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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Jul 21. 2021

아이에게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킬 것.

너는 나처럼 크지 않기를

설거지를 하다보면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머리는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는 무념무상으로 설거지를 하다가 몇달 전 엄마와 했던 대화가 별 계기 없이 떠올랐고, 묵묵히 곱씹어보게 되었다.


엄마는 갑자기 엄마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친구 아버지가 군 고위직에 계셨고 남편도 군 고위직 집안의 자제여서 결혼할때 남부럽지 않았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가 수완이 좋아 아버지 인맥 위주로 보험업을 시작하셔서 꽤 잘나갔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 보험업을 엄마 친구분께서 고스란히 물려받으셨는데, 관리를 잘 못해서 다 떨어져나가고 결국 얼마 못가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도 일찌감치 직장에서 잘린 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남아있는 재산이 없다고 한다.

안타까운 친구분의 사연은 잘 들었는데, 이 이야기는 왜 하신걸까 하고 궁금하던 찰나, 이어지는 엄마의 이야기.

"그러니까 너도 아빠만 믿고 있지 말라고. 너가 잘하지 못하면 저렇게 되는거야."


그렇다. 엄마는 저 말이 하고싶었던거다.

나는 아빠와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를 적당한 때에 그만두고 아빠와 함께 일을 하거나 아니면 아빠 은퇴 후 그 사업을 이어받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제각각 동상이몽 중인데, 엄마아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 나름대로 계획과 구상을 가지고 실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엄마는 뭐가 그리 못미더운지, 어느날은 나한테 도대체 그 회사 언제까지 다닐거냐고 물었다가(회사가 업무가 한가한 편이라 노는걸로 보이시는듯하다), 또 어느날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그 회사 그만두지말고 더 다녀라(회사가 일과 가정 양립이 잘 되어있어서 아이 키우기 적합하다), 너는 그냥 아빠가 시키는대로 해라(이럴 마음은 하나도 없는데) 등등 감놔라 배놔라의 연속이었다. 뭐라고 하시든 난 내 갈길을 가고 있는데 급기야는 망한 친구 사례를 들면서 나에게 저런 말씀을 하신거다.


그날 내가 뭐라고 반응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엄마와의 대화가 늘 그렇듯 별다른 대꾸 없이 그냥 시큰둥한 표정을 짓다가 끝났던 것 같다. 시시콜콜한 잔소리들에 반박하기도 그렇고 정색하면 서운하실까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는 날들처럼.

그날은 그냥 별 생각없이 보냈는데 몇달이 지난 이 시점에 설거지를 하면서 떠올려보니, 과연 나는 내 아이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미래를 계획하는 아이에게, 너 그러다 망하는 수가 있으니 잘해라, 라는 말부터 시작한다고? 난 정말이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터무니없거나 위험한 선택을 하는거면 말릴 수는 있겠지만, 진로를 잘 결정해서 나아가는 아이에게 굳이 그렇게 말해서 얻는 이득이 과연 무엇인가. 그냥 아이를 응원해주면 되는데, 왜 남보다도 못하게 질책으로 엄포를 놓는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아이에게 잠옷을 입히고 양치를 시키는 동안 내내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말간 아이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결심이 굳어졌다. 너의 인생을 응원하겠노라고. 너는 나와 달리, 무엇을 하든 응원해주는 부모가 있으니 걱정말고 탄탄하게 네 앞길을 밟아나가라고.

그 결심을 알려주기 위해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아, 엄마는 너가 뭘 하든 '넌 잘 할 수 있어. 응원할게. 사랑해~' 라고 말해줄거야."

"뭐를?"

"뭐든지. 네가 선택하는 거라면 뭐든지 엄마는 존중해주고 응원해줄거야!"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엄마."

"응? 왜?"

"아까 내가 김밥 4개 먹는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안된다고 5개 먹으라고 했잖아."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놈 자식 응용력이 왜이렇게 좋은건가...

"음, 음... 이런건 말고!! 먹는거나 건강을 위한거 빼고!!"

"알겠어 엄마~"


그 뒤로도 종종 무언가 할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엄마, 응원해준다며~ 하고 대꾸하는 아들이지만, 내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려서 뭔가 결정할 게 없으니 쉽게 다짐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 나가면서 생길 중요한 결정들 앞에서 아이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아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부모가 절대 되지 않도록 결심하고 또 결심하며 아이를 키울 것이다. 믿어주고 응원해주다 보면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백조가 되어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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