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꿀 수 있는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최고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 때문에 크레타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탈출 계획을 세웁니다.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도망가기로. 예행연습을 하면서 다아달로스는 아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에 의해 밀랍이 녹으니 높게 오르지 마라. 그렇다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물기에 의해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의 중간으로만 날아라". 그러나 이카루스는 비행의 황홀함에 취해 태양 가까이까지 날아올랐고, 날개가 녹으면서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됩니다.
질문 하나. 하늘로 오르면 정말 뜨거워질까요. 반대입니다. 높이 오를수록 공기가 희박해지며 추워지고(에베레스트 위에 만년설 있는 이유), 대기권을 벗어나면 인간은 추위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SF영화에서 우주인들이 추위로 떠는 걸 많이 보셨을 겁니다)
만약 이카루스가 1억 5000만 킬로 거리에 있는 태양 근처까지 날아갔다면? 아마 밀랍 날개는 녹았겠지만 이카루스는 바다가 아니라 우주 어딘가를 헤매는 신세가 됐겠지요.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일 뿐. 각설하고.
오늘은 제 가슴을 뛰게 한 소녀 얘기를 할까 합니다. 이름은 자라 러더퍼드. 벨기에와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19세 소녀입니다. 올해 9월 대학에 진학하는 앳된 모습의.
이 소녀가 최근 경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했다 해서 떠들썩했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5개월간 5개 대륙 41개국을 거치는 5만2000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고 합니다. 여성 최연소 세계일주 비행 기록을 깼다 해서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됐지요. 제 경우는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자가 경비행기로 여행(아직 세계 일주는 언감생심)하는 것이어서 더 관심 있게 봤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①19세 소녀가 혼자 세계 비행계획을?
우선 어떻게 19살의 나이에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고 세계 여행 계획을 짰을까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가지려면 최소 40시간 비행 기록이 필요합니다. 시간당 수 십 만원 하는 교육이 필수지요. 또 직장인들은 주말마다 지방에 있는 비행장까지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야 1년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비용도 천만 원 넘게 들어갑니다.
러더퍼드의 경우는 헬기 조종사인 아버지와 취미로 비행하는 변호사 엄마를 두고 있어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탔다는군요. 14살 때 처음 조종간을 잡았고, 조종사 자격증은 15살 때 땄습니다. 비행 조종 기술부터 엔지니어링, 관련 제도와 안전 문제까지 어릴 때부터 익힌 케이스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22/01/20/world/europe/zara-rutherford-plane-pilot.html
②그 많은 경비는 누가
그렇다면 비용은? 조종사인 아버지가 스폰서 체결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비행 계획을 짠 모양입니다. 러더퍼드의 홈페이지(https://flyzolo.com)를 보면 후원과 기부를 포함해 50여 개 넘는 기업과 단체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경비행기는 ‘샤크 에어로’가 지원하고, 물품은 누가 지원하고 하는 식입니다. 셔츠와 백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쇼핑몰도 있습니다. 하나의 벤처 기업처럼 다양한 소스를 모아 비행 프로젝트를 꾸린 거지요. 러더퍼드는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지난해 9월 대학 진학 대신 세계 일주 경비행기 비행을 시작합니다.
③5개월 동안 혼자서 비행?
러더퍼드는 인터뷰에서 “5개월 동안 혼자 비행한 게 맞다”라고 합니다. 대신 벨기에와 영국에 있는 지원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친인 샘 러더퍼드를 포함한 9명의 지원팀이 5개월 동안 밤낮없이 원격 지원을 제공한 거지요. 지원팀에는 언론 홍보와 SNS, 비디오 제작 등을 담당하는 미디어팀에서부터 스폰서 유치팀, 비행기술 지도팀, 안전 지도팀까지 완벽하게 짜있습니다.
러더퍼드는 인터뷰에서 세계 일주 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힙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허리케인을 만났고, 시애틀에서는 산불로 시야가 가렸으며, 알래스카에서는 악천후와 러시아 비자 문제 때문에 수주를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인적 없는 시베리아의 툰드라 평원을 6시 반가량 비행할 때는 공포심을 느꼈고, 한국으로 향할 때는 짙은 구름 때문에 러시아로 돌아가야 할지,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비상 착륙해야 할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비고비마다 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초 8주 예정이었던 비행 일정이 5개월로 지연됐음에도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거지요.
https://www.bbc.com/news/uk-england-beds-bucks-herts-57641567
아무튼 러더퍼드의 세계 일주는 부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존 여성 세계일주 기록(30살)을 깬다는 명분도 있어 후원도 많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우연한 기록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공이란 치밀한 준비와 노력 끝에 얻어지는 우연한 기회의 결과라고나 할까요.
제 가슴을 오랜만에 뛰게 한 러더퍼드에게 감사하며
(참고로 남성 경비행기 세계일주 기록은 영국의 18세 소년 트래비스 러드로가 갖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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