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티서 Apr 22. 2020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4월 창작주제 <반려식물>

등장인물 

            아버지

            가객

            딸 

장르    무협 

때        어느 이른 아침

곳        산중의 초가집, 평상



          

  조명이 켜진다. 평상 위에 아침상을 놓고 아버지와 가객이 마주 앉아있다. 조용히 밥을 먹는 두 사람.     


아버지    그래, 오늘 내려가신다고?

가객        덕분에 몸도 완전히 나았고.      


  가객,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린다.     


가객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르신.

아버지    허허. 감사라. 그렇다면 질문 하나에만 답해줄 수 있소?

가객        말씀만 하십시오. 

아버지    당신 뭐 하던 사람이오?

가객        예? 그건......

아버지    여긴 산중이라 거의 영향이 없었다지만, 

               아래에선 수년 째 정마대전을 겪으며 민생이 말도 안 되게 황폐해졌다 들었소.

가객         ......

아버지    다행히 무림제일검이라 불리는 한 젊은 영웅의 활약으로 전쟁은 막 마무리 되었고. 

               헌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그 젊은이가 홀연 사라졌다더군.

가객         ......

아버지    혹시 그 젊은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가객        (잠시 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인도 들어는 봤습니다만 그것뿐입니다. 

                평범한 소금장수가 무림의 일을 어찌 들여다 볼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소금장수라.

가객        다음 장으로 향하던 중 멧돼지에 치였고 그런 저를 어르신께서 발견하고 치료해주셨습니다. 

               전에 말한 그대롭니다. 

아버지    봇짐에 칼이 있던데?

가객        그건 호신용으로다가.     


  가객을 빤히 바라보는 아버지.     


아버지    멧돼지의 덧니로는 그렇게 깔끔한 자상이 생길 수 없소. 칼이라면 모를까.

가객        어르신, 그건,

아버지    (손을 들어 올리며) 됐소. 오늘 떠난다는 사람을 붙잡고 따져봤자 뭣 하겠소.      


  아버지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아버지    다 드셨으면 그만 물리겠소. (뒤를 돌아보고) 얘야.     


  무대 뒤에서 딸이 나온다. 딸은 여기저기 붉은 얼룩이 진 옷을 입고 있다. 

  딸이 옆에 앉아 그릇들을 정리한다. 

  딸이 나온 이후로 가객이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가객을 흘낏 넘겨보는 아버지.     


아버지    내 수수께끼 하나를 내겠소.

가객        예? 뭐라 하셨습니까?

아버지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그 꽃이 무엇인지 맞춰보시오.

가객        그건 어찌.

아버지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이라도 줘야하지 않겠소. 맞춘다면 내 귀한 선물을 드리리다.     


  훌쩍 일어나는 아버지.     


가객        어딜 가시렵니까?

아버지    아침때를 놓치면 캐지 못하는 약초가 있어서. 뒷산에 다녀와야겠소.     


  따라서 주춤주춤 일어나려는 가객.     


아버지    (손으로 만류하며) 반 다경이면 될 일이오. 그때까지 답이나 생각해놓으시오.      


  아버지가 무대 밖으로 나간다. 딸이 아버지의 뒤에 대고 꾸벅 인사한다. 가객의 시선이 딸에게 꽂힌다. 

  

가객       이 집에 한 달간 머물면서도 댁을 처음 봤소.....

              아마 댁의 아버지께서 내 방 근처로는 출입을 못하게 하신 거겠지.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  듣고 있소? 

딸           정신을 잃으셨을 때 병간호를 한 것도 저에요.

가객        그런, (덥석 손을 잡으며) 당신은 마음이 참 따뜻하구려.

딸           (뿌리치며) 손은 놓고 얘기하시죠.      


  힐끗 그제야 가객의 얼굴을 한 번 살피는 딸.     


딸            수수께끼는 좀 아시겠어요?

가객        그것이. 왜 뜬금없이 그런 걸 물으셨는지.

딸            소금장수라면 견문은 넓을 것 아니에요. 그래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뭔가요?

가객         예쁘기로 치면 미객이라 불리는 장미도 예쁘고, 또 난초도 못지않고.

                 (손바닥을 치고는) 아니면 댁의 아버지께선 약초꾼이시니 뭐 천년설삼이라던가, 

                 만년하수오 같은 희대의 영약들을 아름답다 보시지 않겠소?

딸             소금장수가 영약들도 아세요? 

가객         그건. 워낙 유명하지 않소.

딸             좋아요. 헌데 약초가 왜 귀한데요? 약초가 과연 사람보다 귀한가요?

가객         오호. 듣고 보니 맞는 말이오. 약초가 귀한 것도 다 사람을 살리기 때문인 것을. 그렇다면 사람이,

딸             사람이면 모두 다요?

가객         흠. 설마, 무림삼화? 그래 그녀들이라면.

딸             무림삼화가 뭔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가객        (절레절레) 떠보는 것이라면 이번에도 틀렸소. 

                무공과 미색이 모두 뛰어난 무림의 세 명의 여인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산 아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오. 특히 사내라면 말이오. 

딸            (웃으며) 잘 됐네요. 이따 아버지가 오시면 그렇게 말씀해보세요.      


  딸 그릇을 다 정리했다. 상을 들고 무대 뒤편으로 걸어간다.

  가객은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멈칫한다.     


가객        당신이오.      


