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양치기소년
어느 날 둘째의 하원길이었다. 유치원 같은반 친구가 다가와 마이쭈를 줬다.
한개도 아니고 한 줄을 통째로 주었는데,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는 간식인데다 애플망고맛이어서 나도 보면서 희귀템이네, 형도 좋다고 달려들텐데 집에 가서 사이좋게 나눠먹으라고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왔다.
역시나 집에 돌아와서 마이쭈를 본 형은 맛있겠다! 하면서 달려들었고, 저녁먹어야 하니 하나씩만 나눠먹으라고 하고 나는 주방일을 하러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다음날 아침,
눈 뜨자마자 둘째가 두리번거리며 남은 마이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마이쭈 어디갔어?"
"몰라. 어제 형이랑 하나씩 나눠먹었잖아. 남은거 어디다 뒀어?"
"여기 올려놨는데 없어졌어."
"뭐? 그럼 혹시 형이 다 먹은거야?"
큰애를 불러내서 어제 마이쭈 하나씩만 먹으라고 했는데 왜 다 먹은거냐고 다그쳤다.
큰애는 아니라고, 어제 하나씩만 먹고 더이상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여기 뒀다는 마이쭈는 어디갔어?"
"몰라, 난 진짜 한개만 먹었어!"
혹시 다른데다 마이쭈를 둔건가 아무리 찾아봐도 마이쭈는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둘째가 다 먹어버린건가 확인했지만 자기는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형밖에 없다. 평소에도 젤리를 좋아하고 하나만 먹기로 한 약속을 금방 깨트리며, 허락을 구하지 않고 몰래몰래 먹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마이쭈가 그럼 어디에 갔겠냐, 네 뱃속에 다 들어간거 아니겠느냐, 동생이 받아온건데 왜 너가 몰래 다 먹어버린거냐 동생에게 사과해라. 계속 큰애만 다그쳤다.
며칠 후 청소를 하느라 장식장 밑을 밀대로 쓸어내려고 보니, 거기에 남은 마이쭈가 떡하니 있는게 아닌가!
큰애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한번도 믿어주지 않았던 나 자신도 후회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양치기소년이었으면 아무도 그 애를 믿어주지 않았겠나 싶기도 했다.
이런 류의 억울함을 나도 매우 잘 알고있다. 우리집에서 무언가 잃어버리면 그건 무조건 내가 범인으로 몰렸다. 남편은 자긴 항상 물건을 그 제자리에 그대로 다시 갖다둔다고 했다. 범인은 늘 아무데나 쑤셔넣는 나라고 했는데, 사실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는 정말로 아무데다 쑤셔넣고 잘 기억해야지, 하고 그대로 까먹는다. 오죽했으면 잘 저금해야지, 하고 저축해둔 계좌도 잊어먹어서, 어느날 자꾸 내 수익률이 어쩌고 하는 이메일이 오길래 도대체 왜자꾸 이런게 오는건가 하고 열어보니 거기에 내가 저금한 계좌가 있다는거다. 잔고 정리를 안한 계좌인가 싶어서 열어보니, 무려 1300만원이나 들어있는게 아닌가! 잊고있던 계좌의 돈은 정말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같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큰 돈을 저금해놓고 잊어버렸다니 얼마나 부주의한 사람인가 한심하기도 했다. 요즘엔 다행히도 '내 계좌 찾기' 같은 서비스가 생겨서 얼마나 안도감이 드는지 모른다.
그래서 집에서 뭔가가 없어지면 내가 범인이고, 먹을게 사라지면 큰애가 범인이며, 큰 방귀소리가 나면 무조건 남편이 범인이다. 이렇게 각자 양치기소년같은 영역이 있고 자업자득이라 할 말은 없지만 진짜로 본인이 아닐때는 굉장히 억울해지는 상황이 펼쳐진다. 큰애도 눈빛만 보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을텐데, 양치기소년의 영역이다보니 그런걸 살펴볼 겨를도 없이 범인으로 단정지어버렸다. 큰애도 이런 억울함이 쌓이다보면 점점 솔직해지겠지. 나도 아이가 억울하지 않게 좀 더 살펴봐줘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