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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너머 Apr 22. 2022

2022.4월 야옹 생일에 떠난 그리스 여행기 2

아테네와 크레타에서 운전하기

이번 그리스 여행 9박 10일은 '아테네 시내 2박 - 이라클리오(크레타) 행 야간 페리 1박 - 이라클리오 관광 후 스탈리다 해변 2박 - 하니아 2박 - 페리 1박 - 피레우스 1박'으로 휴양 목적의 여행 치고는 메뚜기 같은 일정이었다.


마지막 1박을 정하지 않고 크레타를 페리로 가기로 한 상태에서 우리 부부의 고민은 렌트를 아테네 공항에서부터 할 거냐, 크레타에서만 할 거냐였다. 아테네에서부터 렌트를 하면 페리에 렌터카도 태워야 하니(왕복 비용 130유로), 렌트비 차이까지 하면 비용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니온 곶을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점, 짐 걱정에서 해방된다는 점을 고려해서 전체 일정 렌트를 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돌아가서 선택하라고 하면 크레타에서만 렌트를 하고 아테네 인근에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택시나 투어상품을 이용했을 것 같다. 이유는 그리스의 극악한 도로 사정과 운전 문화 때문이다. 운전이 거친 한국과 도로사정 안 좋은 영국의 안 좋은 점을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먼저 렌터카는 경차인 도요타의 Aygo로 받았는데, 결론적으로 산악지역을 갈 게 아니라면 그리스 도로 사정에서 경차를 렌트한 것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우리의 불안은 차를 받아보니 P기어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렌터카 회사 직원의 설명으로는 중립기어 + 사이드 브레이크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P기어 있는 차는 두 단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며. 구글링해보니 이런 모델은 'automated manual transmission'이고 P기어가 없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2종 오토 면허라서 이런 기어박스가 너무 생경했던 것이다. 경사로나 페리에서 차가 밀리지 않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그리스에서도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차인 것 같아서 급한 경사로에 주차만 안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Aygo를 그냥 타기로 했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는데, 경차가 워낙 힘이 딸리기도 하니 더 험한 코스를 가려고 했다면 다른 차를 선택했을 것 같다.


아테네 시내에서는 숙소를 Mets 지역의 아파트로 잡았는데, 제우스 신전까지 도보 5분 정도의 거리라서 차가 필요가 없었다. 유럽답게 좁은 도로에 주차가 쭉 되어있고 지하주차장도 당연히 없어서 가지고 다닐 수 없기도 했다. 주차장은 호스트인 마리아나가 미리 약속한 대로 근처 주차빌딩을 연결해주었고 가격도 깎아서 이틀에 주차비 20유로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 있는 동안은 공항-숙소까지만 렌터카를 이용했으니 렌트비와 주차비를 버린 셈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마리아나가 택시기사이기도 했는데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공항 픽업을 마리아나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그리스에는 세차+주차(+주유)를 같이 하는 건물들이 많았다. 이 주차빌딩도 세차를 같이 하는 곳이었는데 하루 정도는 위층에 자리가 없었는지 나갔다 오면 차 위치가 바뀌어있어서 남편을 걱정시키곤 했다. 다행히 마지막에 말끔히 외부 세차까지 해서 돌려받을 수 있었다.


돈보다 더 큰 시련은 페리를 타기 위해 아테네에서 피레우스 항구까지 가는 길에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숙소 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지만 밤이라 교통량이 적었는데, 오후 5시에 아테네를 빠져나가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다. 분명히 출발하기 전에 본 유튜브에서는 그리스는 속도위반을 전방 카메라로 잡는 게 아니라 후방에서 잡으니 속도 잘 지키라고 했는데 왜 다른 차들은 체감 상 제한속도 두 배 속도로 달리면서 한국 총알택시 같은 추월을 해대는 거며, 초행인데 길은 왜 그리 복잡한 건지. 영국은 길은 안 좋아도 운전문화가 점잖은데, 그리스에서 오랜만에 '우리가 깜빡이를 넣으면 더 빨리 달리는 옆 차선 차들'을 볼 수 있었다. 영국과 운전 방향이 반대인 문제까지 겹쳐서(유럽 대륙이 한국과 방향이 같아서 본능적으로 적응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이에 어느 정도의 적응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운전 실력이 어지간한 남편도 꽤나 고전했다. 사실 남편이 한국에서 운전할 때는 우리 시댁 가족들 사이에서 총알 택시 스타일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리스 운전문화는 그런 남편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카페리 타기 전 줄 서있는 중. 직원들이 바깥에서 티켓검사를 하고 보내준다


