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ISFP의 연애

(3) 썸의 태동

by 티워터

썸의 태동


2020년 1월 볼링클럽 S 가입

2020년 7월 볼링클럽 Y 가입


우리는 볼링모임에 함께 가입되어 있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 모임은 뒤풀이가 요란해서 술도 좋아하지 않아 가질 않으니 사람들과 친해지지도 못한 채 열심히 볼링만 쳤다. 그렇게 잘 치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에 그렇게 볼링만 열심히 치러 가는 여자는 지금 생각해 보니 희귀한 타입이다. 한 번은 나가봐야 하나 하고 나갔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뒤풀이는 어색해서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고 중간에 나는 집에 가려고 했다.

그때 ISFP(이하 S)가 함께 나섰던 기억이 있다. 같이 나와서 서로의 집으로 가면서 별거 아닌데도 그때 집이 어디냐, 잘 가라는 인사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꽤 생생하다.

누구와도 할 수 있을 법한 가벼운 인사였는데 왜 기억에 남는 걸까

2021년 5월 희미하게 볼링모임생활을 하다가 서산으로 파견을 가고 우리는 완전히 잊혔다.

5개월의 파견을 마치고 성신여대로 이사 간 후에도 그 볼링모임에 가끔 나갔다. 갑자기 제3의 인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A라고 하겠다. A가 신경이 쓰여 나는 이제 멀어도 열심히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사귀면 그림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도 조금씩 걸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하지만 절대 티는 내고 싶지 않아 딱 거기까지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는 잔잔한 대화는 쉽게 할 수 있었기에 꽤 가까워졌다. 하지만 절대로 티는 내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을까.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사랑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티가 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친해지다가 한 술자리에서 결국 난 A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한 짓 같다. 티 안내기의 끝판왕이다. 역시

회사 동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도대체 왜 그랬냐며 엄청난 핀잔을 들었다. 그러게 난 도전하지 않을 생각이었는지, 그 둘이 이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라도 이어지고 싶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그 커플은 결국 이어져 결혼을 했다. 촉도 좋지.

A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 클럽에는 더 나가지 않았을 테다. 그러면 S의 미미한 신호도 그대로 끝이 났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A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어지지 못했을 거다. 고맙네.

A에게 공을 들이기 훨씬 전부터 S가 매주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잘 가라는 카톡을 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너무 미미한 연락이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꽤 오랫동안 그 ‘잘 가’라는 인사를 해온 거다. 그게 어떤 신호일 수 있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미미 함이다.

그렇게 A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났고, 1시간 거리의 볼링장을 다니기에 점점 동기가 약해져서 동네에 있는 볼링클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볼링클럽은 여기저기 넘쳐 났고 곧 마음에 드는 클럽을 찾아 참석하기 시작했다. 두 군데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정말 이전 모임은 그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S의 미미한 연락은 전혀 그 동기가 되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잘 가’는 정말 알아채기 힘든 신호가 아닐까. 정말 ‘I’ 타입 다운 접근이다. 아니면 충청도 사람이 느리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속도인 건가.

카톡 대화창을 거슬러 올라가 봤더니 거의 1년 동안 잘 가라는 말을 해왔다.

1년을 넘게 눈치채지 못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여기 있었네. 티 안내기의 달인

S도 대단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나도 나에 대해 좀 놀랐다. 동생과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잘 가’라는 말 외에는 특별한 말은 없다고 했더니 ‘너무 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정도 했는데 못 알아차린 게 더 나쁘다는 거다. 나도 무디긴 했나 보다.

하지만 정말이지 진전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전략인 건지 S만의 스타일인 건지 전혀 속도를 내지 않고 끊임없이 연락을 했다. 1년이면 정말 대단히 긴 시간인데 말이다.