  그 자리에 멈추는 딸.      


가객         (딸에게 달려가서) 입에 발린 말이 아니오. 어떤 무공과 미색을 겸비한 여인인들, 

                 가족들을 위해 상을 차리고 또 정리하는 여인에 비할 바가 있겠소? 

                 이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당신이오.     


  자기 격정에 딸의 소매를 잡는 가객. 딸이 그 소매를 쳐다보자 다시 소매를 놓는다.      


가객        헌데 옷에 얼룩이 졌소?

딸           피마자 얼룩이에요. 다른 건 다 지워지는데 빨간 물은 한 번 들면 빠지기가 쉽지 않아서.

가객        하하하하. 과연 피마자는 그 잎부터 열매, 씨앗의 기름까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니 

               손이 많이 갔을 테지. 피마자처럼 소탈한 당신이 좋소.

딸            등골까지 빼먹을 수 있는 식물을 닮았다니 참 달콤하네요.           

가객         당신도 내게 마음이 있잖소. 그래서 수수께끼를 도와준 것 아니오?

딸             그런가요? 헌데 전 소금장수보다는 좀 더 번듯한 지위가 있는 남자가 좋아서.      


  돌아 들어가려는 딸.      


가객        잠깐.      


  흘낏 돌아보는 딸. 다가와 망설이는 가객.     


가객        (소곤거리며) 중원제일검, 내가 맞소. 

                그, 혹여 적이나 아군이 나를 찾아와 피곤하게 할까봐 정체를 숨겼을 뿐이오.     


  가객이 말하는 동안 가객을 빤히 바라보던 딸. 그때 아버지가 들어온다. 

  황급히 아버지에게 꾸벅이는 가객.

     

아버지    어째 다 서 있소?

가객        그것이,

아버지    내가 낸 수수께끼의 답은 구했소?     


  아버지의 앞에 결연하게 무릎을 꿇는 가객.       


가객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피마자입니다. 혹은 피마자를 닮은 여인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제 뒤에 서 있는 이 여인처럼 말입니다. 어르신, 부디 댁의 따님을,

아버지    (딸에게) 얘야, 술상을 봐 오너라.

가객        낮부터 술은 왜...... 설마 이 수수께끼의 보답이 고작 술이었단 말입니까?     


  아무 말 없이 자리에 가 앉는 아버지.      


아버지    (딸에게) 가서 여아홍을 가져오너라.      


  고개를 꾸벅이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딸. 

  가객은 놀란 표정으로 주춤 일어난다. 아버지의 맞은편에 가서 앉는다. 

  곧 무대 밖에서 땅에 삽을 꽂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객       방금 여아홍이라 하셨습니까?

아버지    여아홍이라 하면 딸이 태어난 날에 땅에 묻어두는 술이지.

가객        그리고는 딸이 시집을 갈 때 꺼내, 잔치를 벌인다는......

아버지    당신이 맞췄소. 부디 내 딸아이를 잘 부탁하오.

가객        어르신.     


  곧 딸이 상에 술잔 두 개와 술병을 받쳐 들고 들어온다. 상을 내려놓는 딸.     


아버지    (딸에게) 네가 따라 보거라.     


  딸은 아버지에게 한 잔, 가객에게 한 잔 술을 따른다. 

  서로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건배를 하는 아버지와 가객. 

  아버지와 가객 모두 단숨에 술을 털어 넣는다. 순간 표정이 바뀌는 가객.     


가객         이건?     


  왈칵 피를 토하는 아버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즉사한다. 

  봇짐에서 칼을 빼들어 순식간에 딸의 목에 겨누는 가객.     


가객        이게 무슨 짓이오!

딸           고수라는 것을 확인하고 드린 것이니 살인의 의도는 없던 것입니다. 

               만독이 불침하는 몸 아니십니까.  

가객        당신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어찌,

딸            아버지에게도 기회는 많았습니다. 

가객        기회라?

딸            종살이는 아버지 생전으로 족하다, 시집은 싫다. 이미 숱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가객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설령 그러기로서니 자기 아버지를 죽인다?

딸            이해받을 생각 없습니다. 그저 목숨을 구걸할 뿐.      


  가객을 노려보는 딸. 가객도 바라본다. 가객 칼을 다시 칼집에 넣는다.     


가객        잠시나마 내가 이런 여인에게 빠졌었다니.     


  가객 천천히 걸어 나가다 뒤돌아본다.     


가객         왜 하필 오늘이었소...... 어떻게 죽인 거요? 대답 없다면 베겠소.

딸             피마자 씨앗.

가객         피마자 씨앗? 하지만 거기엔 사람을 죽일 만큼의 독은 없을 텐데.

딸             적은 양도 모아 놓고 보면 많아지는 법입니다. 

가객         그게 무슨?

딸             매해 가을, 피마자 열매를 수확할 때가 되면 아버지 몰래 여아홍 단지를 파냈지요.

가객          그런......

딸             (바라보며) 말씀 드렸잖습니까. 아버지에게도 기회는 많았다고요.

가객          딸을 시집보내는 경삿날을 제삿날로 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니. 당신은 악녀요.     


  딸은 꼿꼿한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이제라도 마음이 바뀌어 죽일 거라면 죽이라고 말하는 듯이. 

  가객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떤다. 그대로 침을 뱉고 무대를 나간다.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앉아있는 딸. 조명이 꺼진다.   




- 막 -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은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