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나를 설명하는 여러 타이틀 중 하나는 '미국 유학생'이다.
하지만 이 타이틀이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되는 것 같은, 나를 옥죄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항상 듣는 첫 소리는, "오, 영어 완전 잘하겠다" 인데, 물론 영어를 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마법처럼 네이티브가 되는것도 아니기에 (본인의 노력의 정도에따라 달라질 수 있는거지만), 저 말이 나에게는 꽤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나는 23살에 미국으로 떠났다.
떠나게 된 이유는 어쩌면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 초반에는 하고 싶은게 없었다. 이 시기를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흘러가듯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랐고, 그 상황에서 바로 대학을 가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가 미국 유학에 뜻이 있었고, 길을 잃고 방황중이던 나를 본 엄마는 (1+1 느낌으로...) 같이 미국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한 유학생활.
유학을 떠날 당시에도 정확히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 Community College에 다닐때는 교양과목과 ESL 수업을 들으며 미국생활 적응에 힘썼다. 슬슬 전공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을때 'Sociology' 라는 분야가 눈에 띄어 전공으로 선택했다가, 또 나중에는 'Accounting' 으로 바꾸고, 결국 최종으로 'Accounting'이라는 분야를 내 전공으로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와 열정이 없으면 사람은 길을 잃는다는 걸 이 시간을 통해 배웠다.
초반 6개월은 아직 영어 못하니까 일단 적응하자,
그래, 1년까지는 괜찮잖아.
그래 아직은...
그렇게 하루하루 내 앞에 주어진 과제와 시험만을 쳐내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이 될건지 알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물은적이 없었다. 넉넉한 형편에 유학을 떠난것이 아니었기에, 언니와 나를 서포트 하느라 일을 늘려가며 열심이신 엄마에게 항상 죄책감만 커져갔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저렇게까지 열심인데, 나는 이렇게밖에 못하는구나...라는 좌절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였을까. 극심한 우울에 시달린것이.
누구는 유학을 다녀오면 성격이 더 밝고 외향적으로 변한다던데, 난 오히려 그 반대였다. 원래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이 미국에 와선 더 극적으로 조용해졌다. 점점 내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모국어인 한국말을 뱉을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인데, 제2언어인 영어는...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항상 머릿속에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의 검열이 끝나야 입밖으로 뱉으려하니, 수업시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업시간에 질문할 거리가 생겨도 한 번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교수님께 1:1로 물어보는 것도 정말 많은 용기를 끌어다 쓴 것이었기에... 매일매일 움츠러든 내 자신과 조금 용기를 내보고자하는 내가 대립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승자는 항상 움츠러든 나였고.
물론 친구와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할 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 번 생긴 영어 스피킹에 대한 두려움은 꽤나 거대했고, 졸업 후 취업할 시기가 되니 나를 더욱더 옥죄어왔다. 친구와 대화하듯 casual하게 떠드는 것이 아닌, 좀 더 정제된 business 영어를 사용해야 할것만 같은 영어 인터뷰는 정말 용기가 안났다.
사실 졸업할 즈음에는 이미 한국행에 대한 마음이 확고했고, 만약 미국에서 취업이 된다면 몇 년 경험쌓고 가는 것도 좋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어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미국에 마음이 완전히 떠버린건지, 졸업 후 미국에서 내가 취업을 위해 한 노력이라곤 고작 job site에 이력서 몇 개 던진 것 뿐이었다. (물론 연락이 온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하하)
그렇다면 나는 왜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고민해보니 '선택'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아, 이제껏 살면서 단 한번도 내 인생을 내가 직접 선택해 본적이 없구나. 그리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흘러흘러 거슬러 올라가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 고등학생 때 뉴질랜드에 가게 되었던것도 부모님을 따라서 간 것이고,
- 20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가진 일자리도 언니의 소개였고,
- 그렇게 3년간 일하다 미국으로 가게된 것도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엄마와 언니의 권유였고,
- Accounting이라는 전공을 고른것도 같이 지내던 룸메가 전공했었고, 전공을 고민하던 나에게 차분한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며,
-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가고싶은 곳, 먹고싶은 것 항상 주머니 사정을 따져가며 신중해야했다.
- 미국에서 살았다고 하면 당연히 차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유학생활내내 차 없이 살았다. 그렇다. 미국은 차 없으면 살기가 굉장히 불편한 나라이고,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정말 한정적이었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해보고자 나왔던 미국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보다도 더 좁은 세계에 살고있었다.
그렇다면 넓은 세계란 내가 '어디에'있느냐보다, 어디에 있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이느냐에 달린게 아닐까.
그렇기에 영어보다는 편한 한국어를 사용하고, 모국이기에 비교적 선택이 쉬운 한국에서 앞으로 내가 살길을 직접 '선택'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20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회에 나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의 세상을 넓혀나가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를 학교-집-도서관만 드나들며 허비한 것만 같은 생각을 멈출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고, 공부에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라고는 넷플릭스와 맥주 그리고 유튜브 뿐이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깬 듯,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을 가고, 먹고싶은 걸 먹고싶었다.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기 보다는, 예쁘게 화장하고 차려입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내 선택을 응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년 전 가족들마저 미국으로 건너왔기에, 아무도 없는 한국에 네가 혼자 가서 어떻게 살거냐며 나를 말리기 바빴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도 나는 인생의 한 갈림길에서 내가 직접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직접 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종종 그때 엄마말 들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노력해서 미국에서 취직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졸업장만 남은 유학생이 바로 난가..? 하는 왠지모를 수치심이 들기도. 그래도 나의 한국행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서야 정신차리고 내 인생을 직접 만들어 가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내가 대견하다.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깨우친 인생의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