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사랑...?

벌써 부쩍 자란 아이

by wisdom

어느날 저녁, 초등학교 2학년 큰애의 숙제를 봐 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를 풀던 아이는 연필을 끄적이면서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OO한테 나 너 좋아해 라고 고백했어요."

"뭐....?"


책을 읽던 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해서 고개를 들고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는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직 좋아한다는 고백의 개념을 잘 알지 못하는 나이임을 감안해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고백했다는 사건은 나에게는 놀라운 충격인데, 아이는 태연했다.


"너가 걔한테 좋아한다고 말한거야?"

"네"

"주변 친구들이 다 들었어?"

"네"

"친구들이 뭐래?"

"친구들은 '우와! 땡땡이가 OO한테 고백한다!' 라고 놀렸어요"

"걔는 뭐래?"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아이는 반 친구들이 있는데에서 공개 고백을 했고,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받아들일만한 제안이 있었던 고백은 아니니 그냥 마음을 잘 알겠다 라는 뜻인가? 아이의 고백이 고백공격은 아니었을까? 좋아한다고 고백했으니 그 다음은 뭘까?


"끄덕인건 뭐야? 걔도 너 좋다는거야?"

"모르겠어요."

"근데 넌 왜 고백했어?"

"정말 예뻤거든요...."


그렇다. 정말 예쁘다는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초등학교 3학년때 반장을 좋아했었으니, 나도 저 나이쯤에 첫사랑 같은걸 한 셈이다. 아직까지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잘생긴, 공룡상에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리더쉽도 있어 반장을 한 그 아이. 어떻게 컸을까. 아니 이제 나이가 있으니 어떻게 늙었을까를 궁금해 해야하겠지만.


여튼 아이가 고백했다고 말한게 학기초였는데, 원래 초등학생들은 누가 사귄다 하면 반에서 유행처럼 퍼진다고, 여기저기서 누구랑 누구도 사귄다 이런 말이 한참 들려왔다. 그런데 얘는 고백만 하고 그 뒤로 사귄다는 말도 없고 따로 만난다거나 편지를 주고받는다거나 등의 아무런 후속 진행이 없었다.


"너 걔한테 고백했다며. 그 뒤로 뭐 없어?"

"사귀고 있는데요?"

"뭐??? 사귀고 있었어?"

"네."

"그런데 사귀는게 뭔지는 알아?"

"네. 그냥 같이있는거요."


같이 있는게 사귀는거라면 같은반 아이들 전부가 함께 사귀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아직은 몰라도 되는 개념이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걔는 고개만 끄덕였잖아. 사귀자는 말을 한거야?"

"아니요."

"..............."


그 뒤로도 궁금하고 재미있어서 몇번 더 물어봤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하교하는길에 그 아이를 몇번 보기도 했는데, 정말이지 키도 크고 예쁜 아이었다. 그리고 항상 단원평가도 100점이라고 했다. 내심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서, 우리애에게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서 만나자.' 라고 말해주는 상상도 해봤다. 그러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아름다운 상상만 해봤다. 이래서 울엄마가 공부잘하는 친구를 그렇게 좋아했구나 하고 이해도 하면서.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다가올 즘에 다시 물어봤는데, 이번엔 대답이 달라졌다.


"걔는 끄덕인 뒤로 뭐 더이상 말이 없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거야?"

"고민중이래요."

"아니, 학기초에 고백했는데 여름방학이 다 되가도록 고민중인거면 그냥 거절 아니야?"

"모르겠어요."


그렇게 아이의 첫사랑은 상대방의 질질 끌기로 끝나버렸다. 처음부터 고백을 거절하고 싶었으나 착한 마음씨에 티를 못낸 것 같은 느낌이지만.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풋풋한 첫사랑이었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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