1년 간의 ISFP의 담백한 ‘잘 가’ 여정

2022. 7. 6. 00:06, ISFP : 이모티콘 조심히 들어가세요 ~~~

2022. 7. 16. 15:33, ISFP : 담에 또 보자고~~

2022. 8. 9. 23:55, ISFP : 이모티콘 생일 축하해 ~~ 조심히 들어가~~

2022. 8. 30. 22:04, ISFP : 조심히 들어가~담주에 보장~^^

2022. 9. 2. 19:03, ISFP : 이모티콘 이런 코로나 걸렸구나ㅜㅜ힘내고 잘이겨내~~

2022. 10. 1. 22:37, ISFP : 태워줘서 편히왔네~~ 조심히 운전하고 잘들어가~^^

2022. 10. 2. 23:51, ISFP : 고마워~~덕분에 편히왔네 조심운전 하시고 낼봅시다~~

2022. 10. 27. 23:25,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2. 10. 28. 00:20, ISFP : 이제야 도착했나보네~어여 주무셔~

2022. 11. 10. 21:25, ISFP : 오늘 잘쳤어~~조심히 들어가유~~~

2022. 11. 17. 22:33,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2. 12. 3. 22:39,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2. 12. 17. 16:50, ISFP : 조심히 들어가고 담주에 봅시당~~^^

2022. 12. 18. 19:44,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2. 12. 21. 00:10,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3. 1. 1. 00:22, ISFP :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23. 1. 4. 11:20, ISFP : 어제 잘들어갔지??

2023. 1. 10. 23:51, ISFP : 졸지말고 조심히 들어가~~

2023. 1. 17. 23:42, ISFP : 고생했어~~졸지말고 조심히 들어가~~

2023. 1. 24. 22:26, ISFP : 집에 잘도착했어?

2023. 2. 4. 16:22, ISFP : 조심히 가시게~~

2023. 2. 8. 00:00, ISFP : 조심히 들어가유~

2023. 2. 11. 16:53,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3. 3. 1. 22:32, ISFP : 고생했어~~~ 잘자~~

2023. 3. 4. 14:20,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3. 5. 14. 22:20, ISFP : 빵 잘먹을겡 조심히 들어가^^

2023. 5. 16. 23:54, ISFP : 다행이네~~졸지말고 조심히 잘들어가~^^

2023. 6. 10. 14:58, ISFP : 조심히 들어가~~

2023. 6. 13. 23:36, ISFP : 막차탔어?

2023. 6. 17. 22:45, ISFP : 조심히 들어가 ~~^^

2023. 7. 4. 23:19, ISFP : 조심히 들어가 ~~~^^

2023. 7. 11. 23:24, ISFP : 고생했어 ~~다시 비온다 조심히 들어가~~^^


내가 눈치채지 못한 데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볼링모임 전후에만 연락을 하고 평소에는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전화통화 한번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몇 번 눈치챌 뻔한 때가 있어서 동생과 대화도 해보고 긴가민가해서 찔러도 봤는데 전혀 미동도 없었다. 그러자 조금은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태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소개팅을 해보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소개팅이 싫다. 모르는 사람은 내게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어색한 자리 자체가 싫기 때문에 그 둘이 합쳐진 ‘소개팅’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근데 자꾸 답답한 일들이 반복되니까 짜증이 나기도 했고, 태안에 산다고 하니 잘되면 시골에 살고 싶었던 내 꿈을 단번에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겠다고 했다.

일을 그만두고 쉬는 중에 나는 이제 정말 건축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고 살만한 시골을 찾고 있었다. 정말이었고 영월에 답사를 가기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태안에 사는 사람과 소개팅은 솔깃했다. 그 뒤로 서울에서 한번 태안에서 한번, 또 서울에서 한번 이렇게 세 번을 만났다. 멀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꼴이었다.

잘가공격을 1년 정도 받은 뒤로는 매번 오던 연락이 안 오니 서운해져서 내가 이렇게 얘기했다.


2023. 8. 1. 23:47, INFP : 왜 오늘은 잘가라는 인사가 없져 서운하게!!

2023. 8. 1. 23:48, ISFP : 아~맞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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