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책을 사두고 안 읽을까

by 잎새

책을 사두고 읽지 않은 채로 몇 달, 몇 해를 보내본 적이 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누구나 책장 어딘가엔

읽지 않은 책 한 권쯤은 숨어 있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나는 ‘미뤄둔 나 자신’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이 글은 그런 나를 변명하려다,

어쩌면 나는 책이 아니라 ‘삶’을 읽고 싶었던 걸까… 하는 질문으로 끝났다.

책장 한 칸을 가득 채운 책들.
책등은 반질반질하고, 모서리는 아직도 각이 살아 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은’ 게 아니라 ‘샀다’.
그리고 그냥 두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책을 사는 순간, 나는 약간 똑똑해진 기분이 든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이 책을 읽고 말겠지.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나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리는 종종 ‘사두기만 하면 언젠가 읽게 되겠지’라는 착각에 멈춰 선다.
책을 사는 그 순간, 욕망은 충족되고, 실천은 유예된다.

또한, 독서는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다.
한 페이지, 한 문단, 한 줄을 읽는 동안 머리는 움직이고 집중해야 한다.
반면, 스마트폰만 켜면 아무 생각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세계가 열린다.
책은 말한다.
"이해해 줘. 곱씹어 줘. 그리고 기억해 줘."
유튜브는 속삭인다.
"아무 생각 하지 마. 그냥 넘겨."

물론, 그 끝에 다다랐을 때의 뿌듯함은
책이 훨씬 오래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끝'까지 가지 못한 채,
무한 스크롤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다른 게 더 재밌어서.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감정이 웅크리고 있다.

"읽기 시작하면, 변해야 할지도 몰라"

그건 무의식적 저항이다.

책 속에는 언제나 변화의 씨앗이 숨어 있으니까.

읽는다는 건 ‘읽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읽고 나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


어쩌면 그 약속이, 나를 가장 주저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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