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온 거지같은 팀장들
좋은 조직원이 되기란 쉽지 않은듯
10년째 회사를 다니면서 참 여러종류의 사람들을 거쳤다. 우리회사는 공기업이라서 굉장히 보수적이고 무사안일주의이며 일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고 그렇기때문에 일하는 척을 오지게 하는 놈만 인정받는다.
그런데 사실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업종이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일이 있는게 아니란걸 뻔히들 아는데, 그 사이에서 일하는척을 한다는게 굉장히 오글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신의 잘남을 어필하지 않으면 무능해보이고 무시당하는 분위기라서 너도나도 지만 바쁘고 지만 잘났다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내가 싸지른 똥도 잘 포장해서 누구든 태클을 걸지 않게 하려는 속내도 있으니, 얼마나 시끌시끌하겠는가.
그런데 사실 팀원들이 이상한건 그냥저냥 참고 지낼수있다. 문제는 팀장이 이상하면 그 영향을 하급자인 팀원들이 고스란히 받는다는게 문제다.
입사하고 첫 팀장은 엄격하고 무서운 큰아버지 스타일이었다. 별것도 아닌일로 괜히 인상쓰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어린 신입사원을 겁에 질리게 하는게 주 취미활동이었는데, 첨엔 멋도모르고 정말 쫄고 무서워했으나, 곧 무서운척을하면 은근 흐뭇해하신다는걸 알고는 그다음부터는 바로 무서운척 쫄은척만 하고 속으로는 '미친놈 또시작이네' 하고 넘겼다.
두번째 팀장은 잘한일은 잘한다고 칭찬은 해주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때부터 온갖 폭언과 막말로 사람을 자괴감에 빠트리는 스타일이었다. 차라리 호통을 치고 화를 내면 깔끔하겠는데 차분한 말투로 비아냥거리면서 사람을 잘근잘근 밟았다. 크지 않은 실수도 그런식의 비난을 한몸에 받아야해서, 작은 실수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했었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 팀장은, 조직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고 승진욕구도 없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팀원들에게 추천해주고 책을 선물하는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 너무너무 좋았으나, 무슨 일을 가져가도 잘 거들떠도 안보고 책 얘기만 하니까 일이 진척이 잘 되지않고 방향을 잡기도 어려웠다.
네번째 팀장은 자존감이 좀 부족한 사람이었다. 팀장이 되기까지 있는듯 없는듯 한 존재로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고 일을 크게 벌리는걸 더 무서워하는 타입이었다. 다른 팀장들은 작은일도 크게 부풀리고 싶어서 안달인데 이분은 오히려 일이 커지면 부끄러워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랬던 그분이, 그 직전 팀장이 크게 실패하고 물러난 일이 운좋게도 대성공을 거두는 타이밍에 기가막히게 팀장이 된 덕에 그 공을 한몸에 받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공을 세우지못해 안달하고 팀원들을 닦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그 쟁쟁한 악명높은 팀장들을 제치고 월등히 나쁜팀장 1위에 등극했다지.
다섯번째 팀장은 말그대로 최악이었다. 기본적으로 남성우월주의, 학벌온상주의를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어서 비 스카이 출신의 여직원을 아주 싫어했다. 같은 실수를 해도 스카이출신 남직원은 "넌 똑똑한 애가 왜 이런 실수를 했니." 라며 부드럽게 애석해했으나 비스카이 여직원에게는 정신을 어디다 뒀느니, 초등학생도 아닌게 일을 이렇게 초딩처럼 했느니, 입사한지 지금 몇년차인데 아직도 이런꼴을 보이느니 하면서 온갖 인격모독을 해댔다. 특히 들여쓰기, 띄어쓰기, 장평 자간에 집착을 했는데, 보고서의 내용은 보지도 않고 세로로 금을 그었을 때 줄이 맞지 않으면 어김없이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더 나쁜건, 사람이 그렇게 들들 볶여대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추락한다는거다. 아무리 "저 또라이새끼!" 라고 욕하고 털어버리려 해도 하루종일 그 무시당한 발언이 떠오르고 내가 그렇게까지 하찮아보이나, 어쩜 저렇게 쉽게 나를 폄하하나 하는 생각에 깊게 우울해진다. 그러다가 힘든 티라도 내면, "이게 다 너의 성장을 위해서야! 이걸 잘 견뎌내서 앞으로 조직생활 잘 해내라고 내가 널 훈련시켜주는거야. 누구누구도 내가 다 키워놓은거다." 라는 개소리를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여섯번째 팀장은 말그대로 품격있는 분이셨다. 말투부터 정중하고 차분하며 다정한 분이셨다. 순환보직임에도 오랜기간 한 분야에서 진득하니 일하셔서 관련 지식이 해박하셨고 다른 팀장이 대체하기 어려우니 계속 해당업무를 맡게 된 케이스였다. 업무나 사람에 대한 비난같은건 일체 하지 않으셨고 설령 일이 조금 틀어졌다 해도 온전히 팀장 책임이라고 먼저 말씀하시곤 수습하셨다. 다만, 조용하고 착하면 무시하는 이상한 회사 분위기 탓에, 꽤 파워가 있는 부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팀에서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럴때마다 사람이 너무 좋으니 허허 웃고 마시는게 팀원으로서 좀 답답했을 뿐이다.
일곱번째 팀장은 덜렁거리고 조급하고 멍청하지만 순박한 사람이었다. 말해줘도 까먹으니 자꾸 물어보고, 아무도 신경안쓰는 일에 혼자 꽂혀서 종종거리면서 부산을 떨고, 쓸데없는 갈등을 유발하면서 수습도 못하고, 성질은 급해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다가도 5분 뒤에 바로 사과하는 타입. 같이 있을땐 정말 싫었지만 지나고보니 사람이 참 뒤끝없고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게 오히려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덜렁이 팀장을 보내고 맞이한 여덟번째 팀장은 외모부터 준수하고 굉장히 신중하며 말씨도 부드러웠으니 다들 속으로 만세를 불렀을거다. 하지만 과도하게 신중한 탓에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게 아니라 주구장창 두들기기만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서 건너가려는 팀원들을 붙잡아 매두고 계속 두들기게 하고, 이쯤 두들겨봤음 된거같다고 이제 가려 해도 "너 그러다 감사받으면 어쩔래? 난 감사받기 싫다. 난 조용히 살고싶어." 라고 사람을 주저앉힌다. 그런것까진 뭐 이해한다. 나라고 일욕심이 과도해서 주저하는 팀장을 제끼면서까지 일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사람이 지나치게 예민해진다는 것, 그 예민한 분위기를 뿜뿜 뿜어대고 팀원들에게 팍팍 티를 낸다는 것. 기본적으로 팀원들을 신뢰하지 않고, 보고서의 질이 떨어진다고 타박하고 자기가 직접 작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어서 보고서를 올리고 꽤나 눈치를 봐야 한다는것이 숨이 막혔다. 특히 문제가 생기면 자긴 온지 얼마 안됐으니 잘 모르겠다 하면서 뒤로 빠지고, 일을 그르친 것에 대해 팀원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그럼에도 무지랭이같은 니들을 끌고가는 내가 고충이 많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않는 모습이 기가 찼다. 리더로서의 모습은 하나도 없는 사람을 리더로 모시고 살려니 출근도 너무 하기싫고 직장생활도 우중충하다.
좋은 팀장이란 무엇일까. 나는 과연 저 자리에 오르면 좋은 팀장이 될 수 있을까. 좋은 팀장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케이스는 무수히 많다. 이런걸 배우는게 조직생활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