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씨가 완연한 주말이었다. 단풍이 지기 전에 아이와 야외활동을 하고싶어서 예전 어린이집 친구들과 서울근교 카페에 놀러갔다.
단풍이 가득한 산을 끼고 있어서 산속에 테이블과 평상을 놓고 아이들 놀 수 있는 그네와 오두막이 있는 대형카페의 가을 주말.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테이블이 꽉 차서 자리잡는데도 오래걸렸고 음료 주문 줄도 너무 길어서 아이엄마 중 한명은 줄을 서서 음료를 사오고 나머지 엄마 둘은 아이들과 포토스팟이 가득한 숲에서 놀고 있었다.
그 중에 동굴처럼 만든 아기자기한 공간에 아이 셋을 놓고 사진을 찍던 참이었다. 조금 좁은 의자에 6세 아이 셋이 앉으려니 서로 조금 낑겨서 앉았다가 옆에 섰다가 오락가락하는데 대충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다 찍자마자 한 아이가 신경질이 난 얼굴로 우리 애 팔을 툭 하고 때리는게 아닌가. 원래 아이들 일에 잘 관여하지 않는 편인데, 다짜고짜 때리는 행동은 그냥 넘어가기가 좀 그랬다. 그 아이 엄마가 있었다면 아이의 행동을 교정했을텐데 하필이면 음료 주문 줄을 서느라 부재중이어서 내가 대신 한마디를 했다.
"친구 때리면 안되지~!"
"○○(우리아이)이가 먼저 저 때렸단 말이에요!!"
때린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에 가려져 우리 아이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아뿔싸, 우리아이가 먼저 잘못을 했구나, 그걸 미처 캐치를 못하고 이 아이를 원망했네. 나는 조금 당황한 채로 화살을 우리 아이에게 돌렸다.
"○○아. 네가 먼저 때렸어?"
"아니 그게 아니고....."
아이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행동을 하긴 한 것 같다. 혼날까봐 망설이는 말투와 애매한 표정이 아무일도 없지는 않았음을 이미 입증하고 있었다. 아이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 그 뒤에서 모든걸 지켜본 또다른 아이가 잽싸게 대답했다.
"○○이가 때린건 아니고 벌레가 있어서 팔을 휘젓다가 실수로 친거에요!"
그럼 그렇지! 애가 개구쟁이긴 해도 누굴 일부러 때릴 애가 아니다. 먼저 맞아도 발을 구르며 분풀이를 할 지언정 누굴 때리진 않는다. 내 아들인데 왜 못믿어줬을까. 구세주같은 목격자의 진술에 힘입어 다시 상황을 정리해보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목격자의 엄마가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목격자에게 말했다.
"딸, 지금은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이건 또 무슨소리인가. 저 엄마 각도에서는 뭔가가 보였나? 실수로 친 게 아니라 일부러 때리는 장면이 보인건가? 왜 잘 하고있는 목격자의 진술을 막는거지?구세주를 잃은 나는 한숨을 쉬며 우리아이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어쨌거나 먼저 잘못을 했고, 실수든 뭐든 친구를 아프게 했다면 사과해야한다고. 아이는 울듯말듯한 표정을 짓다가 사과를 했고, 그 아이는 못마땅한 얼굴로 한참을 대꾸를 안하더니 겨우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고서는 또 아무렇지 않게 깔깔대며 서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아이들의 투닥거림이니까. 드디어 오래오래 기다린 음료와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맛있게 먹고, 산에 있는 도토리를 줍겠다고 각자 한무더기씩 줍고, 다람쥐에게 돌려준다고 다시 와르르 쏟고, 헤어질때는 서로 아쉬워하며 한참을 인사하다가 각자 차에 올라탔다.
운전을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생각을 해보니, 먼저 실수로 친건 미안하지만, 맞은 아이도 발끈해서 바로 주먹이 나갈게 아니라 친구에게 확인을 해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날 툭 쳤다면 일단 그게 일부러 때린건지 실수로 잘못 건드린건지 확인 먼저 해봐도 좋을 것 아닌가. 너 나 왜 때렸니? 때린건 아닌데 파리를 쫓다보니 실수로 치게됐어. 아, 그랬구나. 그래도 아팠어 앞으로는 조심해줘. 응 미안해! 이런 방식의 해결이 있지 않은가. 물론 6세 아이들에게 어려운 대화지만, 아이에게 주지시켜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하고 먼저 맞는 입장이 되었다면 이렇게 해결해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아. 아까 넌 파리때문에 실수로 그 애를 친건데, 그 애가 자기를 왜 친건지, 실수인지 아니면 일부러 때린건지 확인을 먼저 해봤어도 좋을텐데. 그치?"
"맞아!"
"그럴땐 바로 때릴게 아니라 친구한테 한번 물어보는게 좋을것같아. 그치?"
"응!"
"그리고 설령 친구가 일부러 때렸다 할 지라도 바로 같이 때릴게 아니라 대화로 해야지. 그치?때리는건 나쁜거니까."
"응응!"
"그래. 그럼 앞으로 너가 아까 그 애 같은 입장이 되면 어떻게 할래?"
"응.....?"
여기서부터는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같이 때리지 않고 대화로 해결할래요!' 라는 대답을 듣고싶었으나, 아이는 뭘 묻는건지 잘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아까처럼 친구가 널 실수로 쳤을때, 넌 뭐라고 할거냐고."
".....??"
"그 친구처럼 바로 때릴 게 아니라 넌 어떻게 할거냐고. 바로 때리는건 나쁜행동이잖아. 그치?"
"맞아! 바로 때리지 않고 좀 이따 때려야해!!!"
"????!!!!"
지금까지 잘 알아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6세 육아는 어렵다. 좀 이따 때리면 그건 안 나쁜 행동이냐고 한숨과 일장연설을, 그리고 웃기기도 해서 깔깔 웃다가 잘 얘기하고 마무리했다. 과연 다음에 또 그런일이 생기면 좀 이따 때릴것인가 대화로 잘 해결할 것인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