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 (2023) directed by 이정홍
‘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삶’이라는 히치콕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한다. 이 표현을 뒤집으면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지루한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히치콕의 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그 속뜻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뻔하고 별거 없는 삶의 시간으로 만든 영화는 우리 존재를 공명시킨다. 영화 <괴인>은 우리 인생의 단조로운 지점들을 잘라내지 않는다. 대신 구조를 짜고 그 위로 사건 하나를 떨어트려 파동을 일으킨다. ‘기홍 (박기홍)’은 그가 공사를 맡았던 피아노 학원에서 누군가 자신의 자동차 지붕으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차 지붕을 우그러트린 범인을 수소문하면서 생업과 인간관계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닌다.
첫 시퀀스부터 영화는 제한된 빛을 사용해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정지 화면 안에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대조해 리듬을 만든다. 이런 식의 이분법은 직업이 목수인 기홍을 향해서도 톱을 든다. 그는 표준어 화자 아닌 방언 사용자. 서울에서 일하지만 서울에 살지 않는 자. 하나의 건물이지만 집주인과 분리된 별채에 사는 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르고 쪼개던 영화는 이를 통해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조각이 하나와 같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간다. 마치 말끝마다 욕을 섞지만 운전할 때마다 클래식을 듣는 기홍이 나눌 수 없는 한 사람인 것처럼. 흑건과 백건이 모두 피아노인 것처럼. 상충하는 면모를 봉합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우리 사이 숨은 고독을 발견하고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자극적인 요소 없이 흥미와 긴장을 유발하는 감독의 솜씨는 한국 관객들이 오래도록 기다리던 바다. 만약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래서 대체 ‘괴인’이 누구인가 궁금하다면, 영화의 마지막 순간 스크린이 밝게 비추는 곳을 확인하시길 바란다. 그곳엔 최소 한 명에서 많게는 와글와글 영화 속 괴인의 얼굴들이 숨어 있을 테니.
아트나이너 17기 강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