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낳은 재앙
얼마 전 나는 5개월의 취준 끝에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사한 지 2일 만에 퇴사했다.
11/4일 월요일 첫 출근. 11/6일 퇴사처리.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 우선 업무가 면접 때 설명 들었던 부분과 상당히 달랐다. 나는 분명 마케팅/기획 쪽 업무라고 이해를 하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지원 쪽 업무에 가까워 보였다.
2. 인수인계받을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뿐이었다. 첫 출근날인 월요일은 전임자가 외근을 나가 간단히 인사만 하고 끝났고, 그다음 날인 화요일이 마지막 근무날이셨기에 그분에게 배울 수 있는 날은 화요일밖에 없었다.
3. 이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그렇다. 해당 업무는 그 전임자 말고는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전임자에게 몇 번을 확인한 부분이다. "혹시 업무에 관해서 제가 또 여쭤볼 수 있는 분은 누구실까요?" "없어요. (단호박)" 전임자가 사원에서부터 대리달기까지 2년 동안 한 업무를 마케팅 경력 없는 내가 단 하루 만에 배운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4. 전임자는 꽤 성격이 좋아 보였다. 인수인계 시간은 단 하루였지만 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그분도 사람인지라 오후가 되니 급격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보였고, 목이 아프다며 웃으며 농담했고 ^^, "이건 당장 급한 업무는 아니니 혼자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시고~" 하며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졌다.
5. 나는 1년의 경력이 있다. 하지만 성향과 맞지 않아 다른 분야인 마케팅 쪽으로 도전을 한 것이다. 마케팅분야에서는 경력이 없기 때문에 신입 연봉에 맞췄고, 심지어 직전 연봉보다도 깎아서 들어갔다.
6. 그런데 출근했는데 내가 '대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신입포지션에 지원해서 신입 연봉으로 협상을 했는데 대리가 되어있다? 마치 경력직 같은 신입이시니까 급여는 신입급여로 받으시되 일은 경력직처럼 해주세요... 랄까?
7. 새로 입사한 나를 직원들에게 소개도 시켜주지 않았다. 회사 특성상 원래 분위기가 조용조용한 곳인 것 같은데, 그래도 인사는 기본 아닌가? 아침에 안녕하세요 했을 때 "잰 뭔데 나한테 인사를 해?"라는 표정으로 흘깃 쳐다보던 그 눈빛은 참..
8. 꽤나 높은 위치인 이사님은 회사에서 음식 냄새나는 걸 질색팔색하는 분인 듯했다. 점심시간에 직원들 몇 명이 도시락을 싸와 회의실에서 (말고는 탕비실이나 휴게공간이 아예 없으니) 먹는 걸 보고는 내 앞에서 아주 짜증을... 험담을...
9. 결론. 공백기간이 더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조급한 마음에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마인드로 들어갔으나, 업무도 다르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끼리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은 삭박 한 환경에다가, 냉장고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선 귀한 내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둔 마당에 굳이 왜 이런 글을 쓰는지 묻는다면, 혹시나 장기간 취업이 되지 않아 조급한 마음에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일하지 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참고할 수 있도록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은 한 가지 중요한 면접 팁(?)도 공유하고자.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쉬웠다, 수월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좋은 회사가 아닐 확률이 크다.
위에 언급한 회사 같은 경우는 면접 과정은 1차였고 시간은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중 30분은 주로 면접관이 말하는 걸 듣는 시간이었다. 이들이 나에 관해 묻는 건 거의 없었고 딱히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보자고 부른 건 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최소한의 이력은 내가 갖추었기 때문이겠지.
"이런저런 업무를 할 거고, 우리 회사 분위기는 저렇게 좋고, 하하 호호 ^^ 그래서 xx 씨가 무척 잘해주실 것 같고..."
그 흔한 내 성격의 장단점, 이전직장에서 했던 업무내용, 지원동기 등..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리고 합격결과는 물론 면접이 끝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은 합격하셨습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뭔가 쎄했다. 그런데 왜 들어갔냐고? 조급했으니까. 공백기간이 더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어디든 배울 점은 있을 테니까 옮겨도 일단 여기서 일 하면서 옮기자.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출근한 첫날, 멘탈에 금이 가길 몇 번, 출근 두 번째 날 간신히 붙어있던 멘탈이 와장창 깨져버렸고, 그다음 날인 수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위의 이유들을 언급하며 나오게 되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지난 5개월간 수십 번의 면접과 탈락을 반복하며 많이 지쳤었나 보다. '합격'에 목이 마르기도 했었고. 그래서 이미 여긴 아닌 걸 알면서도, 면접이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덥석 합격목걸이를 받아 들고 만 것이다.
면접은 원래 어려울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면접 과정에서 진이 빠지고 어려웠다? 면접관에게 나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아주 혼이 쏙 빠졌다? 오히려 그렇다면 그 면접관은 제대로 된 사람을 뽑기 위해 당신의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본 것일 테고, 혹시나 같이 일하게 될 당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하고자 여러 상황대응 질문도 던진 것일 것이다.
그러니 혹시나 지금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 이겨내면 앞으로 몇 년은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힘내보자.
*반박 시, 당신 말이 맞으니까 그저 참고용으로만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