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 필름을 타고! (2020) directed by 마츠모토 소우시
'산울림의 시대에 살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고민하다 깨달았어요. 아, 나는 잔나비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이게 내 아들에게는 부러움이겠구나.' (빠더너스, [오당기] 최정훈 편 중에서)
‘맨발(이토 마리카 분)'은 고등학교 영화부에서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려 하지만 동급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무산된다. ‘맨발’의 눈에 동아리가 만드는 ‘로코물’은 애들 장난일 뿐이다. 아쉬운 마음을 사무라이 영화를 보며 달래던 어느 날, 그는 ‘린타로(카네코 다이치 분)’라는 낯선 소년과 마주친다. ‘맨발’은 ‘린타로’만 있다면 자신의 영화, ‘무사의 청춘’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알 수 없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린타로’를 포획한 ‘맨발’은 불붙은 심지가 되어 영화의 완성을 향해 빠른 속도로 타들어간다.
'맨발(이토 마리카 분)'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그가 사랑하는 모든 영화는 20세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만을 원하는 동시대와 도무지 타협할 수 없는 외골수다. ‘맨발’의 가슴 안에는 살아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애향심과 살아가야 할 날들을 향한 막막함이 공존한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데, 그곳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곳이라니. 이 답답한 청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화를 보는 것뿐이다. 그에게 영화는 고까운 오늘날을 향해 부리는 일종의 몽니이며 과거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러 ‘린타로’가 미래에서 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낸다. 미래에 ‘맨발’은 거장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이후 영화라는 매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그의 말은 되려 설득력 있다. ‘린타로’가 과거로 온 이유는 ‘맨발’의 시대를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거장 감독의 데뷔작 ‘무사의 청춘’을 직접 보고 싶어서 그는 과거로 돌아왔다. ‘맨발’과 마찬가지로 ‘린타로’에게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며 한탄하던 ‘맨발’의 청춘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상상 속에만 있던 황금기였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가히 호들갑의 세계다. 영화를 향한 억눌린 마음이 계절을 만나 과잉에 가깝도록 쏟아진다. 인물들은 햇볕 아래 마구 고함치고 발을 구른다. 그들은 시끄러울지언정 밉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호르몬이 날뛰던 시기엔 누구나 시끄러웠고 우리 모두 겉멋이 전부라 믿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이 잔뜩 들어간 마지막 시퀀스 역시 우스꽝스럽지만 마냥 비웃을 마음은 들지 않는다. ‘맨발’의 영화는 스스로를 둘러싼 닮은꼴의 적들을 베어 넘기는 상상을 구현하는 것으로 맺는다. 처한 상황을 상상으로 전환하고, 그 상상을 다시 한번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이 곧 영화 아니던가. 빗자루에 맞아 풀썩 풀썩 쓰러지는 교복 차림 학생들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컬트적이기도 하다. 무언갈 열렬히 좋아하고 간절히 바라본 사람에게 ‘썸머 필름을 타고!’는 길티 플레져로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