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은 어깨로부터 힙으로 내려오는 탄력 있는 라인과 그로부터 종아리, 발목으로 쭉 내려 그려지는 시원한 각선미는 숨을 멎게 한다.
그리고 그 스윙. 부드러운 테이크 어웨이에서부터 완벽한 각에서 멈춘 백스윙 탑, 그 뒤에 이어지는 다운스윙과 강한 임팩트, 완벽한 팔로 스루까지. 멈춰선 그녀의 어깨는 볼 방향을 정확히 향하고 있다. 교본이 따로 없다. 동반자들은 절로 탄성을 올린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감탄한 포인트는 스윙이 아니다. 온 힘이 모아지는 임팩트 시 살짝 들쳐 올라가는 플리츠 주름치마의 펄럭임과 순간 살짝 비치는 속살. 그들은 그 안쪽을 상상하며 침을 꼴깍 삼킨다. 60대 가까운 그들의 미간에 힘이 주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와아, 굿샷 하는 탄성으로 그런 욕망을 감춘다.
동반자인 K시 시장 강운영과 국가정보원 지부장 심지상, 검찰 K시 지청장인 김윤상. 이들에겐 김미영이 고맙기만 하다. 골프 실력으로 보나, 미모로 보나, 애프터서비스까지 그녀는 프로 중 프로다. 좀 웃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으련만.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떠랴. 김미영에게는 그런 결점을 커버하는 애프터서비스(돈)가 있는데.
라운딩 4시간 내내 강 시장은 김미영의 눈치를 본다. 그늘집에서 살짝 내년 있을 선거운동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녀만 도와준다면 재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평소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봐서 가능성이 영 없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름칠을 한다. 최근 정리한 정보들을 정성껏 푼다. 그중에는 검찰로 새로온 박찬우에 대한 정보도 있다. 신문사 정애라 기자와 친해졌다는 따끈한 소식까지. 심 지부장, 김윤상 청장도 운동 후 골프 가방에 들어가 있을 빳빳한 호박잎(오만 원권)을 생각하면 가만 있기 뭐하다. 그들도 적잖은 정보들을 슬쩍슬쩍 푼다.
골수회.
김미영이 K시 인근 골프클럽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갖는 골프 모임(會)이다. 멤버는 주로 그 지역 국회의원부터 검찰, 국정원, 경찰, 세무서, 언론사 수장들과 지방 대학, 시민단체장까지 지역 유지들이다. 스무 명 남짓 된다. 시어머니 송금순이 운영하던 송별회(송금순의 특별회원)를 이어받았다. 김미영은 정치하는 멤버들에겐 선거철마다 후원금을, 시민단체엔 기부금을, 그리고 언론사엔 협찬금을 뿌린다. 그런 공식 루트가 없는 유지들에겐 골수회 라운딩때 박카스병 박스를 준다. 5만원 신권으로 2000만 원이 빡빡이 들어간 종이상자다.
김미영은 이미지 관리에도 열심이다. 직원들과 함께 마지막 주를 뺀 수요일마다 청소활동이나 노인 요양권, 고아원을 돈다. 지역사회 입김이 센 시민단체와의 협업도 진행한다. 그러나 이런 일정들에 대해 절대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 항상 후문으로만 듣게 한다. 신라방이 항상 평판 A플러스를 유지하는 이유다.
이런 노력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평판 관리,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는데도 그만이다. 얼마 전 짬뽕에 손톱이 들어갔던 일도 잘 넘어갔다. 문제거래처 인사를 손봤는데 그 살점과 손톱 일부가 재료에 섞여 들어갔다. 큰 화근이 될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시청은 강 시장을 통해 잘 막았는데, 신문사에서 단신 기사가 나가 버렸다. 나중에 기사를 들어내긴 했지만, 삽시간에 퍼지면서 타격이 적지 않았다. 큰 아들 왕희성이 나름 잘 처리했다.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뭐라 했더라. 정애라. 아, 박찬우와 요즘 자주 만난다는 그 신출내기? 당돌한 아이라고 했다. 화학업체 C사 오너의 둘째 딸. 경영학과 MBA를 하라는 부친 얘기도 듣지 않고, 지방대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하고 대학 신문사에서 4년을 살다시피 했다. 졸업후에는 조용히 회사로 들어오라는 얘기를 듣지 않고 또 덜컥 신문사에 입사해 시내 원룸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철부지 부잣집 딸. 단신 기사를 쓴 후 요즘 신라방을 알아본다며 시청이고 경찰이고 다 쑤시고 다니는 모양이다. 왕희성은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살짝' 경고를 했다고도 했다.
김미영은 박찬우가 걸린다. 15년전 그때 처리했어야 했던 것일까. 당시 내부에선 창고안에 들어간 박찬우를 그냥 보내는데 대해 반대가 심했다. 특히 주방과 중국 조직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후이의 아들 푸첸이 그랬다. 후한의 여지를 남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때가 김미영이 조직에 처음 자신의 의견을 낸 때다. 만약 일이 생기면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푸첸의 말대로 조직의 비밀을 목격한 사람을 살려둔 것도, 그 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도 모두 배신행위나 다름 없다. 본인이나 조직에 리스크가 큰 도박이었다.
그러나 김미영은 그녀 안에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간 그렇게 많은 칼질 속에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 작은 화분을 끝내 챙기는 레옹의 심정이었을까. 김미영은 그 목소리를 따랐고, 박찬우를 살려 보내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박찬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검사가 돼서.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부임 첫날 신라방 주위를 얼쩡거린 것은 과거 추억 때문이었으리라. 뭐가 있겠나. 그래도 혹시 모를 불상사엔 대비해야 한다. 왕희성을 먼저 보내보는게 낫겠다.
그러나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최근엔 물에 휩쓸리는 그녀 가족들의 비명과 절규에 잠에서 벌떡 깨는 일도 잦아졌다. 그 숯한 일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킬러. 그녀 역시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은 어찔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