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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Mar 06. 2020

다음 편을 기다리는 자세

창작집단 <담>을 만들며


'다음'의 준말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위 올 라이(We all lie). 드라마의 엔딩을 알리는 노랫소리가 들리면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시간을 달려서 다음 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보는 축구선수마냥 애꿎은 몸만 들썩이곤 했다. 몸이 현재에 묶여 있든 말든 내 마음은 이미 다음 주를 살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틈만 나면 스포일러를 검색해 보거나,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드라마 한편을 써 내려가거나 했다. ‘사실은 혜나 엄마가…’      


항상 다음을 생각하는 걸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살게 될 집을 상상하며 놀았다. 그 놀이는 꾀나 구체적이었는데, 방송국 직원이나 연락이 끊긴 친구가 우리 집에 방문한다는 설정으로, 그들에게 방 하나하나를 소개해주는 식이었다. ‘이 방은 진짜 마트처럼 꾸며 봤는데요.’ (당시 TV 광고에 나오는 마트 장난감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지원서에 고작 한 글자 적어놓고선 합격한 이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음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다음을 욕망하게 만들었다. 축구경기 때문에 드라마가 결방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놈의 축구가 뭐라고!’ 라이벌에게 1등을 빼앗긴 주인공처럼 부들거렸다. 그놈의 드라마가 뭐라고. 그래도 드라마의 다음을 기다리는 건 괜찮은 편이었다. 종종 기다림의 시간이 늘어나곤 했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다음 편을 반드시 만나 볼 수 있으니까. 현실에서의 다음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 같았다. 주사위가 바닥에 닿기 전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다. 현실에서의 다음이 꼭 그랬다. 오매불망 기다려도 다음을 가질 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우리 같이 작품 하나 만들어볼래?’ 마음 맞는 친구들의 제안으로 함께 단체를 만들고, 지원금을 타내고, 연극과 전시를 결합한 작품을 만들었다. 단체를 만드는 것도, 공연을 만드는 것도 처음이라 무엇하나 쉬운 게 없었다. 매번 우당탕거렸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무사히 작품을 올렸다. 바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나 했는데, 연극이 끝나고 채 한 달도 안 되어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유는 다양했다. 원래 계획했던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지난 1년간 너무 지쳐서 쉬기 위해. 나 혼자 남아 다음을 이어가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 맞는 동료를 새롭게 찾는 일도 어려웠다. 연극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어느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조용히 글만 쓰는 나이기에 더욱 그랬다.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다음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졌다. ‘지원사업에 내려고 하는데 혹시 써놓은 작품 있으세요?’ 때마침 한 연출가가 나를 불렀다.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느낌이 좋았다. 그의 제안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작업의 결을 맞춰보고자 그가 추천한 영화들은 전부 재미있었다. 그는 마치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혹은 신의 부름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또 그와의 다음 작업을 생각하곤 했다. 그와 이제 딱 한 번 만나 회의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고, 그와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다음 작업이 간절해졌다. 나는 그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그가 이런 말을 해도 ‘네, 좋아요.’ 저런 말을 해도 ‘네, 좋아요’ 했다. 내키지 않는 제안을 했을 때도 두 번 욱하고 결국엔 ‘네, 좋아요.’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이번엔 내가 싫었다. 이런 다음이라면 그냥 채널을 돌리고 싶었다. 누가 조기 종영시켜줬으면 했다.      


이처럼 현실에서 다음이 만들어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세 명의 작가가 입을 모아 다음을 외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만난 지 1년조차 되지 않은 세 명이. 이제 딱 한 번 같이 일을 해본 세 명이. ‘창작집단 담’을 만들고 무척이나 설레고 좋았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반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나를 꽁꽁 숨기다가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가면 어쩌지? 나는 또 시작지점에서 다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고3 때 주변 친구들이 모두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 나는 일부러 수시를 쓰지 않았다. 대학 원서 하나 넣어놓고, 대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내 모습을 상상하느라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흥청망청 보내는 내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수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책상 앞에 놓인 문제집만 풀었다. 담담하게. 그 덕분인지 나는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고, 이 일은 내 인생 가장 현명했던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한창 빠져있던 그때의 겨울을 떠올려 본다. 연출가와의 다음 작업을 신경 쓰느라 나를 돌보지 않았던 그때의 여름을 떠올려 본다. 고3이었던 내가 그랬듯이 담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집중했다면, 조금 덜 흥분하고 조금 더 재밌게 그때를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창작집단 담을 떠올릴 때마다 다짐한다. 다음에 매달리지 말자. 이런 다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창작집단 담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주사위를 열심히 본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그 시간에 옆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재밌는 추억을 쌓는 데 집중해야겠다.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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