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원엔 의사가 없다

‘치료’는 사라지고, ‘시술’만 남은 병원 풍경

by 잎새

유튜브를 떠돌다 보면 이상하게 끌리는 영상들이 있다.
여드름을 짜고, 고름을 짜고, 낭종을 절개하는 영상들.
묘하게 시원하고, 어쩐지 집중이 잘 된다.
ASMR로도 인기가 많다고 하니, 참 사람 마음이란.

평소엔 그런 걸 보면서도 남 일처럼 넘겼다.
그러다 문득, 오른쪽 겨드랑이에 작은 멍울이 잡혔다.
1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에 빨갛게 부어오르고, 팔을 들거나 스치기만 해도 찌릿했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받았던 항생제가 생각나, 일단 복용하며 기다렸다.
토요일 오후였고, 월요일까지 병원을 갈 수는 없으니.

마침내 월요일.
새벽 4시 넘어 잠들었지만 더위 탓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오늘따라 최고 기온 28도.
진료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13시 이전에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첫 병원을 찾았다.

깔끔한 피부과.
에스테틱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대기실은 북적였고, 안내 데스크는 호텔 같았다.
정장 차림의 직원분께 “피지낭종인지, 종양인지가 생겼다”고 말씀드리자
돌아온 답은, “저희는 미용 시술만 합니다.”

...피부과에서 피부 진료를 하지 않는다니.
내 귀를 의심했다.

두 번째 병원은 예전에 비립종을 치료했던 곳.
이곳에선 항생제 주사와 약은 가능하지만,
배농은 해줄 수 있어도 재발하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수술은 힘들어요. 수술방이 없거든요.”
외과를 추천받고, 다시 전화를 돌렸다.

전화한 병원만 여섯 곳.
교통사고 전문 외과, 척추 전문 외과…
그저 낭종 하나 짜주는 병원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러다 드디어, 버스 네 정거장 거리의 외과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한 마디.

“네~ 가능해요~”

전화기를 붙잡고 “감사합니다!”를 외치고는 단숨에 달려갔다.
오래된 민트색 벽지와 나무 장식,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묻은 병원.
도착하자마자 전화드렸다고 인사하니,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며 맞아주셨다.
“낭종인가요? 전화 주셨죠~”
네, 맞습니다. 드.디.어. 의.사.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팔을 들어 멍울을 보여드리니, 선생님은 말렸다.
“염증이 심하니, 약을 먼저 드시고 가라앉힌 뒤 다시 오세요.”

하지만 나는 오늘 아니면 어렵다고 간청했고, 결국 수술을 진행해주셨다.
놀랍게도, 방금까지 안내 데스크에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수술실 어시스트로 등장!
그제야,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병원의 모습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인지 깨달았다.

진료 후, 의사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인사를 드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잘 안 해주죠.?
이거 하려면 포셉도 준비해야 하고,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요.

그런데 정작 돈은 안 되죠. 귀찮고, 그래서 다들 피하려 해요.

정작 수술 시간은 5분도 안 걸리는데 말이에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나도 미용이나 배울 걸 그랬나 봐요~” 하시던 의사 선생님.

순간, 스쳐 지나갔다.
"병원이 없다"는 뉴스는 지방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단순한 낭종 수술 하나 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란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

수많은 ‘피부과’들은 간판만 있을 뿐, 피부 진료는 하지 않는다.
미용 목적의 병원, 에스테틱 상담, 필러 상담은 넘쳐나지만
사람의 피부를 ‘치료’하는 병원은 드물었다.

유튜브엔 피지낭종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조회 수를 쓸어 담는다.
그 병원은 이미 인산인해.
그 수술, 어렵냐 물었더니 “박리만 잘하면 어렵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나 ‘귀찮고 돈 안 되는 수술’이란다.

사랑니도 마찬가지.
수많은 치과가 크라운, 임플란트를 권하지만,
사랑니는 아무도 뽑아주려 하지 않는다.
항생제만 처방해주고 끝.

그래서 강남 한복판에 ‘사랑니 전문 병원’이 생긴 것일까.
지금의 1차 병원엔 더 이상 '의사'가 없다.

40~50대가 된, 은둔의 고수 같은 의사 선생님들.
허름한 인테리어와 오래된 시설 속에서도 묵묵히 진료를 이어가는 그분들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진짜 의사’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살다 보면 사랑니도 뽑아야 하고,
염증도 생기고, 고름도 나고,
갑자기 종양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병원은 어디에 있을까?

프락셀, 울쎄라, 리주란이 넘쳐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치료’를 해주는 병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의료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민낯.
“요즘 병원엔 의사가 없다.”

한국엔 병원이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치료보다 수익이 먼저인 세상에서

우리를 치료해 줄 의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치료를 강요할 수 있을까.

미용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그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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