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아이 제압하기
육아서적은 그저 교과서일뿐
아이가 점점 말을 안듣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통솔이 어려워진다. 수많은 육아서나 오은영쌤은 먼저 아이를 공감해주고 대화로 이끌어나가라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오은영쌤처럼 너무 능숙하게 "아~ 네 마음이 이랬구나?" 하고 뚝딱뚝딱 대화를 진행하고싶지만, 현실은 울고불고 방방 뛰는 아이를 일단 앉혀서 말을 걸기위해 수없이 몸씨름을 하다가 결국 꽥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너, 쓰읍, 어허, 혼나! 라는 엄포로 애를 키우게 마련인데, 일단 무서운 표정과 엄포가 애한테 들어먹히기 시작하면 그 달콤함을 뿌리칠 수가 없게된다. 손쉽게 제압하는 방법을 알게 된 엄마가 다시 다정다감한 대화로 돌아간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아이의 장난기를 '무서운 엄마'로 단숨에 제압하고 평화로움을 누리게 된다.
나도 나름 대화를 중시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하지만, 전투같은 육아의 현실에서는 일단 어허 쓰읍 으로 아이를 통솔했다. 소리 한번 버럭 지르면 그 장난꾸러기도 움찔 하고 장난을 멈추니까.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어느 날, 첫째가 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여느때처럼 소리를 꽥 질렀다.
"김땡땡! 하지마!"
"......"
아이는 평소처럼 주눅들거나 주저하는 표정이 아닌, 마치 무슨 결투를 앞둔 사람 마냥 볼을 씰룩거리더니,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리지르는건 나쁜행동이야!!"
"뭐...?너가 지금 동생 괴롭혀서 엄마가 화가나서 그러는거잖아!"
"화가 난다고 소리지르는건 나쁜행동이라고오!!"
그렇다. 아이의 말이 맞다. 그러고보니 학기초에 유치원 담임선생님과 상담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개구쟁이인 아이가 혹시 다른아이들과 트러블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나에게 담임선생님은 요즘 아이들과 상호작용에 대해 배우고 있어서, 누가 장난감을 빼앗아서 싸웠다면 빼앗은 아이는 '장난감 빼앗아서 미안해' 라고 사과하고, 빼앗긴 아이는 '나도 소리질러서 미안해' 라고 사과한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들을땐 참 현명하고 공평한 방식이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그 화살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아이는 유치원에서 계속 서로 사과하는 방법에 대해 터득하다가 그걸 집에서도 응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지르는것도 나쁘고, 화가 났다해도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는 말에 나는 참으로 무력해졌다. 뭘 할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즈음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었고(예를 들면,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내 기분이 어떻겠냐, 내가 기분이 좋을 것 같냐, 내가 여기 마음이 지금 매우 아프다 등등) 나는 점점 목소리에 힘을 잃어갔다. 소리를 질러봤자 더 큰 목소리로 "소리지르는건 나쁜행동이라고오!!!" 하고 잊지도않고 대꾸를 해오니 여튼 소리를 질러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일단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귓등으로 들었지만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계속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점점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엄포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소리를 지르는건 하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는 점점 높게 질러야 들어먹히는데, 그래봤자 내 목만 아프지.
삼남매를 키우는 지인이 있는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그 집 아이들은 엄마말을 엄청 잘듣고 순순히 따랐다. 코로나 전에 여러집이 모여 아이들끼리 뒤죽박죽 정신없이 노는 와중에 저녁을 먹이고자 할 때면, 나는 내 아이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밥먹어라, 안먹으면 집에 간다 협박하고, 또 다른 엄마는 노느라 정신없는 아이를 졸졸 쫓아다니며 입에 쑤셔넣고, 그냥 대충 먹이다 포기하는 엄마도 있고 각양각색인데, 그 엄마는 정말 간단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낮고 굵은 목소리로
"A. 밥먹어."
하면 저 멀리서 놀던 A가 달려와 한입 쏙 먹고 가고,
"B. 밥."
하면 저 멀리서 놀던 B가 쪼르르 와서 한입먹고 가는 진풍경이 펼쳐지는거였다.
너무 신기한 나는, 어떻게 한거냐고 물었는데 그냥 그 지인은 깔깔 웃으며 모르겠다고, 평소에 무섭게 대하는건 아닌데 그냥 애들이 말을 잘 듣는다고 했다. 그냥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스랄까 그런게 좀 있는 사람이긴 했다. 나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어서 우리아이가 이런걸까.
돌쟁이 둘째도 그 지인 앞에 가면 왠지모르게 공손해진다. 조금 징징댈때 그 지인이 아주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어. 누가."
라고 한마디 했는데 울음을 뚝 그치고 나한테 찰싹 붙어서 그 지인이 집에 갈때까지 바닥에 내려오질 않았다. 그러나 지인이 주는 바나나나 과자는 잘 받아먹고 안아보자 하면 쏙 안기고 무슨 인형마냥 얌전히 따르는게, 마치 조금 무섭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을 지체없이 착착 따르는 느낌이랄까. 일단 나도 그 포스를 배워보기로 했다.
아이가 말썽을 피우면 차분하고 굵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그만해. 이리와봐. 정리해.
그래도 안하면,
지금 안하면 엄마 화가날것같아. 빨리. 어서. 어허.
그래도 들은척도 안하면,
마지막 기회야. 어서. 어허. 셋 셀때까지 와. 하나 둘 셋.
그렇게 혼자 진지하고 엄숙하게 허공에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냥 다시 원복했다. 대신 상황이 조금 다름을 인지시켰다. 엄마가 화를 내는게 아니라 혼을 내는거라고. 화난다고 소리지르는건 나쁜행동이지만 잘못한 일에는 혼을 내는게 맞고, 혼내는건 나쁜행동이 아닌거라고. 오묘하게 앞뒤가 맞는것 같기도 하고 어불성설 같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는 수긍했다. 혼을 낸다는 명목 하에 소리를 지르면 아이도 말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따랐다. 드디어 다시 평화로우면서도 내 성질대로 육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또, 무언가를 터득해 온 것 같다. 혼나기 전에 미리 재빨리 주눅 든 표정을 지으며
"내 몸이 맘대로 되지 않아서 그래~"
라고 말하는데, 어찌 소리지르며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래, 아직 6살이고 모든게 미숙한 나이인데, 뭘 쏟았다고, 망가뜨렸다고,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그리 화내고 혼낼 일인가 싶어 다시 반성하고 아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자기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서툰 나이임을 알면, 쏟을 게 뻔한 우유를 들고 쇼파에 올라가고, 부서질게 뻔한 장난감을 그렇게 험하게 갖고 놀면 안되는 게 아닌가. 유치원에서 무언가 실수를 했을 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서 용서하는걸 듣고 나한테 써먹는 걸 텐데, 유치원의 인성교육에 감탄스럽다가, 요렇게 집에 와서 응용하는게 기특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여러모로 미워할 수 없는 6살이다.
어찌됐건 나도 분풀이용으로 소리를 지르는 부분이 없잖아 있으므로,(아니 실은 대부분이지만;;) 천사같이 예쁘고 소중한 아이에게 소리부터 버럭 지르는 행동은 고쳐보기로 했다. 삼남매 지인처럼 내면의 포스를 점차 길러가고,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로. 노력과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