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는 게 엉망일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릴 적부터 글이란 건
서론, 중간, 결론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감정보다 논리, 말보다 구조.
나는 그렇게 ‘논술형 인간’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명확한 기승전결을 갖춰야만
남에게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내 속을 꺼내기 위해서도
먼저 정리부터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됐다.
처음엔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그림일기처럼 뒤섞인 글을 썼다 지우고,
지우고 또 쓰고.
결국,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하나 들고
작가 신청이라는 낯선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불합격.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이 거절당했다’는 기분보다
**‘내가 부정당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남았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좀 무너졌다.
그 이후로,
나는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앱이 아니라 브라우저로.
내가 어떤 글을 읽었는지 흔적이 남지 않도록.
그건 어쩌면,
나만 알고 싶은 은밀한 독서였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책, 소비 단식 일기.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인데
내 이야기처럼 울컥했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사는 글’을 쓰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나에겐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해진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고,
나는 용기를 갖기엔 너무 무너져 있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같은 또래 친구들에겐 말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엔 어떠한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너무나 초라한 직업이었다.
4대 보험이 되고, 앉아서 일하고,
퇴근시간이 정해진 ‘정상적인’ 직장이었는데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내가 더 작아질 것 같아서.
그 마음은 결국,
나를 비교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부족했고,
그래서 말할 수 없었고,
그게 또 부끄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내 직업은 여전히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취해도 그건 비밀이었다.
상처를 들키기 싫어서,
마음을 감추고 감추다
결국 눌러 담은 것들만 남았다.
그걸 이제야,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야 꺼내본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도 하지 못했던 말들.
사실,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는 일이 얼마나 되나.
우리는 늘 결과만 본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누가 어떤 싸움을 했는지,
어떤 상처를 숨겼는지,
그건 아무도 보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어릴 땐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들도 자기 식대로 살아낸 것뿐인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조금, 안다.
사람 마음이라는 건
두부처럼 자르듯 정확히 나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글을 쓰며
겨우 내 마음의 한 조각을 건져낸다.
그리고 그 조각이,
어쩌면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