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직생 꿀팁 25... 상사 편(25)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한참 전의 일입니다. 회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보기 드문, 이미 그 당시에도 멸종 위기로 분류되던 열혈 회사맨이었죠. 24시간 중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는 열정맨. 휴가 반납은 물론이고, 주말근무도 자원해서 나오는, 집과는 담을 쌓고, 회사 일에 몰빵 하던 그런 상사였습니다. 실력은 그냥저냥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로열티만큼은 단연 사내 톱이었죠. 누구도 그 주장엔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워낙 열심히 일하니, 실력에 상관없이, 제때제때 빼먹지 않고 승진했습니다. 문제는 주니어 때는 아무 상관없었던 그의 업무 스타일이 부서장이 되면서 큰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아마 짐작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에너자이저 상사를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이런 식입니다. 혼자 남아 일하다가 연락할 게 있으면 밤낮이 없습니다. 김 과장 그 자료 좀 보내줄래? 이 대리, 저녁에 내가 부탁한 거 지금 좀 빨리 해줄 수 있나. 한 차장, 일전에 나한테 보냈던 그 자료 좀 다시 보내줄래. 시도 때도 없습니다. 밤 11시, 12시 넘어 문자 오는 것은 예사고, 아침 출근 전에도 카톡이 울립니다. 주말도 예외 없습니다. 휴가 중에는? 해외여행 간 직원에게도 혹시 모르니 컴퓨터 가져가라고 했던 분이죠.
그리곤 회식 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했습니다. "회사서 일하는 거 재밌지 않아. 다들 그렇지. 재밌는 일하는데 돈도 주고. 얼마나 좋은 회사야." 황당하지만, 토를 달 수도 없는, 그 진지 모드에 아무도 대꾸를 할 수 없었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지금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가는 즉각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청의 조사를 받겠죠. 그러나 그때만 해도 훌륭한, 타의 모범이 되는 업무 자세로 사내 표창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직원들이 끼리끼리 불평불만을 나눴지만 워낙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서 뭐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 그 부서장과 며칠 동안 함께 붙어 일하다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한 거죠. 결국 회사 내 게시판에 불이 붙고, 대자보가 나붙고, 노조가 들고일어나면서, 회사를 집처럼 생각하며 평생 회사에 뼈를 묻을 것 같았던, 그 회사맨의 열정 시대도 조기 마감하게 됐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직으로 좌천됐고, 얼마 안 있어 스스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의 권위자인 UC 버클리 대학교의 크리스티나 매슬라크 심리학과 교수는 조직에서 개인의 탈진은 환경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상사가 과도하게 일에 몰입하거나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을 경우, 팀 전체가 심리적으로 함께 탈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요즘은 그분처럼 회사 일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회사맨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정도는 덜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열정을 부하들에게 강요하는 그런 리더들은 더러 있습니다. 그런 리더들의 특징은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안 하지? 왜 일도 안 하면서 불평불만만 많은 거지?라고 눈치를 준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팀원들은 점차 일 자체보다는 상사의 감정 기복에 더 신경 쓰게 됩니다. 상사의 열정이 오히려 조직에 독이 되는 메커니즘입니다.
좋은 상사는 솔선 수범합니다. 그러나 솔선수범은 밤새워 일하는, 휴가를 반납하면서 몰두하는 그런 자세가 돼서는 안 됩니다. 쉴 땐 쉬더라도 일할 땐 집중력 있게 일하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업무 방식이어야 합니다. 리더가 그렇게 해야 팀원들도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상사 혼자 불타면, 결국 팀은 잿더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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