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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Apr 12. 2024

내 아이 가르치기

교육은 교육자가 하는걸로!

아이가 유치원생이 됐을 무렵이었다.

한글을 떼고 학교를 가야한다고 모두들 아우성이었고, 난 그들 틈에서 꿋꿋하게 한글은 초등학교 입학 후의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있고, 유치원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는 한글 교육이 없는 이유가 다 있을거라고 굳게 믿으며 한글교육에 무관심 했었다.


특히 엄마가 나는 어릴적에 가르친 적도 없는데 집에 있는 책 제목을 술술 읽더니 5살때부터 일기를 썼다길래, 모국어란 그냥 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거구나, 그리고 한글 못읽는 한국인 없으니 언젠가는 다 되는거라고 생각하고 남들이 뭐가 좋다, 어디 교재가 좋다 얘기해도 그냥 귓등으로 들었다.


유치원도 국공립이어서 한글 교육이 아예 없었는데, 친구들 이름을 익히고 책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에 노출되고 학습이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지 역시 한글은 이렇게 익히는거지! 라고 감탄했다.

사립유치원에 보낸 엄마들은 유치원 방과후과정에 한글 수업도 있고 숙제도 있다며 힘들어했다. 아이 숙제를 봐주면서 너무 답답해서 꿀밤을 때렸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저런 몰상식한 행동을....' 이라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내 아이는 5세 겨울 무렵에 자기 이름 석자와, 가장 좋아하는 '탱크' 를 쓸 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한글을 익히겠지... 싶었지만 속도가 좀 더디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도, 이게 시작이겠지 하며 꿋꿋하게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6세 하반기가 되도록 너무 진전이 없자 나도 이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국공립 유치원을 보내는 주변 엄마는 아이에게 학습지를 시켰더니 그나마 좀 읽더라 하길래 나도 덜렁 학습지를 신청했다.

주1회 선생님이 방문해서 10분정도 봐주는데, 그래도 그걸 시작하자 아이는 읽고 따라쓰고 정도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정도 하다가 학교를 가면 되겠지 싶었다.


아이에게 꿀밤을 때렸다는 엄마는 도저히 숙제를 봐주기도 힘들어서 학습지 회사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를 보낸다고 했다. 원래 선생님이 가정으로 방문하는 형태지만, 지역별로 학원처럼 센터를 운영해서 학원 보내듯이 보낼 수 있다는 거였다. 센터에 가보니 독서실용 칸막이 책상이 쫙 깔려있고, 초등학생들이 앉아서 40~50분씩 문제를 푼다고 했다. 유치원생인 아이는 그 틈바구니에서 40분씩 지루해하며 문제를 푸는데, 너무 힘들면 학습지에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버티라고 했다는거다. 그 얘기를 들으며 또 나는, 저렇게 어린 아이를 저런 감옥같은 곳에 가두고 공부를 시키다니.... 하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두달 정도 앞둔, 유치원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아이는 어느정도 술술 읽기는 하지만, 여전히 글자를 쓰는건 어려워했다. 읽을 수 있으면 쓸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영어 공부할때 reading 이 된다고 writing이 되는건 아니지 않냐는 말을 듣고는 아차 싶었다. 쓰기는 정말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물론 학교에 가면 한글을 ㄱ,ㄴ 부터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다 한글을 할 줄 알아서 진도를 아주 빠르게 나가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불안해졌다.  


그즈음 마침 언니가 남자아이 전용 한글떼기 교재가 인기있는게 있다고 주문해줘서 그걸 시작해보았다. 공룡 이름으로 한글을 배우는 책이었는데, 아이가 굉장히 재미있어하며 즐겁게 한글을 배웠다. 이런 참신한 아이템이 있나 감탄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래서 지면학습지 공부를 아주 지겨워하기 시작했다는거다. 때마침 지면학습지 선생님은 태블릿 학습을 자꾸 권했고, 그건 또 왠지 싫었던 나는 공룡으로 한글을 계속 익히면서 학교에 들어가서 또배우고, 틈틈히 내가 한글을 가르쳐야겠다는 원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지면학습지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르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 자식 못가르친다는 이야기야 수도없이 들었지만, 왜 내 사랑하는 아이를 못가르쳐? 차근차근 가르치면 되지 별게 다 어렵다 하네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게 문제였다. 아이는 일단 내 말을 잘 듣지를 않았다. 하기 싫으면 몸을 배배 꼬고 이런 저런 푸념과 한숨만 잔뜩 늘어놓는데, 그걸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공룡 교재도 끝나버렸는데, '사우루스'만 잘 썼고, 작문이 되는 수준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필사를 해보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보고 쓰는것도 어렵다고 징징거리며 연필 가지고 장난만 치는데, 흑연심을 꾹 눌러 그 가루가 다 튀고 기어코 부러트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등짝으로 손이 올라가는게 아닌가. 딱밤 때렸다고 몰상식한 엄마 취급한 나 자신에게 한없이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어영부영 학교에 입학을 했고, 주간학습계획을 보고 더 좌절했다.


수요일 국어 : 자음자를 안다.

목요일 국어 : 자음자를 더 안다.

금요일 국어 : 자음자를 바르게 쓴다.


알아보기 시작한 3일만에 쓴다고...? 정말 하나도 시작 안하고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필사를 해보겠다고 아이와 몇주를 끙끙대다가, 결국 학습지 교육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나 말고 제대로된 선생님과 교실에서 수업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교육센터가 너무 삭막해서 감옥같다지만, 나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지옥일 터 였다. 지옥보다는 감옥이 낫지 않겠는가. 


딱밤도 감옥도 흉볼 것 하나 없었는데, 또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멋대로 재단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를 또 다짐해보며, 아이와의 싸움을 중단하고 번듯한 교육기관에 보내기로 결정하니 속이 다 후련했다. 아이와 나는 사이좋은 모자관계만 하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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