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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Jan 10. 2022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중

부모보다 아이가 더 큰 사랑을 준다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가볍게 아침을 때우려고 뭘 먹을까 하다가 5살 첫째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럼 길 건너 햄버거집에 엄마랑 둘이 가서 포장해오자고 하고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돌쟁이 둘째때문에 큰애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잠깐이나마 남편에게 둘째를 맡겨놓고 큰애와 손잡고 오손도손 뭔가를 사러 나가는 길이 나에게는 왠지 즐거웠다. 느긋하게 다녀오고 싶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빨리 햄버거가 먹고싶다며 날 잡아끌고 달리고 있었지만.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를 향해 가다가, 바람 부는데 신호등 기다리기가 추울것같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이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햄버거 사러 안가?"

"응? 가는중인데?"

"근데 왜 지하철 타러가?"

"아~ 이건 지하철 타는거 아니야. 그냥 길 건너려는거야."

"그런데 지하철 에슬리컬레터(에스컬레이터 발음을 아직 잘 못한다) 타고 있잖아 지금."

"아, 이건 그냥 내려갔다 올라오는거야. 지하철 안타."

"응~그러고싶었어?"

"......????"

뭘 그러고싶었냐는건지 모르겠지만 추워서 대화하기 귀찮아진 나는 묵묵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고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가려는데, 아이가 같은편 상향 에스컬레이터 방향으로 몸을 틀어서 되돌아 올라가려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다급히 아이를 붙잡았다.

"그쪽 아니야~ 그걸 왜 타? 햄버거 사러가야지!!"

"엄마가 내려갔다 올라온다며~"

그제서야, 나한테 그러고싶었냐고 물은 아이의 질문이 생각났다. 아이 입장에서는 지하철 역사를 통해 길을 건넌다는 의미를 잘 몰랐을테고, 햄버거 사러간다는 엄마가 갑자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오자고 하니까 그냥 그러고 싶었나보다 하고 엄마가 하고싶어하는걸 따라해준것이다. 햄버거가 빨리 먹고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왜 쓸데없이 내려갔다 올라와야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그냥 엄마가 그렇게 하고싶어하니까 따라와준 아들. 나한테 왜 그런걸 하느냐, 시간낭비하지말고 빨리가자 등등 제어하거나 반대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 그저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주는 아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가 원하는걸 곧이곧대로 들어준 적이 몇번이나 있으려나 반성하게 된다. 간식이 먹고싶다 하면 밥을 잘 먹어야 준다는 둥, 달리기 하고싶다고 하면 넘어질 수 있으니 뛰지말라고 한다는 둥, 자전거 타고싶다 하면 바람불어서 안된다, 음료수 마시고싶다 하면 너무 달아서 안된다, 차가운 물 마신다 하면 배가 차가워져서 건강에 안좋다 등등.....  항상 아이의 요구에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내놨던 것 같다. 오죽하면 장난감을 사러갈때도 내가 하도 가성비를 따지며 원하는걸 못사게 하니까, 어느날은 장난감 가게 문 앞에서 나에게 조건을 거는 것이었다.

"엄마, 오늘은 장난감가게 사장님이 '이건 2만원입니다~' 라고 해도 사야해. 알겠지??"

평소에 사는 장난감의 상한선이 19,900원이라는걸 알고 있었던걸까. 내 기준에서의 가성비는 아이에게 그저 원하는걸 비싸서 못사게 하는 엄마로 보일 뿐이었다.

물론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과소비를 안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지만, 몇번 쯤은 흔쾌히 젤리를 원하는만큼 먹게해줄걸. 곧 망가지게 생긴 장난감을 25,000원이나 줘야해? 라는 생각 없이 그냥 턱턱 몇천원 더 쓸걸. 아이에게 태클없이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걸. 아이는 내 쓸데없는 행동도 날 위해서 군말없이 해주는데...


친구도 자기 딸이랑 쌀국수를 먹으면서 감동받았다고 한다. 칠리소스를 좋아해 잔뜩 뿌려놓고 듬뿍 찍어먹는 엄마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던 딸이,

"엄마. 엄마는 소스가 맛있어요?"

"응. 너도 먹어볼래?"

"아니요. 엄마는 참 소스를 좋아하는군요. 난 소스 없이 먹는게 좋아요. 소스 맛있게 드세요 엄마."

하곤 호로록 국수를 먹는데 그렇게 이쁠수가 없었단다.

만약 애들이 맵고 짜고 달고 한 소스를 가득 찍어먹으면 분명히 "안돼! 너무 짜! 소스는 조금만 찍는거야!!" 하고 마구 덜어냈을텐데. 자기들은 그렇게 들이부어 먹으면서, 아이들은 엄마가 묻혀주는대로 소스를 먹도록 하겠지. 물론 아이들은 소스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걸 모르니까 엄마를 제지하지 않는거지만, 여하튼 엄마가 좋아하는걸 여과없이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되자고 다짐하지만, 실은 아이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잔뜩 받는 중이다. 아이를 키우는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이 세상에서 나의 행복을 여지없이 군말없이 오롯이 바래주는 작고 소중한 존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아이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스를 찍어먹는 사소한 생활을 함께하면서 시도때도없이 이렇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오늘은 왠지 하원시간이 기다려질만큼 아이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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