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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Aug 29. 2019

엄마의 건망증

이런 정신머리로 애는 어떻게 키울지

흔히들 출산 후유증으로 ‘건망증’을 말하곤 한다.

애 낳느라 모든 신체 능력이 노화되면서 자꾸 깜빡깜빡 하게 된다는 것이고, 또 육아를 하면서 늘 정신이 없고 신경쓸게 많으니 이것저것 놓치는게 많다는 뜻일거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건망증이 심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을때가 있다. 일례로, 지난 주말 친구집을 방문했다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장염에 걸린 아이가 응가를 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분명 묽은 변이어서 그대로 집까지 갔다가는 다 새어나올 것이 뻔하므로 근처 대형마트에 내려서 기저귀를 갈고 가자고 결정했다. 그때부터 응가가 새기 전에 갈아야한다는 사명감에 엄청나게 신속하게 주차를 하고 재빨리 수유실을 찾았으며 들어가자마자 남편과 손발을 맞춰 착착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빼고 아기샴푸를 꺼내고 일사천리로 해결을 했다. 그와중에 바지를 살펴봤는데 깨끗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비닐에 넣어가려했는데 주변에 비닐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손닦는 티슈 몇장을 뽑아서 바지를 둘둘 감쌌고...... 그 뒤로 그 바지를 어쨌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여튼 뒷정리를 다 하고 다시 길을 나서면서 남편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길래 아기랑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가 문득 그 둘둘 말은 바지를 가방에 넣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애를 안은 손으로 불편하게 가방을 휘젓느니 다시 수유실에 들어가서 놓고온건지 확인하는게 편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가봤는데 바지가 아무데도 없길래 아, 역시 가방에 넣었군. 하고 이번엔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방을 휘저었는데... 가방 안에도 없는거였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아마도 휴지에 둘둘 말면서 아무렇지않게 휴지인줄알고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만 같은 내 모습이 떠오르는거다. 설마, 했지만 생각할수록 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확신만 생겼다.

이제와서 쓰레기통까지 뒤지고 싶진 않았다. 새 바지이긴 했어도 아깝지만 잃어버린 셈 치고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편한테 얘기를 시작했다.

“여보, 바지를 안챙긴것 같아서 지금 들어가봤는데, 바지가 없는거야. 근데...”

라고 하자 마자 남편 왈,

“청소하시는분이 그새 치우셨구나! 어쩔수없지 뭐.”

라고 하는게 아닌가!

여기서 내가 버렸다고 이실직고하면 꼴이 좀 우스울 것 같아서

“으응, 그렇네. 여기 청소 진짜 신속하게 잘하시는것같아!”

하고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집에 왔더랬다.


이 얘기를 나와 비슷한 부류인 회사 선배한테 했더니, 선배는 무슨 워터파크 무료입장권 네 장을 찍은 사진을 나한테 보여주면서

“이것보렴. 나는 지난주말에 리조트에 놀러갔는데 체크인할때 이 무료입장권을 뻔히 받았으면서 워터파크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단다.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이게 나와서 어찌나 놀랐는지!”

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 선배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심어주는 선배님께 새삼 감사드린다.


그런데 또 며칠전, 아기 어린이집 같은반 엄마들과 모여서 신나게 놀았던 적이 있었다. 한명의 집에 모여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맥주도 마시고 신나게 노는데 시간을 보니 어느덧 12시가 다되어가는게 아닌가! 더 놀겠다는 아이를 급히 챙겨서 택시를 타고 오는데 오는길에 아이는 품에서 잠들었고, 깨지않게 살살 침대까지 안고 와 성공적으로 눕히고는 나와서 씻고 남편과 맥주를 한잔 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 옆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는데, 아이가 춥진 않은가 하고 어둠 속에서 다리를  주섬주섬 만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아이가 신발을 신고 있는게 아닌가! 잠든 아이를 조용히 눕히는데만 신경쓰다보니 미처 신발을 못 벗겼던 것이다;; 남편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몰래 신발을 벗겨서 신발장에 후다닥 던지고 아무일없이 잠을 청했다.

역시나,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선배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까,

“풉! 나도 그런적 있는데!!!”

하는 이 익숙한 반응!

또 안도감을 잔뜩 안겨주는 좋은 선배님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과도한 건망증으로 때로는 낭비를, 때로는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엄마니까 좌충우돌 하면서 육아를 해야하는것! 이 세상 모든 건망증 엄마들의 고군분투 육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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