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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Mar 18. 2020

정체성 팔이

3월의 창작 주제(2) <글>

  “또 정체성 팔이 했지 뭐.” 대학생 시절 데드라인에 딱 맞춰 과제 글을 내고 나면 친한 친구들과 이런 농담을 나눴다. 운 좋게도 대학생 때 '퀴어 엘라이(queer ally)'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 사이에선 이 말이 ‘태티서가 또 퀴어 당사자인 자신의 예시를 들어가며 비평문을 써냈다.’는 것을 의미했다. 뜻이 단박에 통할 정도로 자주 있는 일이었고, 정체성을 이용한다고 자조해도 될 정도로 서로에게 안전한 관계였다.      


  퀴어 이슈와 관련시켜 글을 써 가면 평가도 좋게 나왔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희한한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몰지각에 대해 당당해지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내가 퀴어도 아닌데 굳이 젠더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느냐 운운. 이 지면에서 그런 상황들에 대해 분개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 덕(?)을 좀 봤다. 내 글들이 논리적인 구성이 아주 부족한 글도 아니었다. 평가를 잘 받은 정당한 이유야 생각해 보면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단순히 평가자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흥미를 끈 것은 아닐까? 혹시 어린 학생에게 기대하는 ‘독특’하고 ‘도전적’인 소재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굳이 내가 당사자라는 것을 밝혔으니 당사자 배려 차원에서? 학생이 퀴어라는 이유로 점수를 후하게 줄 리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거 지금 이국적인 무언가를 접할 때의 눈빛 맞지?’ 눈으로는 자꾸 내 발표를 듣는 교수님의 표정을 살폈다.      


  졸업을 하고 나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진짜 장사의 세계는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도대체 동성애자 힘들게 사는 얘기를 왜 지금.....이거 그림이....아하! 둘 다 완전 잘 생겼구나?” 직접적으로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물어보기도 전에 분위기가 이미 그랬다. 먼저 눈치를 보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인물이 나오곤 했다.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던 인물이 '흑화(黑化)'하여 산장 안의 다른 대학생들을 찔러 죽이는 공포물을 구상하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자칫 퀴어 혐오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주관하는 리딩파티에 내 대본이 선정되었다. MTF 트랜스젠더인 자식과 그녀의 엄마가 수술을 하러 가기 전 최후의 10분을 두고 서로를 설득하는 내용이었다. 본 행사 이전의 사전 미팅에서 다른 희곡작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희곡 주제를 들으며 (오만한 짐작이지만) 이번엔 내 정체성 팔이가 먹혔다는 생각을 했다. 동성애, 여성, 트랜스젠더, SM성향까지. 글에서 소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때는 솔직히 그 소재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행사 당일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참가자들은 조를 구성하여 서로 대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한 조씩 순서대로 들어가 작가와 독자로써 서로에게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그날 행사를 주관한 연출님이 “작가님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셨다. 당시엔 나 괜찮은데, 왜 자꾸 물어보시나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스스로도 아직 납득을 못한 본심이 내 얼굴에 다 드러났던 것 같다.  


  한 관객 분은 자식이 트랜스젠더가 된다는데 이렇게 말로 싸우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하셨다. 연출님이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느냐 묻자 감금을 하고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못 가게 막을 것이라 대답하셨다. 내 눈엔 말씀을 하시는 중에도 화를 참지 못해 부르르 떨리는 그분의 어깨가 보였다. 다른 한 분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없다면 인물이 이런 선택(트랜지션)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 유년시절을 녹여내지 않은 내 대본이 완성도가 부족하다 평하셨다. 어떤 한 분은 나를 계속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내가 다른 조로 갈 때쯤 조용히 물으셨다. “그런데 작가님은 이걸 왜 쓰셨어요?” ‘혹시 작가님도?’라는 말이 생략된 질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그 대본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좀 다른 결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린 인물은 트랜지션을 원하면서 동시에 가족도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성별정체성과는 별개로 가정에 남아 아들 역할을 하려는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의 심리적 외상은 넣을 필요가 없어서 안 넣었다. 트랜지션의 욕망은 어떤 상처 때문에 생기는 후유증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관객들의 호불호를 듣고 싶어서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었다. 당시엔 작가로써 글에 대한 평가에 초연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도 겹쳐져 있어서, 내 기분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재의 단위에서부터 자신을 검열하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유효한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관객들에겐 특정 소재는 그냥 무조건 싫은 소재일 테고, 그런 경우는 대화도 잘 안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 단위부터 어설프게 눈치를 볼 경우 외려 끔찍한 혼종이 탄생할 수도 있다. 내 경우 중성적이면서 동시에 악독한 산장 속의 살인마가 꼭 그랬다.   

   

  한 편으로, 그러면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소재는 알아서 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물론 해봤다. 그러자니 쓰는 내 쪽이 재미가 없는 게 문제였다. 꼭 퀴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인공이 나와 완전히 닮지 않았더라도 어느 관점에선 내 이야기라고 정 붙일 만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대학시절의 나 역시 농담 속의 인격처럼 완전히 영악하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클로짓(closet)'으로 살다가 대학에 갔고, 유치하지만 교실 내 발표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을 통해 ‘그래, 나 퀴어다.’ 자꾸 얘기하고 싶었다.      


  리딩 파티 날에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극적이게도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조는 내 작품을 훨씬 꼼꼼히 들여다 봐 줬고, 거기서 노만추도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이후 노만추와 함께 새로운 작업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 작업을 요롱박도 함께했다. 요롱박도 리딩파티에 선정된 작가였는데, 그의 대본을 그제야 제대로 접해볼 수가 있었다. 소재만 적확해서 선정된 대본은 물론 아니었다.     


  글을 쓰려고 시도해볼수록 소재보다는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임을 배운다. 소심한 생활인인 나는 앞으로도 ‘어떤 소재가 더 잘 팔릴까?’의 고민을 완전히 멈추진 못할 것 같지만 그런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내가 나인 채로 세상과 만나는 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일 아니었냐고. 그 외의 다른 일들, 예컨대 내 글이 소재로 환원되어 평가받는 것은 어찌 보면 내 통제 밖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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