수도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갖고 있으며 한 때 축구선수를 꿈꾸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아이들이 동수를 선망하는 이유에는 이런 점도 있겠죠. 그러나 그는 축구 선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상현이 말한 성공하지 못하는 97%, 그리고 동수가 말한 부모가 다시 오지 않는 39/40에 해당합니다. 영화에는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상상의 여지를 충분히 남긴 부분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물들을 더욱 골똘히 들여다보게 되죠.





3. 이름을 써놔도 훔쳐갈 놈


 해진이가 항상 갖고 다니는 축구공에는 삐뚤빼뚤한 한자가 써있습니다. 상현(송강호 분)이 한자의 의미를 묻자 해진은 자신의 이름이라고 답하죠. 상현이 '너 네 이름 진짜 좋아하나보다'라고 말하자 해진은 '이렇게 해야 안훔쳐간다'고 말합니다. 상현은 의뭉스럽게 웃으며 '암만 이름 써놔도 훔쳐갈 놈들은 다 훔쳐간다'고 말합니다.


 상현은 베이비 박스에서 아이를 훔쳤습니다. 훔친 아이의 품에는 이름이 적힌 쪽지가 있었죠. 결국 그가 말한 '훔쳐갈 놈'은 바로 본인입니다. 본인의 행동을 자조하는 농담이죠.




4. 세차 Before / After


 서울로 향하던 상현의 봉고차가 주유소에서 자동 세차를 받습니다. 이 때 해진은 장난으로 조수석 창문을 열고, 차에 탄 모두가 흠뻑 젖습니다. 이후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으며 인물들은 서로의 진짜 이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상현'이라는 이름은 사실 그가 아들을 낳으면 짓고 싶었던 이름이었고, 그는 수형으로 인해 군대에 가지 못했습니다. 소영이 쓰던 '선아'라는 이름도 사실은 그가 싫어하던 이웃 여자의 이름이었죠.


 저는 이 영화가 세차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는 '씻기'라는 테마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런 표현은 비가 쏟아지는 첫 장면, 상현의 직업이 세탁소 사장인 점, 그리고 차에만 있느라 씻지 못하는 형사들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씻기'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시각적인 묘사는 이 세차 장면입니다. 씻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사적이고 타인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순간을 함께한 이 인물들은 이 장면을 기점으로 점점 가족처럼 보입니다.







5. 데미소다


 최근 커뮤니티상에서 '브로커 정식'이라는 이름까지 붙을 만큼 영화 속 먹방이 화제죠? 그 음식들 중 유독 제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데미소다'였습니다. 혹시 데미소다라는 이름의 뜻을 아시나요? 불어에서 '절반'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Demi-'와 탄산음료를 뜻하는 'soda'의 합성어입니다. 반은 탄산음료고 반은 쥬스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라는데요. 아마 판타지 좋아하시는 분들은 '데미갓'이라는 용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영화 속 상현 일행은 사실상 '데미패밀리'입니다. 혈연 관계와 생면부지가 섞인 이상한 가족이죠. 물론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사가족'을 표현하는 미쟝센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에 감탄했던 부분입니다.




6. 우리가 사실은 브로커


 수진(배두나 분)은 이 형사(이주영 분)에게 '아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나봐'라고 말합니다. 이 형사는 '우리가 브로커 같네요'라고 대꾸하죠.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 우성이의 거래가 경찰의 진입으로 무산되는 걸 보며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성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구나.' 이상한 유사가족인 상현 일행은 당연히 우성이를 지킬 수 없고, 번듯한 부부에게 우성이가 가야만 행복할 거라는 단정이 내 안에도 존재했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법과 상식 안에서는 이 생각이 옳지만, 상현 일행을 괴롭히던 편견이 내 안에도 있었음이 까발려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7. 생일을 모르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


 "태어나줘서 고마워." '브로커'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대사인데요. 이 대사를 하기 전에 동수는 왜 불을 끄자고 했을까요? 저는 이 장면이 생일 파티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생일을 왜 축하하고 파티를 하나요? 태어나줘서 고맙기 때문이죠. 반면 이 상현 일행은 모두 버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고아의 가장 큰 슬픔 중 하나는 자신의 진짜 생일을 알 수 없다는 점일텐데요. 그래서 보통 보육 시설에선 아이의 진짜 태어난 날을 알 수 없을 때 그 아이가 발견된 날짜를 생일로 삼곤 합니다. 이 버림받은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탄생을 축하받습니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애잔한 마음이 더 큽니다. 특히 얼굴을 감싸쥐고 돌아 눕는 송강호 배우의 그 짧은 모습은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도 눈물겨웠습니다.




8. 무서워


 이 영화에서 가장 사적으로 와닿았던  장면을 꼽자면 관람차에서 해진의 모습입니다. 물론 그 짧은 장면 이후에 동수와 소영의 긴 대화도 큰 감동을 주죠.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그 직전에 나온 해진이를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해진이는 고소공포증을 느끼며 창 밖을 보지 못하고 상현의 무릎에 눕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바다로 나아가라, 멀리 멀리 가라는 뜻입니다. 그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물론 아이 본인도 그러길 바랐죠. 그런데 막상 멀리까지 와보니 무서운 마음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자리에 도착했다고 완벽한 행복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고소공포증이 없는데 이상하게 높은 곳에서 떨고 있는 인물을 보면 애잔하고 애틋합니다. 최근에는 '더 배트맨'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9. 보육원의 이름


 동수와 해진이 나온 보육원의 이름은 '해송원'입니다. 아마 '바다로 보내는 집'이라는 뜻이겠죠? 영화 전체가 품고 있는 바람과 닮아있는 아주 깨알같은 이름입니다. 결국 마지막에 우성이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과 겹쳐보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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