그래서인지 고요한 일요일 아침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근처 길가에 주차를 한 남편이 처음 한 말은 '아테네랑 어쩌면 이렇게 다르냐'였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입장에서는 길 좁고 주차된 차들 많은 건 똑같은 것 같은데,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운전자들의 행태가 더 신경이 쓰였나 보다. 아테네에서는 사람들이 팍팍하고 성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아마 영국 사람들이 한국을 가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우리가 크레타에 대해서 몰랐던 점은, 섬이 산악지형이라서 해안도로조차도 절벽을 끼고 운전하는 것 같은 곳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섬의 기준은 제주도인데 크레타는 더 마초 같은 지형과 4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했다. 스탈리다 해변에서 하니아 숙소까지 무려 2시간 반이 걸렸는데 다행히 차량은 별로 없었지만 도로가 대부분 1차로(왕복 2차로)인데, 여기도 역시나 속도 제한은 공자님 말씀으로 생각하고 신나게 달리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문화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천천히 갈 차들이 '답답하면 추월하세요'하는 의미로 오른쪽으로 붙어서 달리면, 추월하는 차들은 중앙선을 넘어서 쏜살같이 추월해가는 것이었다. 반대쪽에 차가 오더라도 너무 가깝지만 않으면. 리처드 1세는 자기 별칭이 그렇게 쓰일 줄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남편은 그들을 '사자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왕복 2차로를 3차로로 활용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한국에선 워낙 중앙차선 지키는 걸 엄격히 교육하고, 영국에서 중앙차선이 점선으로 되어있어도 추월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상상도 못 했는데 생각해보니 점선 중앙차선이 그런 의미였다.


크레타에서 피레우스항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는데, 지난번 크레타로 갈 때는 우리가 18시에 가서도 승선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상황에서도 배가 19시 반에야 도착했다. 21시 출발이니 19시까지 오라고 안내받았는데 이건 뭔가 싶지만 워낙 그리스 페리는 결항까지 된다고 악평을 들었던 터라 이 정도 여유를 두고 배가 온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페리 주차장은 3층 구조인데, 먼저 타는 차가 경사로를 내려가서 주차를 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하선을 위해서 차가 전면을 보도록(돌리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주차를 해야 한다. 지난번에는 워낙 빨리 갔기 때문에 다른 차가 거의 없었고 가장 아래층에서 그냥 돌려서 주차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우리 앞에도 차가 많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내려가기 전에 차를 돌려서 경사로를 후진으로 내려가야 했다. 후방카메라가 있어서 남편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나는 차가 밀릴까봐 왜 그리 겁나던지. 아무튼 주차요원이 아주 빽빽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줘서 무사히 주차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경사로에까지 차들을 주차시켜놓은 걸 보고 쫄보는 또다시 가슴이 벌렁거렸다.


피레우스항에서 내린 후 바로 수니온곶으로 향했는데, 글리파다를 지나기 전까지는 차량이 많고 도로가 복잡하다가, 글리파다를 조금 지난 지점부터는 길도 편하고 전망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크레타의 해안이 선 굵고 마초적인 느낌이라면 수니온곶으로 가는 길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남해처럼 잔잔하고 평화로운 느낌. 포세이돈 신전이 보이기 시작할 시점에는 모두 피로를 이기고 차에서 탄성을 터뜨렸다. 글리파다-수니온곶 구간을 오간 것으로 본토에서 렌트한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물론 버스와 택시라는 대체재가 있지만 중간중간 해변에 들러서 쉴 수 있다는 것은 렌트를 해서 가능했던 장점이었다.


수니온곶에서 돌아오는 길. 발로 찍은 사진보다 실제는 오조오억배 아름답다


마지막 공항 가는 길은 숙소 근처 마을에 장이 서서 도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고생한 것을 빼면 (공항 가는 길이 아니었으면 구경했을텐데 아쉽다 ㅠㅠ) 유료도로로 편하고 쉽게 갔다. 사실 톨게이트가 없고 홈페이지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인 영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유료도로를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었는데, 그리스는 톨게이트가 있다고 해서 시도했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스는 구글맵 안내가 부실해서 잘못 들어갔던 길도 이제는 학습이 되어 맞게 찾아가고,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남편이 스트레스 안 받고 운전을 했는데 이게 마지막 날이라니 조금 아쉬운 기분도 들 정도였다. 톨비 2.8유로로 얻은 행복이랄까. 유럽에 온 후 나는 운전 엄두를 못 내고 미안하지만 남편에게 다 맡기고 있는데, 마지막에 너무 고생했고 운전실력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얘기해줬더니 남편 왈 "운전실력은 모르겠고 운전석 방향 바뀔 때 적응하는 능력은 생기는 것 같아"란다. 그러면서 "그리스에서 속도위반 걸리면 진짜 기분 나쁠 것 같아"라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교통법규 위반이 판을 치지만 단속이 느슨해보이는 것은, 아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짧은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는 교통법규를 다들 어기는데 운 나쁘면 걸리는 게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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