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티서 Mar 04. 2020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담?

희곡창작집단 <담>에 대하여

(구어체로) 해라할 자리나 혼잣말에 쓰여, ‘-단 말인가?’의 뜻으로 스스로에게 물음을 나타내거나 언짢음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주로 ‘누구, 무엇, 언제, 어디, 어떻게’ 따위의 의문사와 함께 쓰인다.     


  지난 주 홍대에서 노만추와 요롱박을 만났다. 희곡창작집단 <담>에 관한 고민들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들과는 작년에 함께 희극 낭독극 무대를 올렸었다. 우리 셋이 각각 희극을 쓰고, 이 세 개의 극본을 한 명의 연출이 무대화하는 작업이었다. 다른 두 작가들의 속이야 모르지만, 이런 구도 탓에 나는 시작부터 이들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꼈었다. 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언제나 최종 삼인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법이지. 허나 이왕 시작된 경쟁이라면 내가 꼭 이번 시즌의 승자가 되리라, 속으로 다짐도 했었다.      


  막상 희극을 쓰려니 내 예상보다도 더 글이 나아가지 않았다. 웃음이란 뭘까, 롤러코스터가 360도 회전을 하는 시대인데 꼭 극장에 가서 웃어야 하나, 그래, 문제는 내 필력이 아니라 온갖 자극에 무감해진 현대인들의 생활 태도였어, 빌어먹을 거대자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눈앞의 문서파일은 백지상태 그대로였다. 자괴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내 경쟁자들을 슬쩍 찔러봤다. 마침 이 둘은 일정이 맞아 같이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태티서: 열작중이신가욤? ㅋㅋㅋ

 요롱박: 우리 수다 떠는데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만추: 행정업무 중입니당ㅋㅋㅋㅋ     


  이런 기만자(欺瞞者)들. ‘ㅋㅋㅋㅋ’ 전략을 쓰시겠다? 차라리 어미마다 ‘ㅠㅠ’가 붙은 푸념이라면 내가 참겠다. 마감과 같은 현실적 문제는 괘념치 않은지 오래고 애초에 별로 상관도 없었다는 식의 한량 코스프레라니. 게다가 한 명은 수다를 떤다고 하고 한 명은 행정업무 중이라는데, 말이 안 맞잖아! 이렇게 된 이상 이들과 만나기로 한 내일 전까지라도 최대한 뭔가를 짜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어설픈 기만 뒤에 숨어 나보다 앞서가려던 두 사람이 확 기가 죽을 정도로 탄탄하고 배꼽 빠지는 무언가를....     


  쓸 수 없었다. 가뜩이나 안 풀리던 와중에 스스로 부담만 더하니 글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래저래 작업실에 조금 늦게 도착했고, 노만추가 미리 와있었다. 나는 곧 조용히 글 쓰는 시늉에 들어갔다. 덥네요, 에어컨 좀 켤까요? (사이) 바람이 너무 직격이다, 다시 끌게요. (사이) 그, 제가 계속 껐다 켰다 해도 될까요? 그 후로 한 번 더 침묵을 참다가 결국 내가 먼저 고백했다.      


  “아, 안 써진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혼잣말을 했으니 그건 들으라고 한 말이 맞았다. 노만추도 놓치지 않았다. “그죠? 전 아까부터 행정업무 중이었어요.” 알고 보니 노만추 역시 침묵이 깨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역시 더 입 다물고 노트북만 들여다봐봤자 뭐 안 나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역시 정말 문자 그대로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이후로 웃음이 뭔지에 관해 서로 한참 푸념했다. 노만추가 대학로의 크루아상 맛집과 진저에일 맛집도 소개해줬다. 알고 보니 노만추는 좋은 사람이었다. 행정업무를 보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노트북엔 양식만 띄워놓고 내내 나와 떠드느라 상대적으로 행정업무에 소홀해지기는 했지만. 막 사온 크루아상을 베어 무는데 요롱박에게서 카톡이 왔다. ‘저 오늘 늦잠 자서 못 갈 거 같아요ㅜㅜ’ 노만추의 숨길 것 없는 웃음이 그 카톡의 진실성을 보장해주었다. 알고 보니, 요롱박도 좋은 사람이었다.     

 

  대학생 때,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한 줄 알고 넋 놓고 있다가 졸업하는 해 방학에 계절 학기를 들었다. 미국대중문화 연구였나, 과목명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의사 집안에서 탈선해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된 교수님 본인의 낭만적인 젊은 날들에 대해 듣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그래도 문화인류학과 수업답게 교수님이 ‘제노포비아(xenophobia)’의 정의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제노포비아란 낯선 것, 이방인이라는 뜻의 ‘제노(xeno)’와 싫어한다, 기피한다는 뜻의 ‘포비아(phobia)'를 합쳐 만든 말이다. 나는 그동안 제노포비아가 외국인혐오증이나 타인종혐오증 정도를 지칭하는 개념어라고만 생각했었다. 교수님은 이어서 낯선 것에 대한 모든 혐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을 보면 왠지 불편하고 반감이 드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제노포비아에 해당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내가 노만추와 요롱박에게 느꼈던 경쟁심도 경미한 수준이긴 하나 제노포비아가 맞다.      


  나는 정말 제노포비아에 민감한 사람이다. 중학생 때는 점심시간마다 1학년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의 교실로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서로 교실의 출석부를 들고, 1번부터 얘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인지를 하나하나 깠다. 1번부터 순서대로 깠다.     

 

  뒷담. 도대체 쟤는 왜 저런담.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담. 내가 ‘담’의  뜻을 찾다가 이거다 하고 담의 열네 번째 뜻을 선택한 것에는 내 이런 성향이 작용했을 것이다. 담의 열네 번째 뜻에는 언짢음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보통 혼잣말이거나 내집단을 청자로 두고 외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담의 열네 번째 뜻에는 내게 익숙한 제노포비아의 감정이 섞여 있다.     


  불편한 경계심을 푸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른다. 노만추, 요롱박과는 희극 작업 내내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상황에 대해 서로 징징대다 친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업 기간 자체도 정말 길었다. 나는 겁이 많아 낯선 것에 많이 쫀다. 쫄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아예 그 낯선 대상을 미워해버리기도 한다. 사실 혼자 모르고 하는 뒷담보다는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화담(和談)이 더 즐거울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 세상엔 많다. 알고 보니 극악무도한 사람도 많다. 나는 적어도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지난 주 홍대 모임에서 희곡창작집단 <담>을 설명하기 위해 각자가 생각하는 담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담’에 담긴 언짢음은 확실히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불만에서 출발한 글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또 숙고해볼 문제다. 무엇보다 창작의 과정 중에 얘기를 나눠볼 사람이 꼭 필요하다. 창작집단 <담>에 모인 파이널 도전자들이 서로 이런 방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적어도 내 스스로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미워하는 글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1) ‘담’과 ‘제노포비아’의 정의는 네이버 어학사전의 내용을 인용했다. 

 덧2) 어렵게 꼬아 생각할 것 없이, 내가 경쟁심을 느낀 이유는 그냥 내가 경쟁심을 잘 느끼는 사람이라서 인 것 같기도 하다. 혼자만 튀어 보이려고 무려 담의 열네 번째 뜻을 찾아냈다. 열네 번째.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