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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Oct 19. 2021

말조심을 해야하는 이유

부모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날씨 좋은 어느 날, 첫째 하원을 시키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를 타기로 하고 정류장에 둘이 오도카니 서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아이와 유치원에서 오늘 뭐 하고 놀았는지 얘기하고 주변의 꽃이랑 풀을 보며 조잘조잘 얘기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길 건너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빤히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엄마. 저 사람은 배가 왜저렇게 뚱뚱해?"


왕복2차선의 좁은 도로, 차도 사람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아주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그 길에 아이의 거침없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배가 뚱뚱한 사람의 귀에 안들렸을 리가 없다. 사람이라고는 우리 모자 외에는 그 사람뿐인데다 평소 자신의 배가 뚱뚱함을 알고있을테니 아이가 자기를 보고 하는 말이라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재빨리 그 사람의 귀를 보았지만 이어폰 같은것도 없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말해야할지 우물쭈물 하면서, 아이가 더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빨리 멀리 걸어가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아이는 더이상 아무말을 하지 않았고 그 사람도 제 갈길을 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뚱뚱한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돼! 라고 하기에는 뚱뚱한게 죄가 아닌데, 내가 오히려 뚱뚱한걸 잘못된 것으로 알려주는 셈이 아닌가. 게다가 아이는 그냥 뚱뚱하거나 작거나 크거나 동그랗거나 그냥 그 생김새가 보이는대로 말한것 뿐 어떤 악의를 갖고 말한게 아닐테니,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말을 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지 난감했다.


우선 왜 그렇게 말했는지부터 물어봤다.

"OO아, 저 사람 배가 뚱뚱한게 이상해?"

"응! 배가 풍선같이 뚱뚱해서 하늘로 날아가버릴까봐 걱정돼."

"그랬구나. 그런데 다른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좋지 않아. 기분이 나쁠 수 있어. 뚱뚱하든 날씬하든 못생겼든 예쁘든 외모에 대해서 얘기하는건 안좋은거야."

"왜?"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봐야하는데 겉모습에 대해 말을 하면 서운하겠지? 외모를 이야기하지 말고 그 사람이 착한지, 같이 놀면 재미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런걸 먼저 알아봐야해."

"알겠어~"


얼렁뚱땅 대화는 마무리 지었지만, 뭐라고 말해줬어야 정답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평소에도 무심결에 선입관을 심어주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하는데, 예를 들어 너무 자연스럽게 '너도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돼~' 라고 말을 하다가도, 다시 정정하곤 한다.

"아니, 결혼했다고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건 아냐. 둘 다 원하면 낳는거고 안낳아도 되는거고~"

그러다가 다시 정정한다.

"아 그리고 꼭 결혼을 안해도 돼~ 너가 하고싶으면 하는건데 안해도 상관없는거야~"

그리고 다시 정정한다.

"아 맞다, 그리고 꼭 여자랑 결혼해야 하는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남자끼리도 결혼하고 여자끼리도 결혼할 수 있어~"

여기까지 헥헥대고 말해보지만 아이는 이미 관심이 떠나있고 듣지 않는 뒤통수에다가 혼자 열심히 말하고 있다.


그래도 아이에게 내 말로 인한 선입관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야 자연스러운 가족이라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것. 등등 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꼭 정답만은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사지가 멀쩡한 사람만 정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거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는 아픈 구석이 많은데 그것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직 어리니까, 뭔가를 구구절절히 알려준다기보다 내 평소 말투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며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말조심을 한다.


요즘 가장 경계하는건, 나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누군가의 차나 집 이야기다. 남편과 이야기 나눌때 누군가를 설명하기 어려우면 "그 왜 벤츠 타고 오는 엄마 있잖아~" 라던가 "과천에 청약 당첨됐다는 동기 말이야~" 하고 말하게 되는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아이가 친구들은 다 벤츠 있다고 우리도 벤츠 사자고 했다며 고민하는 부모의 글을 읽고는 이것도 아주 조심해야하는 것임을 알게됐다. 특히 다른 친구집에 다녀왔다고 하면 친정엄마나 남편도 아무 생각없이 "그 집은 어딘데? 몇평이야?" 하고 묻고 나도 별생각없이 "ㅇㅇ아파트~ 지은지 오래되서 인테리어 싹 했더라고. 28평이라 좀 좁더라." 라는 말을 하는데, 아이가 그걸 고스란히 듣고 "ㅇㅇ네 집은 오래되고 좁아!" 라고 유치원에 가서 말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이의 언행은 곧 내 언행이 되는 시기, 언어 흡수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5살 아이 앞에서,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말조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꼭 말을 조심해야만 인성이 들키지 않는 사람 말고, 진심으로 좋은 가치관을 갖고 아이를 대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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