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바짝 말라 있었다. 철문으로부터 4~5 미터쯤 내려갔을까. 바닥에서 횃불을 비쳐보니 옆으로 사람이 다닐만한 틈이 나있다. 꿈에서 본 그대로다. 머리를 들이미니 물 비린내가 훅 밀려온다. 횃불이 흔들린다. 어디론가 통하는 길이다. 바닥은 미끄럽다. 왕기응은 숨죽이며 더듬듯 좁고 습한 동굴을 나아간다. 얼마쯤 갔을까. 갑작스러운 돌풍에 횃불이 꺼지면서 그대로 중심을 잃는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나락의 느낌.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윤슬. 물 위로 보이는 희미한 빛의 울렁임. 그리고 더 강해진 바람. 호수다. 손을 더듬어 횃불을 찾는다.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인다. 숨을 멎게 하는 꿈같은 풍경. 동굴 속의 거대한 호수다. 그리고 물길은 어디론가로 뻗어 있다.
집으로 돌아온 왕기응은 잠을 이룰 수 없다. 내일은 호수 끝까지 가보리라. 그날 밤 꿈속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계속 그를 부른다. 호수 끝에서. 뭐라 자꾸 말하며 손짓한다.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 뭐라고요. 가까이 가지만 어머니는 자꾸 멀어져 간다. 그러다 훅 코 앞으로 다가온 얼굴. 물에 퉁퉁 불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주검의 얼굴이다. 헉, 숨을 들이키며 벌떡 일어난다. 꿈이었구나. 며칠째 같은 꿈이다. 곁에서는 병약한 아내 강 씨와 아픈 아들 왕영의가 자고 있다.
며칠 후 우물 밑 호수에 다다른 왕기응과 후이는 오래된 유물들을 발견한다. 철제 투구와 갑옷, 목재선의 잔해. 만지자마자 먼지처럼 부스러진다. 최소 수백 년은 됐을 것이다. 이 호수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디로 연결돼 있을까. 대체 누가 들어왔던 걸까. 호수로 걸어 들어가 보니 수심이 점점 깊어진다. 호수 끝까지 가려면 배나 뗏목이 필요하다.
그해 겨울, 신라방 건물이 착착 올라가는 사이, 왕기응과 후이는 저녁마다 뒤꼍에 새로 지은 창고(우물 위로 지어진) 건물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결국 뗏목을 만들어 지하 호수가 K시 인근 서해와 맞닿은 벼랑 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밖에서는 절대 알아내기 힘든 완벽하게 은폐된 입구다.
후이가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은 게 그즈음이다. 조실부모 한 후이는 왕기응과 헤어진 후 줄곧 부랑아처럼 살았다. 그러나 어찌어찌 폭력조직 삼합회 똘마니들의 마약 심부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배달이었으나 점차 몸을 쓰는 일까지 맡게 됐다. 살인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수금에 협조하지 않은 고객을 큰 목소리로 위협했는데 상대가 상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했다. 순간 손에 잡히는 대로 쇠그릇을 집어던졌다.
그는 조선 제물포(인천)로 보내졌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조직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전쟁으로 인천에서 폭격을 피해 나올 때 접선이 끊겼는데, 최근 다시 조직원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조직원은 그에게 조선에서의 사업 가능성을 찾아보라 다그쳤다. 후이는 왕기응에게 그 동굴이 그에게 할 일이 뭔지 말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짬뽕에 약을 사용해 보자는 의견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주방에서 실험을 해봤다. 돼지고기를 볶고, 배추와 불린 목이 버섯과 당근, 양파 등을 고추기름과 함께 두를 때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소량을 넣어봤다. 그리고 약을 넣은 것과 안 넣은 짬뽕을 각기 다른 손님들에게 지속적으로 내갔다. 반응과 오는 빈도를 체크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신라방은 개업과 함께 입을 타기 시작했다. 맛이 끝내 준다고, 그래서 다른 집은 이제 못 가겠다는 사람이 한 둘 나오더니 어느새 수십 명, 수백 명으로 늘었다. 1960년 5·16 혁명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설 즈음해서는 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짬뽕집으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왕과 후이는 그 사이 정기적으로 우물 밑 호수를 오갔고, 거기서 받은 물건을 해물과 채소 등을 대주는 거래상들을 통해 전국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신라방 사업은 나날이 번성했고, 호수 밑 사업은 ‘맑은 물에 잉크 방울을 풀은 듯’ 더 무서운 속도로 확산돼 갔다.
그러나 왕기응은 아내 강 씨가 죽은 후 급격히 쇠약해져 갔다. 신라방은 며느리 송금순과 후이의 손으로 넘어갔고 이전보다 더 강렬한 기세로 타올랐다. 왕기응은 손자를 얻은 이듬해 웃으며 마지막 숨을 거뒀다.
송금순은 이때 이미 유명한 ‘마담’이 돼 있었다. K시 조직에서는 물론 중국 산둥성에서도 그녀는 유능한 관리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했고, 따뜻하면서도 얼음처럼 냉정했으며, 친철하면서도 잔인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자신과 닮았지만 자신을 뛰어넘을 인물을 원했다. 자신보다 더 강하고, 더 잔인하고, 더 큰 비전을 가진 인물이어야 했다. 무엇보다 ‘목을 딸 때’ 자신처럼 멈칫거리지 않아야 할 사람, 그 후 꿈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아들은 애초에 그런 그릇이 아니었다. 설사할 수 있더라도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이가 중국 유학생 김미영을 인사시키러 데리고 왔을 때 송금순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김미영은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강철같이 강하면서도, 얼음처럼 냉정하고, 주위 사람들을 눈빛 하나로 제압할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족이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수년 전 홍수 때 김미영의 가족이 탄 차가 물에 휩쓸렸고, 그녀는 중국에 홀로 남겨졌다. 후이의 조직이 그녀의 가능성을 점치고 후원했다. 그녀는 그렇게 신라방의 후계자로 일찍이 낙점돼 있었다. 후이는 김미영이 ‘칼질 공사’ 때 눈도 깜빡하지 않는 강심장이라고 송금순에게 귀띔했다.
김미영은 송의 기대대로 사업과 조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송금순이 78세로 은퇴할 때 이미 모든 권한이 사실상 김미영에게 돌아가 있었다. 새침한 미녀 사장, 김미영이 K시와 그 인근 지역의 밤을 다스리는 보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신라방 사람들과 조직원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