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directed by 요아킴 트리에
우리 삶을 책으로 쓴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탯줄을 자르는 가위질일까, 어머니의 진통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자와 난자의 수정과 착상일까. 내 인생이 언제 시작했는지 내 인생인데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울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답게 이 문제의 핵심을 간파한다. 자신의 인생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녀의 답안이다.
영화는 담배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울리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정지해 있지만 몸의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이다. 마치 담배를 다 태운 후엔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만 같은 모양새다. 이 첫 장면은 챕터 2 ’바람피우기’에서 다시 한번 등장한다. 이 챕터에서 ‘울리에’는 ‘악셀(안데르스 다니엘 리 분)’의 파티에서 빠져나와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 분)’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영화는 상징적인 한 장면, 한 자세를 영화 초반에 보여주어 그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녀는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간다. 그리고 도착한 오른쪽이 다시 왼쪽이 되면, 그녀는 다음 오른쪽으로 향한다. ‘대체 내 삶이 언제 시작할까’라고 질문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삶이라는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명백한 두 개의 축이 이야기를 지탱한다. 하나는 바로 사랑이다. 영화는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 것으로 말하는 듯 하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울리에’와 ‘에이빈드’는 바람에 해당하지 않는 행동만 하기로 한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모래에 깃발을 꽂고 깃발이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모래를 가져가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이 게임의 아이러니는 깃발을 쓰러트리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이 깃발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사랑의 어쩔 수 없는 모순을 세련된 연출로 그리며 관객의 공감을 산다.
다른 또 하나의 축은 ‘울리에’의 성장이다. 영화는 프로이트의 발달 이론을 중심으로 그녀의 성장을 논한다. ‘울리에’의 삶을 향한 강력한 욕구로 포문을 뗀 이야기는 곧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를 위시한 여러 설정과 장면을 경유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쓴 글은 구강성교가 주제이며 ‘악셀’의 캐릭터는 항문이 상징적이다. 또한 ‘울리에’가 ‘악셀’에게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악셀’의 음경이 드러나는 부분은 이 영화의 사상적 바탕을 알리는 인장이나 다름없다. 사랑 영화의 자장 안으로 들어온 프로이트 이론은 이 영화를 더욱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성장 영화로서 정체성을 더 공고히 만든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마법 같은 연출로 우리의 감상을 다채롭게 만든다. 시간이 멈춘 오슬로를 가로질러 ‘에이빈드’와 재회하는 장면, 또는 버섯을 먹고 경험하는 환각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은 단언컨대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일출이다. ‘울리에’는 ‘악셀’이 위급하며 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연락을 받는다. 곧장 병원으로 달려갈 줄 알았던 관객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밤새 온 도시를 배회한다. 그녀는 비참히 차버렸던 전 연인의 임종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행위만 놓고 본다면 영화 속 그녀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 중 가장 잔인하고 나빠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선택이 그녀가 ‘악셀’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음을 이해한다. ‘악셀’은 ‘울리에’에게 ‘추억으로 남기 싫다’며 죽음의 공포를 호소한 바 있다. 따라서 ‘악셀’은 자신에 대한 ‘울리에’의 마지막 기억이 죽어가는 환자가 아닌 사랑했던 남자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울리에’ 역시 그를 잘 알고 있다. 항구에서 해가 피어오르는 순간, 관객은 ‘울리에’와 완벽한 동기화를 이룬다. 그녀가 무엇을 떠올리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완벽히 알 수 있다. 그녀와 같은 표정으로 눈물짓는 것은 이 마법 같은 동기화의 덤이다.
구세대의 ‘악셀’에서 신세대의 ‘에이빈드’로 흘러온 그녀의 여정은 더 먼 곳을 향하며 막을 내린다. 막이 내려도 그녀의 모순적이고 충동적인 사랑과 발달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관객에게 큰 안심을 준다. 객석을 나서고우리의 정리되지 않은 삶을 마저 살아갈 용기를 준다. 시작과 끝이 무의미한 인생에서 최악을 경험할, 혹은 최악을 선사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마저 각자의 책장을 넘기러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